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6.11 19:22
수정 : 2014.06.12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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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이 김창완. 사진 에스비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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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훈종의 라디오 스타
마이크가 꺼졌다. 노래나 광고가 나갈 동안, 디제이는 분주하다. 다음 원고 미리 읽어보고, 실시간 문자 사연 챙겨야 하는데, 끼니를 거른 날엔 김밥을 욱여넣으며 다음 코너를 의논한다. 아주 가끔은 전날 뭘 잘못 먹은 디제이들이 바지춤을 움켜쥐고 화장실로 달려가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여기, 이 짧은 자투리 시간에 엄청난 일을 해치우는 디제이가 있다. 광고가 나가는 그 시간을 틈타 노래 한 곡을 뚝딱 만들어 버리는 그는 바로 김창완 아.저.씨. 김창완씨 연배의 디제이들에겐 보통 자연스럽게 ‘선생님’이란 호칭을 붙이지만 김창완씨는 담당 피디나 작가들에게 ‘아저씨’란 호칭을 강권한다. 원빈의 영화 <아저씨>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그랬다. 창완 아저씨는 이렇게 뚝딱뚝딱 만든 곡을 종종 발표한다.
김창완 밴드가 발표한 신곡 ‘이(E) 메이저를 치면’도 이렇게 얼렁뚱땅 만들어졌다. 얼마 전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 유승우와 조태준 두 가수가 출연했다. 후배들의 노래를 듣던 창완 아저씨가 갑자기 기타를 들더니 불쑥 들려준 노래가 바로 ‘E 메이저를 치면’이란 곡. 후배들이 곡이 정말 좋다며 언제 만든 곡이냐고 묻자, 창완 아저씨는 무심하게 답했다. “응, 좀 전에 광고 나갈 때.”
아직 못 들어본 분은 ‘E 메이저를 치면’을 꼭 들어보시길 권한다.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는 가사며 내레이션으로만 이루어진 독특한 구성, 추억을 이야기하지만 결코 구질구질하거나 질척대지 않는 상큼함, 장조의 노래지만 흡사 단조처럼 들리는 창완 아저씨의 애잔한 음성. 왕년에 기타 코드 좀 잡아본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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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 밴드의 ‘노란 리본’ 가사. 사진 에스비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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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의 오프닝은 10년째 창완 아저씨의 몫이다. 엉덩이의 곡선이 여실히 드러나는 쫄쫄이 반바지 차림으로 사이클을 타고 한강변을 달려 방송국으로 오면서 느낀 그날 아침의 감성을 그대로 종이에 옮겨 놓는다. 줄도 없는 새하얀 A4용지 위에 펜으로 쓱쓱 써내려간 글이 오프닝 원고가 된다. 그가 만드는 곡만큼이나 즉흥적인 원고가 청취자들의 마음을 적신다.
지난 4월28일 월요일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의 오프닝은 이랬다. “아직도 내리는 이 비가 지난 주말부터 시작됐지요. 바다가 거칠어질 거라고 하고 비가 뿌릴 거라는 예보를 들었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또다시 깊이를 모르는 슬픔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저 또한 주말을 서성대기만 했습니다. 자책, 비탄, 슬픔…. 늪 같은 그곳에 시간이 지날수록 생겨나는 건 ‘무력감’뿐이었습니다. 무작정 펜을 들었습니다. 그게 어제 오후 3시쯤. 곡은 순식간에 써졌는데 부를 때마다 눈물이 나서 취입을 못 하겠더라고요. 저희 팀(김창완 밴드)을 소집하고 국수를 한 그릇씩 먹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작업이 끝난 게 새벽 1시경이었습니다. 제목은 ‘노란 리본’입니다. 비 뿌리는 아침 눈물로 쓴 곡을 띄워드리겠습니다.”
사실 이 오프닝에서 드러나는 건, 작가 김창완의 천재적인 글재주라기보다는 인간 김창완의 진심이다. 진짜 재능은 진정으로 소통할 줄 아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 창완 아저씨는 손수 커피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 거의 아들, 딸뻘인 피디나 작가들에게 돌리곤 한다. 매일 아침 에스비에스 구내식당에서는 창완 아저씨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눈웃음을 주고받으며 함께 밥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창완 아저씨 방송 담당 스태프가 되면 꼭 집으로 초대해 비빔국수에 소주 한잔 곁들인다. 최근 아이유와의 컬래버레이션(협업)으로 내놓은 ‘너의 의미’는 또 얼마나 멋진가. 오늘도 창완 아저씨는 아름답게 이 아침을 시작한다.
김훈종 SBS 라디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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