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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23 19:35 수정 : 2014.04.24 20:39

강원도의 토속음식인 ‘메밀올창묵’ 만드는 과정.

[매거진 esc] 요리
국립민속박물관 박선주 학예연구사가 1년간 발굴·연구해 풀어놓는 강원도 음식 이야기

“올챙이국수는 모양이 개울가에서 헤엄치는 올챙이를 닮았다고 알려진 강원도 토속음식이죠. 하지만 본래 강원도 산골 지역민들은 그렇게 안 불렀어요.” 강원도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인 올챙이국수는 다른 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 박선주 학예연구사는 지난해 10여차례 강원도를 방문해 산골 지역 거주민들을 만났다. 강원도 음식의 원형을 찾기 위해서다. 올해는 강원 민속문화의 해다. 박물관은 지난해 강원도청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강원도에 관한 각종 전시, 민속 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평소 먹거리에 관심이 많았던 박 연구사는 생활문화 조사의 일환으로 “바다를 끼고 있지만 화전민들의 식생활이 남아 있는” 강원도의 산간 지역 음식을 주제로 삼았다. 정선을 조사 대상의 중심지로 삼고 인근 지역인 영월, 인제 등으로 넓혀갔다. 박물관에서 민속연구 과제로 향토음식을 선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챙이국수는 올창묵, 올챙묵이라 불렸어요. 조리 방식을 보면 묵에 가까워요. 하지만 완성된 요리는 국수를 닮았지요.” 산간 지역민의 올창묵은 국물이 거의 없어 정선 5일장을 찾은 여행객들이 경험한 올챙이국수와는 조금 달라 보인다.

민속박물관에서 향토음식을
연구 주제로 삼기는 처음
콧등치기국수보다
원형에 가까운 느른국
쌀 대신 감자로 만든
감자붕생이밥

그는 연구에 앞서 감자옹심이, 막국수, 콧등치기국수 등 익히 알려진 음식이 다일 거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가 척박한 땅, 강원도 산골에서 찾아낸 음식은 이름도 생소한 먹거리가 많았다. 느른국 혹은 누름국이라 부르는 음식도 그중 하나다. “처음에는 콧등치기국수를 먹으려고 나섰죠. (정선군) 여량면의 김남기 할아버지가 안내를 맡으셨는데, 그분이 방송을 타 유명한 청원식당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데려가는 거예요.” 여량역 앞에는 여행객들로 북적대는 청원식당과 손님이 없어 한가한 부흥식당이 있다. 김남기씨가 부흥식당의 국수가 더 원형에 가깝고 맛도 좋다고 평했다고 한다. 70대 초반의 부흥식당 주인 전정순씨가 낸 음식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콧등치기국수가 아니었다. 메밀 면으로만 만든 국수가 느른국이다. 거칠지만 소박하고 차진 맛이다. “우리가 들어서자 주인 할머니가 그때야 반죽을 시작하시더라고요. 미리 반죽해두면 메밀은 수분을 빨리 흡수해 (음식) 만들 때쯤엔 벌써 딱딱해지거든요.” 박 연구사는 전정순씨의 요리법을 꼼꼼히 기록했다. 메밀가루와 찬물을 조금씩 섞어 반죽하고 커다란 홍두깨로 편다. 반죽의 지름이 30㎝ 정도가 되면 홍두깨에 말아 계속 넓고 얇게 편다. 칼국수 면 자르듯이 접어 썰고 끓는 육수에 삶기만 하면 완성이다. 특이한 것은 집된장만으로 간을 하고 강원도산 갓김치를 얹어 먹는다는 것이다. 강원도 산간 지역민들이 애용하는 주식이다. “먹는 동안에 할머니가 술술 느른국 이야기보따리를 풀었어요.”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의 박선주 학예연구사(오른쪽)와 권오복씨. 권씨가 막국수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느른국은 반죽을 눌러 만든다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과 여러 사람이 나눠 먹기 위해 양을 늘렸기에 생긴 이름이라는 설,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박 연구사는 “찬물에 면을 헹구는 콧등치기국수와는 달리 찬물에 헹구지 않는 느른국은 국물에 메밀의 향과 맛이 ‘느리하게’ 배어든다”고 하면서 “‘느리하다’는 녹듯이 스며든다, 흐물흐물하다는 뜻의 이 지역 말”이라고 설명한다. 느른국은 겨울에, 콧등치기국수는 여름에 제격이다. 갓김치 하면 전라남도 여수를 최고로 치지만 강원도의 갓김치도 훌륭한 풍미를 지녔다. 삼(대마)을 주로 경작했던 강원도 산간 지역민들은 삼을 거둔 뒤 갓김치를 파종했다. 기후 탓에 전라도 갓김치와는 사뭇 다르다. 잎이 더 보드랍다. 간도 세지 않다. 지역민들은 3년 이상 묵히고 난 다음에야 꺼내 먹었다. 갓김치는 채만두의 소로도 쓰였다. 채만두는 강원도 정선 지역 향토음식이다. 상상력을 조금만 발동하면 어떤 만두인지 짐작이 간다. 갓김치, 묵나물 등의 채소가 속 재료다. 만두의 피는 메밀가루로 만들고 들기름을 발라 쪄낸다. 색은 시커멓지만 그야말로 건강식이다. “채식이라지만 심심하다든지 뭔가 부족하다든지 하는 느낌은 전혀 없는 맛입니다.” 언감자, 얼군감자라고도 불리는 강원도의 감자만두와 사촌지간쯤 된다. 우리가 아는 강원도의 감자 요리는 감자적, 감자옹심이 정도인데 박 연구사가 맛본 감자 요리에는 감자붕생이밥이 있다. 감자붕생이밥에 ‘밥’ 자가 있지만 쌀이 재료가 아니다. 삶은 감자와 감자 전분이 쌀을 대신한다. 강낭콩이 이웃사촌이 돼서 들어간다. 밥이 포슬포슬한 상태를 지역민들은 ‘붕실거린다’고 표현한다고 박 연구사가 알려준다.

