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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30 19:33 수정 : 2014.05.01 16:44

사진 이우성 제공

[매거진 esc] 좋아서 하는 인터뷰

나는 영기 때문에 운 적이 있다. 밥은 먹고 다니니, 웃으려고 영기에게 말했었다. 6~7년 전인가, 아마. 그때 영기가 이랬다. “가방에 컵라면 넣어서 다녀요.” 이어서 말했다. “11시쯤 촬영한다고 하면 영화 팀에서 점심을 준다는 건데요, 1시나 2시쯤 촬영한다고 하면 먹고 오란 얘기예요. 그런데 오전에는 영화사 사무실 돌아다니며 프로필을 돌려야 해요. 촬영장으로 바로 가니까 점심을 어딘가에서 해결해야 하잖아요.” 영기는 그 컵라면을 어디에서 먹었을까? 그때 내가 영기한테 만원짜리 한 장을 줬던가 안 줬던가.

그리고 영기가 대학로에서 연극을 할 때 태어나서 두 번째로 연극을 보러 갔다. 제목도 기억 안 나고 내용도 기억 안 난다. 그냥, 영기가 무대 위에서 용감하게 연기하는 게 기특하고 기뻤다. 그날도 눈물이 났다. 나는 영기의 이상을 존중했지만 그의 현실도 잘 알았다. 연극이 끝나고 계단에서 영기를 잠깐 만났을 때 만원짜리 한 장을 줬던가 안 줬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한 거 보니 안 준 것 같다. 그땐 나도 가난했다. 좋아하는 여자랑 비싼 스테이크 먹느라.

바보, 멍청이 영기. 나는 진작 얘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어느 날 내가 활동하던 시 모임에 복학생이라며 남학생이 들어왔다. 나도 시를 썼지만 걔가 시를 쓰겠다고 하니까 놀랍긴 했다. 군대까지 다녀온 놈이 취업 준비 해야지, 시가 웬 말? 하지만 열심히 썼다. 실력은 형편없었다. 그런데 영기가 제정신이 아닌 건 시 때문만은 아니다. 영기는 시 모임이 끝나기도 전에 늘 어딘가로 갔다. “연극영화학과 수업 때문에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쟤 배우 하는 거야?

학교를 졸업하고 2년쯤 지났을 땐가 영기가 전화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형, 지난달에 신하균 선배님 인터뷰하셨죠!” 내가 일하는 패션잡지를 영기가 본 것이다. “신하균 선배님이랑 정재영 선배님 정말 좋아해요. 같이 영화도 찍었잖아요.” 자랑하듯이 말했다. “저 <웰컴 투 동막골>에 단역으로 나왔어요. 절벽으로 뛰어내리는 역이었는데, 정재영 선배님이 현장에 있는 스태프한테 ‘매트라도 깔아줘야, 쟤가 뛰지’라고 말해줬어요.” 시간이 지났고 영기는 그때의 영기가 아니다. 올해 개봉한 영화 <플랜맨>에서 영기는 정재영을 다시 만났다. “정재영 선배님이 이제 저 알아보세요. 인사하면 반가워하세요.” 영기는 그동안 어마어마하게 많은 영화를 찍었다. 단편영화는 백 편 가까이 찍었고, 장편영화도 수십 편 찍었다. 영화를 보다가 아주 잠깐씩 등장하는 영기를 발견하면 기분이 좋다.

영기는 요즘 문화방송(MBC) <엄마의 정원>에 가난한 하숙생으로 나온다. “드라마는 몇 번 했죠. 너무 잠깐 나와서 사람들이 몰라서 그래요. 단막극에선 주인공도 했어요.” 올해 개봉한 <또 하나의 약속>에서 영기는 결정적인 증언을 하는 도영 역으로 나왔다. 작년에 개봉한 <신세계>에선 ‘연변 사거지’ 중 한 명으로 출연했다. 안타깝게도 여자 배우 송지효가 쏜 총을 맞고 가장 빨리 죽었다.

지금 영기는 불붙기 직전이다. 성냥만 그으면 타오를 것이다. 지금과 같은 순간이 오기를 영기가 얼마나 바랐는지 나는 안다. 예전에는 영기에게 ‘조금만 더 고생하자’는 말을 못했다. 내가 영기가 아니기 때문에 영기의 고독한 도전을 쉽게 위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영기를 다시 만났을 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영기야, 조금만 더 고생하자. 영기와 내가 함께 은사님으로 모시는 분은 종종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이 한 분야에 10년을 미치면 못 이룰 일이 없어.” 이 말이 한때 영기를 좌절시켰을 수도 있다. 10년을 넘게 했는데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아서. “그런데 형, 내가 계산을 잘못했어요. 대학 졸업하기 전에 한 건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졸업하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한 거니까, 이제 한 9년 정도 될 거예요.”

마지막으로 재밌는 얘기를 하겠다. <엄마의 정원>에서 영기가 입고 나오는 옷은 모두 영기가 평소에 입는 옷이다. “가난한 하숙생 역인데, 제가 딱 그렇잖아요. 그래서 제 옷 입어요. 잘 어울리죠?” 곧 슈퍼스타가 될 정영기가 우아하게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말했다.

이우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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