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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용현계곡에서 옛길(날등길)을 따라 개심사로 넘어가는 길에 만난 ‘농협 한우개량사업소’ 목초지(옛 운산목장·삼화목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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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여행
옹이 자국 깊고 비틀린 자연목 기둥 돋보이는 서산 개심사와 용현계곡~운산목장 옛길 트레킹
못난이 나무들이지만
이 자연목 기둥을 만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낀다는 이들이 많다
옹이. 나뭇가지가 떨어져나가고 남은 자국이다. 본줄기에 남은 옹이는 상처이자 얼룩이다. 몇 안 되는 나이테를 지닌, 나뭇가지와 껍질이 떨어져나간 자국. 사람들은 옹이가 ‘박혔다’고도 하고 ‘맺혔다’고도 말한다. 온 국민 가슴에 옹이가 하나씩 박혀 먹먹하고 답답한 때, 서산 개심사 걸어오르는 숲길에서 만난 나무들도 그랬다. 소나무도 참나무도, 가슴에 등허리에 박히고 맺힌 크고 작은 옹이를 품었다. 오래된 나무들 가슴의 상처가 아물어가듯, 막 떨어져나간 나뭇가지가 남긴 깊은 옹이 자국도 언젠가는 새살 돋고 아물어 굳은살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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휜 나무기둥을 쓴 개심사 범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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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고 비틀리고 옹이 박혀 빛나는 절집 기둥들
개심사에서도 옹이 박힌 나무들을 만났다. 충남 서산, 가야산(677m) 줄기 상왕산(307m) 자락의 고찰 개심사의 볼거리 중 하나가 절집을 떠받친 아름다운 나무기둥들이다. 요사채인 심검당과 범종각, 해탈문과 무량수전 등 건물들에 휘고 비틀린, 아름드리 자연목을 그대로 기둥으로 썼다. 마치 수백년 뿌리내려 자란 나무들에 그냥 흙벽을 두르고 지붕을 올린 것처럼 보인다. 굽고 갈라지고 상처 입고 닳아빠진 몸으로 세월의 지붕을 떠받치며 견디는 기둥들엔 여기저기 옹이 자국이 뚜렷하다.
옹이 자국 깊고 휘어졌어도, 기둥들은 균형을 잃지 않은 모습이다. 심검당에 덧대어 지은 ‘ㄱ’자형 건물의 기둥들과 범종각 기둥들은, 각기 제멋대로 춤추는 듯 보이면서도 완벽하게 중심을 잡고 있다. ‘완전히 곧은 것은 굽은 듯하고, 빼어난 기교는 서툰 듯하다’(대직약굴 대교약졸·大直若屈 大巧若拙, 노자 <도덕경>)는 말은, 거칠고 허술해 보이면서도 지극히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며 서 있는 개심사의 기둥들을 두고 한 말인 듯하다.
기둥들은 낡고 빛바랬으나 한없이 따스한 질감을 지녔다. 문화재에 손대는 건 삼갈 일이지만, 절 탐방객 중에는 이 오래된 나무기둥을 쓰다듬으며 마음을 추스르고 위로받는다는 이들도 있다. 서산시 문화관광해설사 김재신씨는 “나무로 치면 못난이 나무들이지만, 이 자연목 기둥을 만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낀다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무량수전 뒤 외벽의 기둥 하나는 탐방객들이 오가며 얼마나 쓰다듬었는지, 반짝반짝 윤이 날 정도다.
개심사의 봄빛을 상징하는 왕벚꽃·청벚꽃은 이미 다 지고, 해탈문 옆 물 고인 돌확만이 둥근 하늘 한쪽에 시들어가는 꽃잎들을 고요히 띄웠다.
마음이 무겁더라도, 개심사로 들 때 굳이 마음을 고쳐먹을 필요는 없다. 마음을 열어두면 된다. ‘열 개(開)’ ‘마음 심(心)’ 자를 쓰는 개심사는 백제 의자왕 때 창건된 절이다. 개심사로 드는 길은 두 가지다. 앞문 쪽(일주문 쪽)으로 올라가는 길과 뒷문 쪽(산신각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절 들머리의 신창저수지 물길을 따라 차를 몰며 목장 풍경을 감상한 뒤 소나무숲 울창한 돌계단길을 걸어오르는 맛도 각별하지만, 이번엔 ‘개심사 뒷길’을 걸어 산신각으로 내려서는 길을 택했다. 인적이 거의 없다는 “아늑한 옛길”을 걷고 싶어서다. 고풍저수지 쪽 용현계곡에서 올라 능선을 타고 ‘운산목장’(현 농협한우종자개량사업소 목장, 옛 삼화목장) 일부를 거쳐 개심사 뒷길로 내려서는, 이른바 ‘날등길’(능선길·3.5㎞)을 걸었다. 서산시에서 조성한 ‘아라메길’과 일부가 겹치는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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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 무량수전 뒤쪽 외벽의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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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유적 널린 용현계곡의 볼거리들
걷기 전에 용현계곡에서 들러봐야 할 곳들이 있다. 서산마애여래삼존상(국보 제84호)은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마애불이다. 바위벽에 선각이나 돋을새김으로 불상을 새기는 마애불은 기원전 2~3세기 인도 석굴에서 시작돼, 서역과 중국을 거쳐 백제 때 우리나라에 전파됐다고 한다.