강원도의 토속음식 ‘느른국’과 ‘감자붕생이밥’.

강원도의 토속음식 ‘느른국’과 ‘감자붕생이밥’.

벼농사가 어려웠던 강원도 산간 지역은 옥수수, 감자, 메밀이 주식이었다. “온전한 쌀밥은 제사 때나 구경했는데, 그것도 쌀과 보리가 섞인 거였어요.” 그의 조사에 따르면 제사상 밥은 밥공기에 보리밥을 가득 채우고 그 위에 하얀 쌀밥을 얇게 펴 발랐다. 이렇게 올린 제사상 밥을 ‘꼬깔밥’이라고 불렀다. “귀신 눈 속인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죠.”

강원도 산간 지역의 밥심은 옥수수, 감자, 메밀이 해결했다. 옥수수를 말려 가루내기하거나 감자를 썩힌 뒤에 말려 가루를 낸다. 마치 쌀처럼 요리했다. 감자는 두달간 썩히는데, 이 지역민들의 지혜가 숨어 있다. 먹거리가 부족했던 이 지역에선 최선의 저장법이자 먹거리 재료를 아끼는 방법이었다.

메밀국수 만드는 과정. 산간지역민들은 요즘도 옛날 방식으로 메밀국수를 만든다.
박 연구사는 조사 기간의 반을 지역민들과 소통하는 데 보냈다. “언론에 상처 입은 분들도 있었죠. 처음 본 저를 뭘 믿고 음식 재현을 하시겠어요.” 그들과 이웃이 되기 위해 옥수수도 같이 따고, 밤을 꼬박 새워 묵도 함께 만들었다. 생일을 맞은 어르신들에게는 서울에서 공수한 케이크와 정성을 담은 작은 선물을 했다. 차츰 봄날 눈 녹듯 마음이 녹은 지역민들은 그에게 “가장 솔직한 (강원도의) 음식”을 보여줬다. “어려웠던 시절, 그 과거의 음식을 감추고 싶어하는 분도 많았어요. 일부러 요즘 같은 고명을 올리는 분도 있었죠. 그 옛날 음식이 최고인데 말이죠.” 그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어둑한 강원도 국도를 차를 몰고 달리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막상 찾아갔는데 못 하겠다는 촌로의 강한 어조는 절망감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조사 내용을 담은 <강원도 산간지역의 땟거리 옥수수 감자 메밀>이 출간되고 “잘 봤다. 고맙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는 보람이 찾아왔다. 조사 결과를 담은 책은 국립민속박물관에 가면 찾아볼 수 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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