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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5.21 19:13 수정 : 2014.05.22 16:48

[매거진 esc] 성석제의 사이(間) 이야기
예약자 뒤통수 친 보르고호텔의 실종, 예약의 보람 선물한 비올레타의 등장

3막이 열리자 난데없이
비올레타가 누드로 등장했다
날벼락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났다
나는 눈을 비비다 말고
일행을 깨웠다

2010년 여름, 체코의 프라하에 도착하기 전에 베를린에서 빌린 차의 뒷자리에서 읽은 여행 가이드북에는 아주 흥미로운 문장이 들어 있었다.

“체코 사람들은 체코를 여행하는 외국인이 연간 1억명이라고 믿고 있다.”

체코의 면적은 7만8867㎢로 남한보다 훨씬 작고 인구는 1천만명을 조금 넘는다. 수도 프라하의 인구는 120만명쯤 되었다. 체코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거의 다 프라하를 갈 것인데 매년 방문하는 여행자 수가 거주자의 80배에 이른다면 그 도시는 당연히 숙박시설이 모자라거나 엄청나게 비쌀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일행 네 사람은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차를 빌리고 그 차를 운전하며 영어로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을 아무런 문제 없이 쓸 수 있을 정도로 외국어에 능통한 J형이 한국에서 이미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두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하고 권위가 있다는 미국의 여행 전문 사이트를 통해서였다.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가운데 가장 유명한 <몰다우>를 낳은 블타바 강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곧 프라하였다. 우리가 예약한 ‘보르고 호텔’(Borgo Hotel)은 프라하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주택가에 있다고 했다. 종이에 인쇄를 해온 지도가 명확하지 않아서 여러 군데에서 차를 세우고 확인하느라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에야 호텔 근처에 도착했다. 그런데 호텔이 없었다. 중세 영주의 저택처럼 방이 수십개는 돼 보이는 커다란 집이 있을 뿐이었다. 순간적으로 프라하 출신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성>(Das Schloss)이 떠올랐다(나중에 알았지만 Borgo는 이탈리아어로 성이란 뜻으로 독일어의 Burg와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

그 집의 대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쇠고랑이 달린 주먹만 한 자물쇠를 대문에 감아두기까지 했다. 불이 켜져 있지 않은 걸로 봐서 안에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걸어다니면서 호텔 간판이 있는지 찾다가 결국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이상하다. 분명히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확인까지 했는데.”

J형은 무척이나 황당해했다.

“전화를 한번 해봅시다. 비싸긴 하겠지만.”

일러스트레이션 이민혜
베를린에 3개월째 체류 중이라 현지의 선불 휴대폰을 가지고 있던 내가 제안했다. J형이 종이에 나와 있는 호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신호만 갈 뿐,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앞집의 발코니에 반바지를 입은 40대의 남자가 등장하더니 뭐라고 말을 했다. 남자의 말을 J형이 통역을 해줬다.

당신들 혹시 호텔을 찾느냐? 거기는 한때 호텔이었지만 문 닫은 지 몇 달 됐다. 당신들 말고도 사람들이 가끔 와서 똑같은 행동을 하더라. 저기 아래쪽에 가면 민박집이 몇 개 있다. 거기 가서 방이 있는지 물어보라.

별수 없이 차에 올라 민박을 찾아나섰다. 숙박이 가능하다는 표지가 있어서 따라가니 남자가 말한 민박집이 나왔다. 겉모습은 아담한 가정집이라 마음에 드는데 화장실 없는 작은 방 두 개에 보르고호텔의 두 배쯤 하는 가격을 불렀다. 만삭의 아내를 데리고 베들레헴에 갔던 요셉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보르고호텔 문 닫은 뒤에 이 동네 민박들이 가격을 확 올린 거 같은데. 그래도 프라하 시내에 호텔이 많을 것 같으니까 가서 찾아봅시다.”

