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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작가’ 완자와 야부가 찍은 자신들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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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라이프
동성애자의 사랑 그린 네이버 웹툰 ‘모두에게 완자가’의 완자 작가와 야부를 만나다
우리가 사귀는 건 비밀이지만 사랑은 숨길 수가 없어.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겨주고, 뭐가 묻었으면 닦아주고, 서로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하나하나에 웃고 찡그리지. 그런데 왜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무도 우리를 커플로 보지 않을까? 9년째 사람들이 쉽게 상상하지 못하는 연애를 하고 있는 둘은 이십대 여성, 완자와 야부 커플이다. 지난 5월25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네이버 웹툰 <모두에게 완자가>로 동성애자의 사랑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고 있는 완자(필명) 작가와 야부(별명)를 만났다.
얼굴 없는 작가와 그 애인의 첫인상은 만화 속 묘사와 비슷했다. 158㎝ 키에 자그마하고 가는 체구의 완자 작가는 원래는 여성스러운 원피스를 좋아했지만 야부와 잘 어울리는 커플로 보이고 싶어 짧은 반바지와 셔츠로 차려입었다. “셔츠가 잘 어울리는 축복받은 상체를 가진” 키 168㎝의 야부는 예전엔 남자옷을 즐겨 입고 다녔는데 ‘네가 남자 역할이냐’는 소리가 진절머리 나서 정장 스타일로 옷을 바꿔버렸다. 만화에서 야부는 1년 365일 중 363일을 시니컬로 일관한다더니 이날은 진지했다. “(완자가 집중 포격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이렇게 숨어 있는 것이 맞을까, 저도 나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야부가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을 <한겨레>를 통해서 밝히고 싶었습니다.” 야부가 인터뷰에 응한 이유다.
“나, 회사 때려치울 거야. 웹툰 작가 할 거야. 만화로 세상을 바꿔볼 거야.” 2012년 6월 완자 작가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펜을 들었다. “불행한 동성애자들만 있는 게 아니다. 잘 먹고 잘 사는 동성애자의 삶과 사랑 이야기를 알리겠다”고 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고 뒤로 물러섰던 야부는 그의 뜻을 꺾을 수가 없어서 ‘지지대가 되어주자’고 마음먹었다가 지금은 완자 작가와 소재를 의논하고, 원고를 1차 검수한다. “생각보다 <모두에게 완자가>가 동성애 문화에 미치는 영향이 크더라고요. 이젠 완자와 같이 있기만 해도 제가 동성애자라는 게 드러날 수도 있어서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으로 몰린 기분도 들지만 적당히 벗어날 길은 없는 것 같아요.” 완자 작가 팬커뮤니티 회원은 6000명이 넘는다. 반면 이 웹툰의 연재 중단을 요구하는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글에도 2000명이 넘는 사람이 서명했다. 웹툰이 몇번의 논란을 겪는 동안 두 연인은 전우가 된 참이다.
