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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거스 언코크트’에 참가한 요리사들. 사진 왼쪽부터 토머스 켈러, 다니엘 불뤼, 마리오 바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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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요리
라스베이거스 미식축제 ‘베이거스 언코크트’에서 만난 마리오 바탈리·토머스 켈러 한식 접목한 요리 선보여
라스베이거스를 환락과 쾌락, 도박과 술의 도시라고만 생각한다면 큰 오해다. 식도락가라면 여행을 꿈꿀 만한 미식의 도시다. 매년 봄 열리는 미식축제 ‘베이거스 언코크트’(Vegas Uncork’d)가 견인차 노릇을 한다.
지난 5월8일(현지시각)부터 나흘간 올해도 변함없이 베이거스 언코크트가 열렸다. 올해가 8번째다.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의 홍보담당자 제시 데이비스는 “라스베이거스는 몇 해 전부터 카지노보다는 쇼핑, 다이닝,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수익이 훨씬 높아졌다”며 “그중에서 다이닝이 목적인 여행객이 최고 많다”고 말한다. 고든 램지, 마리오 바탈리, 토머스 켈러, 장 조르주, 조엘 로뷔숑, 노부 마쓰히사, 피에르 가녜르, 마이클 미나 등 유명한 미슐랭 스타 요리사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이 축제의 큰 매력이다. 축제의 꽃은 ‘베이거스 언코크트 나이트 마켓’과 ‘베이거스 언코크트 그랜드 테이스팅’.
‘앗 뜨거워’ 주인공 바탈리
이탈리아식과 한식 공통점에 주목
미슐랭 별 셋 받은 토머스 켈러
사찰음식에 도전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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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레스토랑 조엘 로뷔숑’의 디저트. 오른쪽은 마이클 미나 펍 1842’의 안주, ‘튜나 타르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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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저녁 8시. 어둠과 화려한 도시 조명이 서로를 탐하는 베니션 라스베이거스 호텔의 광장. 셰프들이 하나둘씩 얼굴을 비춘다. 베이거스 언코크트 나이트 마켓이 열리는 현장이다. 올해의 콘셉트는 아시아의 야시장. 10개가 넘는 포장마차가 식도락가를 기다린다.
하얀 복장을 한 요리사들 사이로 유독 한 사람이 눈에 띈다. 까만색의 조끼, 파란색 칠부 바지, 오렌지색 고무줄로 묶은 꽁지머리, 마리오 바탈리(54)다. 흰색 가운을 벗어던진 그는 영락없이 행사장 일꾼이다. 2007년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앗 뜨거워>(Heat)로 한국에도 팬층이 두터운 그다. ‘뉴욕에서 가장 요리를 잘하고 크게 웃는 요리사’ 마리오 바탈리와 그의 레스토랑 밥보에 관한 책이다. 그는 우리 음식을 알까? “지금 뉴욕은 한국식 치킨바비큐가 열풍이다. 나도 한식 매우 좋아한다. 특히 비빔밥, 김치, 김치가 가져다준 식문화와 바비큐를 모두 사랑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맛있기 때문이다.”
1960년 이탈리아계 미국인 가정에서 태어난 마리오는 대학에서 재무관리, 연극 등을 전공했다. “1~2분이면 (나를) 좋아하는지 안다”는 그는 직관적인 사람이다. “그냥 아니다”란 느낌만 믿고 인생의 키를 돌렸다.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뢰’ 런던분교에 입학한 것이다. 하지만 회의를 느끼고 뛰쳐나와 전설적인 셰프,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를 찾아갔다. 그의 제자가 됐다. 돌아와 미국의 유명한 호텔 포시즌 등의 주방장으로 일하다가 홀연히 이탈리아 북부 볼로냐 시골마을로 떠났다. 3년의 청춘을 바쳤다. 사회적인 지위, 수입 등을 버린 이탈리아행은 당시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불렀다. “창의적인 활동을 하기 어려웠다. 기업에 소속된 한 사람으로 (기계적으로) 움직이길 원했다. (이탈리아행은)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꿨다.” 그는 “음식에 무엇을 넣느냐보다 무엇을 넣지 말아야 하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이탈리아 음식은 본질적으로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고 말하면서 “아시아권에서는 한국 음식과 가장 가깝다”고 말한다. “다양한 풍미, 국수를 사용한다는 점, 여러 가지 재료를 다채로운 방법으로 조리하는 것 등이 닮았다.” 그는 26개 레스토랑을 거느린 식당 왕국의 제왕이다. 대중의 인기를 끈 밥보는 식당왕국의 수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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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레스토랑 조엘 로뷔숑’의 디저트. 오른쪽은 마이클 미나 펍 1842’의 안주, ‘튜나 타르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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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에서는 르 코르동 블뢰 라스베이거스분교 학생들의 장학금 마련을 위한 요리대결도 펼쳐졌다. 두 학생이 경합을 펼치는데 멘토로 요리사를 고를 수 있다. 한 학생이 마리오를 선택했다. 대결장에 입성한 마리오는 학생을 지도하면서 <무한도전> 정형돈처럼 푸짐한 몸과 재치있는 입담을 자랑하며 ‘요리예능’을 한다. 피가 흥건한 고기를 자르고 저미는 동안 풍선껌만한 땀이 통통한 볼에 흘러도 입담을 멈추지 않는다. “쌀이랑 식초를 섞고 잘 졸여진 시럽처럼 될 때까지 끓여요. 아시아 분위기 나게 이 소스를 넣으면 좋겠어요. 이것은 쌀을 발효시켜 만든 것이에요.” 결국 그를 선택한 학생 브룩 월리(23)가 2만달러 상금을 낚아챘다.