그렇게 해서 프라하 시내 남쪽, 블타바 강변에 있는 아주 멋진 숙소를 만날 수 있었다. 민박집과 맞먹게 비싸긴 했으나 바로크풍의 건물은 생김새부터 아름다웠고 널찍한 주방에 갖가지 조리설비를 갖추고 있어서 음식을 해먹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식당의 탁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의 모델로 삼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 거실에 있는 소파에 네 명이 다 잘 수 있었으나 어떤 공주가 쓰던 침대가 아닌가 싶게 생긴 우아하게 생긴 침대가 있는 큰 방이 둘 있었다. 중요한 볼거리가 몰려 있는 시내가 가까우니 차비 들 일도 없었다. 그야말로 전화위복이었다.

하지만 예약을 했던 J형은 무척이나 화가 나 있었고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일분 일초가 아까운 프라하의 아름다운 저녁 시간에 인터넷 여행 사이트의 담당자에게 편지를 썼다. 미국에 있는 담당자는 출근 전이라 그런지 답이 없었다. 그때부터 모여 앉기만 하면 보르고호텔과 예약 사이트를 성토하는 대회가 벌어졌다. 하도 욕을 하다 보니 보르고란 말이 입에 붙어 버렸다.

이런 보르고 같은 일이 있나. 이 찌개 정말 보르고스러운 맛이네. 야, 이 보르고야! 너 자꾸 보르고 보르고 하면 보르고 만들어서 보르고에 담아가지고 보르고로 확 보르고 보르고 보르고 해버릴 거야!

프라하 체류 이틀째 되는 날 J형은 마침내 담당자와 통화를 하는 데 성공했다. J형은 사흘 전에 예약을 확인했던 호텔이 갑자기 없어져버릴 수 있느냐고 따졌고 담당자는 자신도 그런 일이 벌어진 줄 몰랐다며 사과를 했다. 다른 여행지에서 숙박비나 입장료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마일리지 포인트를 지급하겠다고 해서 분이 좀 풀렸다.

프라하에 예약을 해둔 건 하나가 더 있었다. 체코국립오페라단의 프라하국립극장 오페라 공연이었다. 주세페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로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2층의 칸막이 좌석을 통째 잡아두었다. 국내의 오페라극장에서 같은 좌석을 잡으려면 최소한 다섯 배는 더 줘야 했을 거라고 했다. 다행히 극장도 공연도 ‘보르고’가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주인공 비올레타 역은 한창 떠오르는 샛별로 각광받고 있는 20대의 아름다운 가수가 맡았다. 알프레도는 그리 특출하지 않았지만 2막에서 <프로벤자 내 고향으로>를 부르는 제르몽은 정말 목소리가 멋졌다. 눈물이 쏟아질 지경이었다. <라 트라비아타>는 1막에 유명한 아리아가 많이 몰려 있다. 2막 중반을 넘어서자 청중들의 환호와 박수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2층에서 내려다보니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입고 꾸벅꾸벅 조는 사람들까지 보였다. 우리 일행 역시 나를 빼고는 모두 시차와 싸우느라 정신이 ‘보르고’한 상태였다.

그러다 3막이 열리자 난데없이 비올레타가 누드로 무대에 등장했다.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났다. 나는 눈을 비비다 말고 일행을 깨웠다.

“계단 옆에서 오페라용 망원경을 빌려주던 이유가 있었구나. 대여료가 몇 푼이나 한다고 안 빌렸던가!”

통탄을 하는 동안 비올레타는 사람들 사이에 묻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조금 있다가 옷을 입은 채 다시 등장했다. 비올레타의 죽음과 함께 오페라는 끝이 났다.

밖으로 나온 우리는 극장 앞의 광장에 서서 격한 논쟁을 벌였다. 클래식 음악에 정통한 후배 J는 <라 트라비아타>는 3막이 시작될 때 파격적인 연출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과감한 노출을 감행한 선례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알몸이라기보다는 알몸을 연상시키는 살구색 타이츠 같은 것으로 분장을 한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었다. 그런 주장을 한 또다른 후배 J는 가장 늦게 깨는 바람에 비올레타의 충격적인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프라하, 숙소와 오페라만으로도 떠나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도시.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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