물길 건너 산길을 잠시 올라, 앞으로 20도쯤 기울어진 바위벽 앞에 서면, 처음 보는 이도 여러번 본 이도 감탄을 금할 수 없게 된다. 1500년 세월이 무색하게, 섬세하기 그지없는 세 인물상의 변함없이 해맑은 웃음 때문이다. 높이 2.8m에 이르는 본존불(석가불) 좌우로 미래불인 미륵보살과 과거불인 제화갈라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특히 본존불의 푸근한 웃음이 마음을 씻어주는 느낌이다. 1959년 발견된 뒤 1965년부터 40여년간 보호각을 설치했으나, 햇빛이 차단되면서 습기·곰팡이로 훼손 우려가 있어 2007년 완전히 철거했다. 보호각이 철거되면서 햇빛 방향에 따라, 막 무슨 말을 건넬 듯 부드럽게 미소짓는 얼굴로, 또 유쾌한 표정으로 변하는 본존불의 복스러운 얼굴도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용현계곡의 보원사지는 백제 때 창건돼 통일신라와 고려 초에 크게 번창했다가, 보물 다섯 점으로 남은 폐사지다. 지금도 발굴이 진행중인 황량한 절터에, 보물로 지정된 거대한 사각형 석조(돌확)와 당간지주, 오층석탑, 그리고 고려 광종 때 국사를 지낸 법인국사의 부도탑인 보승탑, 법인국사보승탑비가 남아 있다. 절터에 있던 철불 2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1968년 발굴된 금동여래입상은 공주박물관에 옮겨졌다고 한다.
용현계곡 들머리에 선 소박한 모습의 ‘강댕이 미륵불’도 바라볼 만하다. 고풍저수지 수몰로 옮겨놓은, 고려말~조선초의 석불이다. ‘강댕이’란, 용현계곡 안의 마을 이름이다. 옛날 강론을 하는 곳이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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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현계곡의 서산마애여래삼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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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댕이골에서 개심사 가던 옛길과 목초지 풍경
날등길의 들머리는 용현계곡 ‘유마선원’ 입구 작은 주차장이다. 건물 왼쪽 옆으로 잠시 오르면 완만하고 푸근한 숲길이 나타난다. 신록 우거져 싱그럽고, 바람 불고 새 울어 귀가 맑아지는 아늑한 오솔길이다. 용현계곡 쪽 용현리·원평리 주민들이 개심사를 거쳐 해미읍 장터 오가던 옛길이자 스님들이 넘나들던 옛길이다. 거의 알려지지 않아, 아는 이만 찾는다는 산길이다.
해설사 김재신씨는 “10년 전쯤 이 멋진 길을 찾아내 수시로 걷고 있다”며 “지금까지 스님 몇분 말고는 만난 사람이 없을 정도로 한적한 길”이라고 말했다.
상왕산 갈림길 지나 잠시 오르면 탁 트인 목초지대에 이른다. 농협한우개량사업소 목초지(옛 운산목장·삼화목장)다. 목초지로 들어서려면, 방목한 소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철망을 넘어야 한다. 해설사 김씨는 “가축 방역활동 시기 외엔 산길 출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굽이치는 푸른 언덕들이 내려다보이는 목초지엔 뿌옇게 깔린 냉이꽃들이 바람에 쓸려 일렁인다. 우뚝 선 소나무 한 그루를 뒤로하고 초지 언덕을 잠시 오르면 널찍한 임도와 만난다. 곧이어 펼쳐지는 신창저수지 쪽 초록 언덕들과 굽이치는 목장길이 그림 같다.
산길로 들어 철망을 넘고 한동안 오르면 보원사지 쪽에서 올라오는 비탈길(아라메길 구간)과 만나 개심사 뒷길로 이어지는 능선길을 타게 된다. 완만한 소나무숲길 따라 가면 쉼터가 있는 개심사 뒷길 삼거리다. 더 가면 전망대 거쳐 일락산 숲길이나 용현자연휴양림 쪽으로 이어지고, 300m만 내려서면 개심사 산신각이다. 산신각 밑에서 왼쪽 숲길로 돌아내려가면 무덤이 하나 나온다. 추사 김정희의 11대 조모이자, 개심사 중창에 큰 도움을 준 경주 김씨 집안을 크게 일으켰다는 ‘황씨 할머니’ 묘다. 이 묘비에 쓰인 ‘숙인상산황씨지묘’가 추사의 글씨다.
서산/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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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먹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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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 수도권에서 서해안고속도로 타고 가다 서산나들목에서 나가 운산면 소재지 거쳐 618번 지방도 따라 고풍저수지 지나 용현리로 간다. 용현리에서 개심사 가는 옛길을 걸으려면, 왕복 트레킹을 하는 게 좋다. 개심사~용현리 대중교통편이 불편하다. 서산터미널에서 개심사 주차장까지 버스 운행 하루 2회, 서산터미널~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은 하루 5회.
먹을 곳 개심사 주차장 옆에 더덕정식(사진)을 비롯한 산채정식을 내는 고목나무가든 등 산채전문식당이 3곳 있다. 용현리엔 강댕이집 등 민물어죽을 내는 집들이 있다. ‘아라메길’ 1코스 출발점인 운산면 여미리에 주민들이 운영하는 향토음식점 디미방(깨묵된장·게국지백반 등)이 있다. 부석면 간월도리 대표음식은 영양굴밥이다. 큰마을영양굴밥, 간월도별미영양굴밥.
묵을 곳 운산면 여미리 유기방 가옥과 음암면 유계리 정순왕후 생가 옆 김기현 가옥에서 한옥 고택 숙박체험을 할 수 있다. 2인 5만~7만원. 용현자연휴양림의 숙박시설은 6월 말까지 공사중.
여행 문의 서산시청 (041)660-2114, 서산관광안내소 (041)660-2499, 아라메길 안내소 (041)662-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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