포장마차촌으로 향하자 낯익은 냄새가 뒷덜미를 잡는다. 우리식 치킨과 쌀강정이다. 안내 팻말에 ‘코리안 비비큐 프라이드 치킨’이라 아예 적혀 있다. 미국인 셰프로는 처음으로 두개의 레스토랑에서 미슐랭가이드 별점 3개를 받은 토머스 켈러(59)가 만들었다. 1994년 문 연 프렌치 론드리와 이어 연 퍼세, 부숑 등 여는 레스토랑마다 성공의 별을 단 요리사다. 그런 그가 ‘한식’을 요리한다. “한식은 새롭다. (뉴욕에서 한식이 인기인 이유는) 항상 새로운 것을 뉴요커들은 찾는다. 2년 전 한국의 절에서 맛본 김치, 동치미, 고추장, 된장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가 스마트폰을 뒤져 몇 장의 사진을 보여준다. 경북 김천의 청암사다. 참선을 하고 절밥을 공손하게 먹는 그는 선비 같다. 2년 전 신라호텔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가 청암사를 방문했다. “언젠가는 한국의 사찰음식을 배워 요리하고 싶다”고 한다. 그는 레스토랑 매니저였던 어머니, 요리사였던 형의 영향을 받았다. 선배급 요리사인 롤런드 헤닌의 ‘요리도 (우리 인간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분야’란 말에 감동을 받았다. “요리는 사람들을 웃게 하고 만족을 주는 능력이 있다”며 요리철학을 말한다. “요리는 간단한 1차방정식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손님들에게 단순한 산술적 기대치 이상의 음식을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요리는 잊지 못할 추억과 기억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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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인기 요리사는 고든 램지(오른쪽). 팬과 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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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더 그릴’의 수전 페니거가 자신이 만든 음식을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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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에 반한 요리사들은 이들뿐만 아니다. 9일 밤 베이거스 언코크트 그랜드 테이스팅에서 만난 마이클 미나(45)는 그의 펍 ‘마이클 미나 펍 1842’의 메뉴인 ‘튜나 타르타르’를 자랑하면서 맛의 비밀은 한식이라고 기자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한국의 육회에서 영감을 받았다. 육회에 들어가는 참기름, 잣, 배를 사용하고 고기 대신 참치회를 넣는 거다.” 한국인 친구를 통해 처음 접한 한식에 그도 반했다. 그는 캘리포니아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아메리카 퀴진’의 선두주자다.
축제의 밤이 깊을수록 맛의 신세계를 향한 열기는 더해갔다. 100개 넘는 음식부스가 저마다의 솜씨를 자랑한다. 와인을 든 이들이 썰물과 밀물처럼 흘러 다닌다. 괴팍하기로 소문난 고든 램지도 팬들 앞에서는 어린아이다. 어깨동무를 한 채 사진 찍기 바쁘다. 프랑스인 셰프 장 조르주는 아내 마르자가 한국계 미국인이어서인지 한식에 더 애정이 많았다. 기자에게 “한국인이냐”는 말을 먼저 건네고는 지난달 중국 상하이에 자신이 연 한식퓨전 레스토랑 ‘치큐’(김치의 ‘치’와 바비큐의 ‘큐’)의 소식을 전해준다.
일본계 세계적인 요리사인 노부 마쓰히사의 부스에서는 한국인 셰프 김민준씨도 만났다. 한식은 깊고 다양한 맛과 김씨 같은 인재들의 손을 통해 세계로 퍼지고 있다.
라스베이거스/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 요리하는 별들은 다 모였다
올해로 8회를 맞은 ‘베이거스 언코크트’(Vegas Uncork’d)는 미국의 음식 전문지 <보나페티>(Bon Appetit)가 매년 5월에 주최하는 미식축제다. 마이애미의 사우스비치 와인 앤 푸드 페스티벌, 애스펀에서 열리는 푸드 앤 와인 클래식과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미식행사다. 올해는 5월8일부터 11일까지 나흘간 열렸다. 베니션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 벨라지오, 아리아 라스베이거스, 엠지엠 그랜드 등의 호텔에서 각종 미식행사가 펼쳐진다. 라스베이거스의 호텔에 지점을 둔 고든 램지, 마리오 바탈리, 토머스 켈러, 장 조르주, 조엘 로뷔숑, 노부 마쓰히사, 피에르 가녜르, 마이클 미나 등의 스타 셰프들이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행사를 진행한다. ‘베이거스 언코크트 나이트 마켓’, ‘베이거스 언코크트 그랜드 테이스팅’ 같은 공동행사에도 참여해 솜씨를 발휘한다. ‘베이거스 언코크트 그랜드 테이스팅’은 스타 셰프들의 부스 이외에도 100개가 넘는 음식부스가 설치돼 티켓을 구매한 이들이 순례하면서 음식 맛을 본다. 이번에는 64명의 요리사들과 소믈리에들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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