5분에 한번씩 뽀뽀하고 지저분하게 싸우다가
비굴하게 화해하는
9년차 커플의 일상 그려 한 동성애자의 사랑과 일상을 그린 <모두에게 완자가> 댓글 창은 늘 논란투성이다. 웹툰이 늦게 올라오면 “동성애자는 원래 게으르다”고 타박하기도 하고, 두 주인공이 여자인 걸 모르고 읽어가다 “우웩, 동성애자잖아. 더러워” 하는 사람도 있었다. 완자는 굴하지 않고 “5분에 한번씩 뽀뽀하고, 지저분하게 싸우다가 비굴하게 화해하는 9년차 커플의 일상” 사이로 “우리는 둘 다 여자라서 화장품을 같이 쓰고, 공중목욕탕에서 서로 등도 밀어줄 수 있고, 커플 할인에 여성 할인까지 받는단다”라고 깨알 같은 자랑을 쏟아낸다. <표준국어대사전>이 정하는 사랑의 의미에서 동성애는 배제된 시대, 둘의 사랑은 판타지에 가깝다. 동갑내기 완자와 야부는 이웃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만났다. 동성애 사실이 알려지면서 완자는 ‘전교 왕따’가 됐다. 야부는 친구들과 선생님의 눈총을 무시하고 매일매일 교문 앞에서 완자를 기다렸다. “얘를 데리러 학교 앞에 가기만 해도 나쁜 눈초리가 쏟아지는 게 느껴졌어요. 저희 학교에선 ‘쟤가 동성애자래’ 하면 제 친구들이 ‘그게 뭐 어때서?’ 하고 막아줬거든요.” 야부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렸을 때 한번도 거부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한 적이 없다고 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은 야부 어머니는 “지금 당장은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차차 노력해보겠다”고 답했고, 요즘엔 “둘이 결혼하면 꼭 불행한 아이들을 입양해 키우라”고 권한다. 야부는 “내가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완자 말대로 세상이 그리 각박하지는 않은 건지” 궁금하단다. “동성이라고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지 말라”고 당부했던 완자 어머니는 <모두에게 완자가>가 책으로 나오자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을 하고 싶다더니 꿈을 이룬 거네” 하며 기뻐했다. 호된 경험으로 ‘게이 프라이드’를 키워왔던 완자는 “나의 삶은 대체로 행복하다”고 돌아본다. “지금도 여자친구 부모님과 만나서 식사하는 아이도 있고, 집에서 쫓겨나는 아이도 있죠. 아우팅(동성애자임을 밝히는 일) 할 때 상처 받고 무참히 거절당하면 다시는 나오려 하지 않죠. 우리를 싫어하고 혐오하는 사람은 괜찮아요. 하지만 같은 성소수자들이 우리에게 가만히 있지 왜 문제를 만드느냐고 할 때 가장 마음이 아파요. 어떤 상처가 있을지 짐작되니까요.” 완자와 야부가 <모두에게 완자가>에서 가장 아끼는 에피소드는 상처 받지 않는 커밍아웃을 그린 ‘평생 3명만’ 편이란다. 카페를 돌아다니며 숨어 있기 좋아했던 둘의 일상은 웹툰 연재를 시작하면서 급히 달라졌다. “처음 1년은 힘들었어요. 만화로는 제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 만나기도 어렵고 만나도 완자 머릿속에는 온통 웹툰 생각뿐이니까 혼자 고민을 많이 했죠.”(야부) “목요일과 일요일 주2회 연재를 하는데 나머지 5일은 번뇌 속에 살아요. 하루하루 어떻게 사는지 저도 저를 몰라요.”(완자) 야부가 보기에 완자는 몇번의 논란을 거치며 잔뜩 위축된 참이다. 자기 검열을 하느라 아이디어 스케치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무한정 길어지고 있단다. “저는 오히려 막말이나 성적인 욕은 무시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제가 양성애자라는 걸 두고 ‘쟨 저러다 결국 남자랑 결혼할 거야’라는 말에는 상처 받아요.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결혼할 나이까지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 아무리 상처 받아도 ‘댓글 덕후’라서 댓글 읽는 것을 멈출 수 없다는 완자 작가의 말이다. 반면 야부는 베스트 댓글만 보고 가볍게 건너뛴다. “엄밀히 말하면 저는 상관없지만 나쁜 이슈가 터지면 얘가 한달은 휘둘려요. 나중엔 완자와 결혼도 할 생각이니까 <모두에게 완자가>가 좀더 탄탄해지고 완성돼야 제 삶의 질도 향상되겠죠.” 야부는 완자를 위해 ‘모두에게 완자가’ 타이틀을 내걸고 동성애자들이 소통하는 자리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끙끙 앓고 있는 벽장 속 청소년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을 모아 보듬고 쓰다듬는 장을 만들었으면 해요.” 누구의 말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탁자 밑에서 똑같이 맞춰 신은 두켤레 커플 신발이 서로를 툭툭 건드렸다. 맞다 맞다, 아니야 아니야. 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맞춘다. 눈에 띄지 않을 뿐 탁자 밑에서, 벽장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랑도 있다. 이것은 왜 사랑이 아닌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완자·야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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