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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6.04 19:36 수정 : 2014.06.05 16:45

노래 <썸>, 웹툰 <썸툰> 등 썸타는 시대에 썸을 소재로 한 콘텐츠가 활발하다.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썸타는 시대의 사랑법
썸타다. 국어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이 말은 사귀는 건 아니지만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연애로 들어가지 않거나 못하면서 그 주변을 서성이는 썸남썸녀들. 그린라이트가 켜질 때까지 서성거림은 계속된다.

2001년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전지현은 차태현에게 할 말이 있으면 다짜고짜 전화를 걸었지만, 2014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는 김수현에게 우선 문자부터 보낸다. “뭐해?” “자?” 한밤중 도착하는 이런 질문은 십중팔구 호감이기 쉽다. 카카오톡에서 주고받은 대화 내용으로 감정을 분석하는 스마트폰 서비스 ‘텍스트앳’에서 분석한 내용을 보면, “자니?”는 우선 헤어진 연인에게 늦은 시간에 갑자기 말을 걸 때 가장 많이 사용되고, 그다음으로는 주로 관심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 때 사용되는 말이다. 남자는 관심있는 사람에게 11.38%, 관심없는 사람에게는 3.26% “자니?”라며 말을 걸고, 7.9%의 여자도 관심있는 사람에게 자는지 물어본단다. 텍스트로 연애하는 시대, 당신의 감정은 메시지 창으로 읽힌다.

100% 이상 확실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세대적 특성
썸타다 연애 성공한 커플
스토리는 공상과학 판타지?

자정, 간보기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텍스트앳에서 분석한 결과로는 남자는 평균 0시35분17초, 여자는 0시43분44초에 “자니?”라는 문자를 보낸다. 남녀 모두 밤 12시40분쯤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에게 가장 “자니?”를 많이 물어본다. 이 서비스 이용자들은 주로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관심없는 사람보다 관심있는 사람과의 대화가 3배가량 많았다.

2013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개발 업체인 스캐터랩에서 개발한 ‘텍스트앳’은 남녀 3000명이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근거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가입 회원이 60만명을 넘기고 분석 대상인 카카오톡 메시지가 12억개로 늘어나면서 초기에 1~2% 차이에 불과했던 통계가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마다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이것 그린라이트인가요?”라는 질문이 넘쳐나던 참이었다. 예전엔 연애를 “썸씽 있다”고 했지만 요즘엔 연애를 하기 전 막연히 호감을 가진 상태를 “썸탄다”고 하고 관심을 가진 사람은 썸남·썸녀라고 한다. 썸남·썸녀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지를 표현하는 것이 ‘그린라이트’(구애해도 좋다는 신호)다. 예전 같으면 친구에게 상담했을 이야기지만 지금은 익명의 게시판이나 통계 알고리즘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한다.

텍스트앳에서 대화 상대를 등록한 뒤 안드로이드폰은 에스디(SD) 카드로, 아이폰은 이메일로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전송하면 상대방과 내가 서로에게 가진 애정도·호감도·친밀도를 백분율로 따져 보여준다. 서로에게 설레는 감정이 메시지 사용 행태에서도 드러난다는 것이 이 서비스의 설명이다.

사진은 문자 내용으로 관계를 진단하는 애플리케이션 ‘텍스트앳’의 서비스 화면
자음과 모음이 당신의 마음을 폭로한다. 문자를 보낼 때 가장 흔히 사용하는 ‘ㅋ’와 ‘ㅠ’는 얼핏 상대를 가리지 않는 듯 보인다. 워낙에 ㅋ는 남자, ㅠ는 여자의 기호다. 하지만 통계로 보면 남자는 마음을 준 사람에게는 ㅋ를 덜 붙인다. 여자들은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우는 표시인 ㅠ를 더 많이 적는다. 썸남·썸녀에게 보내는 고심의 문자에서 사람들은 눙치려는 뜻이 강한 ㅋ를 빼고 자신의 감정을 진지하게 표현하고, 공감을 얻고 싶어하는 신호인 ㅠ를 넣는다.

