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5.14 19:40
수정 : 2014.05.1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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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텐클럽>. 사진 에스비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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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훈종의 라디오 스타
얼마 전 가요 프로그램을 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1위 후보가 박효신, 임창정 그리고 이.선.희.라니! 20년 전의 <가요톱텐>을 다시 보는 듯한 데자뷔. 에릭 클랩턴이나 카를로스 산타나가 데뷔 30년 만에 앨범을 내도 빌보드차트 정상권에서 노닐 때 정말이지 난 배가 아팠다. 우리 가요계에서도 30년이 지나도 에스비에스 인기가요 1위 후보로 설 가수가 또 있다면 그는 바로 서태지다.
2008년 봄, 서태지가 컴백을 준비 중이라는 첩보가 들려왔다. 신비주의의 대명사. 4년 만의 정규앨범. 지난 몇 년간 전무했던 라디오 출연. 이스터 섬에서 수십억원을 들여 촬영된 뮤직비디오. 확실히 서태지는 급이 달랐다. 게스트로 섭외만 된다면 분명 <텐텐클럽> 분위기를 바꿔놓을 것이 틀림없었다. 다만 무슨 수로 서태지를 잡아올 것인가. 신화의 멤버 김동완을 디제이로 영입하기 위해, 에스엠 이수만 대표의 집 앞에서 비를 맞으며 기다렸다는 아무개 선배를 벤치마킹해 볼까? 서태지 집 앞에서 죽치고 기다리거나 모형 자동차 조종에 푹 빠져 있다는 서태지의 단골 아르시(RC)카 가게에 수시로 드나들어 볼까?
서태지를 섭외하겠다고 결심한 뒤 우리는 생방송 시간에 서태지의 명곡들을 틀면서 “새 앨범이 나오면 텐텐클럽에 꼭 나와 달라”는 공개 구애를 해댔다. 텐텐클럽 홈페이지에 서태지 초대 청원 게시판을 따로 만들어 놓았다. 서태지 팬클럽도 접촉했다. 태지 오빠가 텐텐클럽에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방송 두 시간을 전부 내주고 확실히 차별화된 방송을 만들어보겠노라 약속했다. 대략 3개월을 매달린 끝에 우리의 서태지 체포 작전은 성공을 거두게 된다. 서태지 매니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방송에 출연하겠다는 응낙을 받아냈다.
섭외가 이루어진 그 순간부터는 특별한 방송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우리를 사로잡았다. 당시 텐텐클럽 진행자 이적은 서태지 음반은 모두 자료실에서 빌려 고시공부를 하듯 서태지의 음악을 파고들었다. 나와 작가들은 서태지 데뷔 시절부터 함께한 경호원의 무용담을 비롯해 그간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찾아 밤을 지새웠다. 스튜디오 부스를 벗어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래서 홍대의 한 카페를 통째로 빌렸다. 건물의 한쪽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지나가던 사람들이 지켜보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다만 서태지의 팬들이 미리 장소를 알고 찾아온다면 좁은 골목길이 마비될 것이고, 안전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보안이 중요했다. 방송 스태프는 물론 카페 직원들까지 철저히 비밀을 유지하도록 부탁했다.
그런데 생방송 당일 아침 전화가 울렸다. 카페 사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서태지 팬들이 이미 카페를 에워싸고 있다는 것이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카페의 통유리가 부서지며 팬들이 다치는 불길한 상상이 머릿속을 채웠다. 결국 골목길 생방송을 포기하고 방송국 스튜디오 부스에서 생방송을 진행하기로 했다. 다만, 태지 오빠를 먼발치에서라도 보고파 하는 팬들을 위해 방송국 1층 로비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1000개의 의자를 깔았다. 다행히 2시간의 생방송은 대성공이었다. 서태지 팬들과 청취자들은 그때 그 방송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나누었다.
요즘 에스비에스 라디오국 피디들의 공통된 관심사가 하나 있다. 폴 매카트니. 올해 칠순이 훌쩍 넘은 이 거장의 콘서트 표를 뒤늦게 구하려고 난리법석이다. 또 배가 아파 온다. 제발 부탁 좀 하자. 서태지, 칠순이 넘어서도 주름진 얼굴로 무대에 선 모습을 우리에게 꼭 보여 달란 말이다.
김훈종 SBS 라디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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