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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23 19:46 수정 : 2014.04.29 18:19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정의행씨는 줄곧 들판에 홀로 선 나무 사진을 찍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사진으로 치유하기
사진을 통해 마음의 동굴에서 세상으로 나온 사람들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가 지난 9년 동안 ‘치유 사진’을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은 각자의 상처를 안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상처와 직면하면서 그들은 조금씩 자신을 찾아갔다.

황의수(61)씨는 갑자기 입이 마른지 연신 혀로 입술 위아래를 훑었다. 지난해 2월,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의 전일빌딩 앞 계단을 찾았을 때다. 이 건물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이 옥상에 올라가 계엄군의 광주 진압에 맞서 마지막까지 싸웠던 곳이다. 1980년 5월26일 새벽,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20대 청년은 상황을 살피러 문밖으로 얼굴을 살짝 내밀었다. “손들어!” 어둠 속에서 계엄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바로 무수한 군홧발에 짓밟히며 바로 그 계단으로 굴러떨어졌다.

황의수씨는 계엄군에게 구타당하다 굴러떨어졌던 광주 전일빌딩 앞 계단을 똑바로 찍지 못했다.

이종우씨도 군홧발에 짓밟혀 정신을 잃었던 곳을 찍었다. 그 자리에 화단이 생겼다.

광주에 내내 살면서도 황씨는 그 건물 앞에 가질 못했다. 갈 수가 없었다. 근처만 지나가도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같이 가시죠.” 지난해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 사진 수업을 듣던 중 강사로 온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가 권했을 때도 아직 준비가 되질 않았다. 계단 앞에서 카메라를 드는데 손이 떨렸다. 앵글이 비뚤어졌다. 삐딱한 사진이 나왔다.

1년 동안 수업을 들으며 그는 변해갔다. 어느 날 그가 불쑥 자신이 찍은 사진을 임 대표에게 보여줬다. 사진 속 계단이 똑바로 있었다. 그토록 꺼리던 곳에 혼자 다녀온 것이다. 더이상 손이 떨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치유사진 찍기를 통해 천천히 세상을 직면하기 시작했다.

집에만 갇혀 살던 여성은 냄비에 비친 자신을 찍었다.

소위 ‘명문 미대’를 졸업한 한 여성은 결혼 뒤 내조에만 전념하라는 권위적인 시댁에 눌려 집 안에서만 지내야 했다. 사진 수업을 들으며 그는 자기 자신을 찍기 시작했다. 냄비 뚜껑에, 국자에 비친 자신의 몸을 찍으며 자신의 상황과 느낌을 표현했다. 경기도 분당 서울대병원에서 말기 유방암 환자들은 자신들이 작업한 사진과 그 과정을 담은 영상을 함께 보며 펑펑 울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을 찍어보라”는 임 대표의 말에 그들이 찍어온 사진에는 머리에 꽃장식을 하고 환하게 웃는 자신들의 얼굴이 있었다.

임 대표는 다음달부터 ‘서울시립청소녀건강센터 나는봄’에서 10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사진치유 교실을 열 예정이다. 어린 나이에 성산업에 노출되고 다양한 위기를 경험한 아이들과 함께, 어떤 편견도 없이 ‘자기 자신’에 집중해 카메라를 만지는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우울증에 시달리던 대학생은 텃밭으로 향하는 쪽문을 찍은 뒤 “저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 치유사진 어떻게 시작할까

우선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카메라를 들고 자신을 살피고 어루만질 준비가 되었는지. 성급하게 시작할 필요는 없다. 이제 길고 긴 고통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면,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들어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보자.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가 권하는 ‘사진으로 치유하기’에서 중요한 것은 촬영 기술이 아닌, 마음가짐이다.

자괴감을 내려놓고 카메라 들기

아이를 잃은 아버지는 아이에게, 살아남은 시민군은 숨진 5·18 동지들에게 미안하다 했다. 일상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 세상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끼는 순간순간이 미안하다 했다. 죄책감, 자괴감 등에 짓눌린 이들은 각자 고통 속에 몸부림쳤다. 그 모든 감정을 내려놓고 카메라를 드는 일, 치유사진의 시작이다.

상처에 렌즈를 들이댈 용기

상처가 난 곳을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치료는 요원하다. 자신에게 상처가 된 장소, 아픈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대상과 직면할 수 있는 용기가 중요하다.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장소에 서면, 나도 모르게 손이 떨려 앵글이 비뚤어진다. 자신의 마음을 보살피며 촬영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샌가 카메라 앵글도, 내 시선도 안정을 찾게 된다.

자신을 믿고 셔터를 누르기

이리 찍어도 괜찮고 저리 찍어도 괜찮다. 괴로운 하루하루에 잠시나마 마음의 평온을 안겨준 산속 풍경을 찍어도 좋다. 내가 그리 느꼈고, 바라봤고, 찍었다면 그것은 자신의 가슴에 신호를 보내는 세상 존재들과의 조우이다. 가라앉은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그 신호음들에 눈과 귀를 기울이는 것은 ‘나’에 대한 사랑을 스스로 확인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회복하는 일은 상처의 치유 과정에서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내 사진에 대한 세상의 소리 듣기

작게라도 전시회를 준비하자. 내 사진을 바라보며 웃고,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는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자. 가족에게, 이웃에게, 낯선 이에게 내 삶과 내 사진에 대해 설명해보자. 경청하고 공감하는 이들을 보며 당신은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갈 힘이 생길지 모른다. 그들은 바로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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