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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정의행씨는 줄곧 들판에 홀로 선 나무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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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사진으로 치유하기
카메라는 힘이 세다. 날카로운 진실의 순간을 보여주기도 하고
깊이 숨겨둔 상처를 어루만져주기도 한다.
임종진 사진가는 십년 전부터 상처입은 이들과 카메라를 들고
마음에 고여 있는 아픔을 퍼내는 작업을 함께 하고 있다.
“나랑 같이 있다가 죽은 사람들, 그 영령들 앞에서는 내가 지금껏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미안한데. 내가 과연 봄꽃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해도 되나, 그런 걸 사진으로 찍고 그래도 되나 싶어.”
늘 시작이 어려웠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보기도 전에 사람들은 “죄스럽다”며 망설였다. 30년 전 광주에서 시민군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살아남은 이들이 그러했고 중학생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아비도 그랬다. 자신만의 감옥에 갇힌 채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진 찍기, 아니 평범한 일상 그 자체를 자꾸만 밀어냈다.
그런 이들에게 이제 함께 사진을 찍어보자고 권하는 이가 있다.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다. 2년 전 ‘사진을 활용하는 1인 비정부기구(NGO)’를 표방하는 달팽이사진골방을 출범한 그는 ‘사진치유’란 말이 낯설던 2005년부터 관련 강좌를 진행해왔다. 현재 한국사진치료학회 이사이기도 하다. 지난 10년 동안 그는 극심한 우울증에 걸린 청소년부터 말기 유방암 환자, 아들을 잃은 아버지, 5·18 민주화운동에 시민군으로 참여했다 붙잡혀 고문을 당한 78살 노인까지 수많은 이들에게 카메라를 건넸다. “사진은 바로 그 순간
대상과 직면하는 도구이니
치유의 수단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강의 시작
지난해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
1년간 진행한 치유사진수업
결과물 5월 아트선재 전시
처음은 우연이었다. 2005년 경기도 수원시정신보건센터에서 후천적 정신장애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부탁해왔다. <한겨레> 사진기자로 일하던 임 대표가 잠시 휴직을 했던 때였다. 정신보건센터의 사회복지사가 임 대표의 사진 강의를 우연히 접한 뒤 ‘환자들을 위한 강좌’를 제안해왔다. 2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그는 “사진은 바로 그 순간, 대상과 직면하는 도구이니 치유의 수단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강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첫 강좌는 5명과 함께했다. 의대 본과 4학년생, 이른바 ‘명문대’ 국문학도, 장학생으로 대학을 졸업한 뒤 결혼한 여성 등이 포함된, 어떤 시선으로 보면 ‘잘나가던’ 20~30대 젊은 환자들이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상처를 안고 세상과 담을 쌓은 상태였다. 극심한 우울증, 조울증 등에 시달리며 “네”라는 대답 한마디를 하기도 힘들어했다. 6개월 과정이 끝나갈 무렵 이들이 찍은 사진은 임 대표에게 감동을 줬다. 육교 밑 어두운 그늘 아래 서서 바깥쪽의 빛을 찍은 사진, 텃밭으로 향한 쪽문을 찍은 사진…. 마침내 그들은 “저기로 가고 싶다”고 표현을 했다. 그들의 모습은 임 대표를 자극했다. 당시 그 역시 “어떤 사진을 찍어야 하나”라는 고민에 휩싸여 있을 때였다. 사진기자의 신분으로 달려갔던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 이라크 전쟁터 등은 그의 마음속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잔혹한 현장에서 돌아온 뒤 일상 업무를 할 때면 정신적 공황에 시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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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정의행씨는 줄곧 들판에 홀로 선 나무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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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왼쪽 사진) 그가 찍은 5·18 민주화운동 시민군 참여자들의 사진 작업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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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왼쪽 사진) 그가 찍은 5·18 민주화운동 시민군 참여자들의 사진 작업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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