맥락이 중요하다. 주로 사용하는 말과 이모티콘은 물론이고, 누가 먼저 메시지를 보내는지, 얼마 만에 답장이 돌아오는지, 얼마나 자주 대화를 나누는지도 커플의 감정을 진단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란다. 스캐터랩 김종윤 대표는 “통화보단 주로 문자로 감정을 전달하는 시대에 사람의 감정은 대부분 정량 측정될 수 있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라고 했다.

‘선톡’(먼저 카카오톡)은 호감도의 중요한 지표다. 남자가 먼저 보낸 메시지 중 63%는 호감 대상에게 보낸 것이었다. 여자도 마음이 있다면 53%가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선톡’ 했는데도 ‘읽씹’(읽기만 하고 답장을 보내지 않음) 당했을 때 좌절하는 연애 공식은 얼추 맞는 셈이다.

오프라인에 연애고수가 있는 것처럼 썸에도 고수가 있다. 책 <여우를 사로잡는 문자의 기술>을 쓴 연애코치 곽현호씨는 지금까지 연애 상담한 내용을 정리해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었단다.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답장을 보내기만 해도 어느 정도 호감이 있다는 것이지만 특히 5분 안에 오면 그 연애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어떤 여자들은 문자 내용뿐 아니라 읽는 것을 가지고도 ‘밀당’(밀고 당기기)을 한다. 문자를 읽으면 표시되기 때문에 일단 읽지 않고 두는 여자들이 많다. 이에 비해 남자들은 빨리 읽고 바로 답장을 보내는 등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곽씨의 설명이다. 케이블채널 티브이엔에서 연애상담 프로그램 <로맨스가 더 필요해>를 만드는 문태주 피디는 “예전엔 열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는데 요즘은 나무 10그루를 동시에 찍는다. 밑밥을 여럿 던져두고 반응이 오는 사람한테 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번에 여러 사람과 썸을 타는 행위를 ‘어장 관리’라고 해서 비난하기도 하지만 들켜도 따질 수는 없다. 미묘한 호감 줄다리기만 두고 감정의 책임을 물을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곽씨는 “반대로 썸남이 선수인지를 알려면 언제 메시지를 보내는지 살펴야 한다. 주말에만 메시지를 보내는 남자는 일단 걸러라.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문자가 오는지, 짧게 끊고 끝내는지 아니면 길게 이끌어가는지, 만남을 제안하는지 연락만 하는지, 말을 할 때 소재를 다양하게 하려고 노력하는지를 보아야 한다”고 코치한다.

왜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직접 물어보지 못할까? 심리상담을 하는 ‘닛부타의 숲’ 이승욱 소장은 “100%도 아니고 1만% 확실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젊은 세대의 특성”에서 이유를 찾는다. <남자 셋 여자 셋>, <롤러코스터>를 연출하고 카이스트에서 자신이 쓴 석사논문을 바탕으로 <네 남자친구가 제일 문제다>라는 책을 쓴 김성덕 피디의 생각도 비슷하다. “초등학생만 되어도 연애를 시작한다고 하지만 정작 관계를 이끌어가는 연애 체질은 터무니없이 약하다. 일찍부터 너무 생존게임에 시달리다 보니 짝짓기 게임엔 무능한 인상이다. 카이스트에서 멘토 상담을 하는데 진로 등에 비해 연애 상담 내용은 너무 유치해서 깜짝깜짝 놀란다. 상처가 아물면서 다음 연애를 시작할 힘이 되는데 연애에서 받는 한번의 상처를 극단적으로 겁낸다.”

텍스트앳의 주사용자인 10~20대 여자들은 특히 상처 받지 않고 감정적인 긴장관계를 즐기는 썸을 택한다. 연애나 결혼은 그들에게 아직 멀리 있다. 썸을 타다가 한쪽이 적극적으로 나와 연애에 성공한 커플들의 이야기를 담은 웹툰 <썸툰>은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공상과학 판타지물로 불린다. 6월 첫째 주, 스캐터랩은 분석 내용을 토대로 적극적인 연애코치를 하는 ‘시즌2 텍스트앳’을 선보일 예정이다. 짧게는 한달, 길게는 수년까지 언제나 연애 직전인 썸남·썸녀들이 많아지면서 ‘그린라이트’를 알려주는 콘텐츠들이 흥한다.

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썸 타는’ 연애시대,〈마녀사냥〉 [잉여싸롱#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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