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캠핑카 마을 ‘오름새’에 주말이 밝았다. 조용하던 마을에 생기가 돈다. 이경전(맨 왼쪽)씨의 ‘집’ 마당에 아이들이 모여 무언가를 한다. 이제 막 마을에 입주한 송명환·이민주(맨 오른쪽) 부부는 마을의 ‘홍반장’인 이씨에게 와인잔을 받아들고 건배를 했다.
|
[매거진 esc] 캠핑카 정박촌 탐방
앞집 아이가 비어 있는 옆집에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가 그림책을 본다. 누가 갖다놨는지도 모를 수박을 같이 먹고 이야기한다.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앞집도 옆집도 집은 아니다. 캠핑카 이십여대가 정박해 만든 작은 마을을 찾아가 1박2일 동안 동네 사람이 돼봤다.
경기도 여주의 한적한 시골길 끄트머리. 작은 숲이 나온다. 내비게이션은 어느덧 안내를 종료했다. 하지만 눈앞에 차가 여러번 지나간 흔적이 있는 흙길이 이어진다. 차를 조금 더, 조금 더 안쪽으로 몰고 들어가면 다시 시야가 넓어진다. 자갈이 깔린 널따란 대지 곳곳에 하얀 집들이 모여 있다. 아니다, 집이 아니다. 하얀 차들이다. 가만, 차도 아니다. 네모반듯한 캠핑 트레일러들이다.
이곳의 공식 명칭은 ‘오름새 캠핑장’. 하지만 일반인의 캠핑 신청을 받는 곳이 아니기에 캠핑장이라기보다는 ‘오름새 마을’이라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 마을에는 21가구가 둥지를 틀고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 집을 짓는 대신 캠핑카를 가져다 두었다. 각자의 땅을 나눠 평평하게 고르고 자갈을 깔고 캠핑카를 정박했다. 그렇게 마을이 탄생했다.
도시 사는 사람들은 전원주택이나 별장을
갖고 싶다는 꿈을 꾸잖아요
가격을 따지면 별장보다
캠핑카가 실현가능한 꿈이죠 “정말 크다! 아빠, 이거 우리가 잡았어요!” 아이들 8명이 우르르 언덕을 뛰어내려왔다. 4~9살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꼭 잡고 있는 것은 어른 손바닥만한 개구리였다. 개구리는 버둥버둥, 아이들은 깔깔깔. 웃음소리가 마을에 퍼졌다. 이 집 저 집에 ‘커다란 개구리’를 자랑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5월의 마지막날 따가운 햇살 속에서 아이들은 땀 흘리며 뛰어다녔다. “주중에는 도시의 아파트에 살면서 어른들은 회사에 가고,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에 가느라 얼굴도 못 보잖아요. 그러니 주말에는 거의 무조건 이 마을로 와요. 여기 오면 마음 맞는 이웃이 있고, 아이들의 친구가 있고, 우리 가족의 별장인 캠핑카도 있으니 푸근하고 여유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이 마을의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홍반장’ 이경전(39)씨의 말이다. 이씨는 ‘캠핑 마니아’다. 동갑내기 부인 김효정씨와는 10여년 전 연애할 때부터 텐트를 들고 여행을 다녔다. 첫딸 상은(9)이가 태어나고 나서도 캠핑에 대한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이후 다영(8), 석훈(5)이가 태어났다. 가족이 늘어날수록 하나둘 캠핑 장비가 늘어나다 보니 주말에 한번 짐을 꾸리는 것이 부담되기 시작했다. 고층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 가득 짐을 싣고 3~4번 왕복해야 간신히 차를 출발할 수 있게 되었을 즈음, 다른 방식의 캠핑을 꿈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2007년에 처음으로 ‘캠핑카’를 구입했다. 차 뒤에 상자 모양의 트레일러를 끌고 다니다가 펼치면 잠자리 공간이 되는 방식의 ‘폴딩형 트레일러’였다. 어디든 가서 트레일러를 펼쳐 잠은 잘 수 있게 됐지만 아이들 화장실과 씻을 공간 등이 부족했다. 이동식 주거 공간으로 부엌과 화장실을 갖춘 ‘카라반’(주거 공간이 갖춰진 캠핑 트레일러를 뜻함)을 구입한 까닭이다. 셋째가 태어난 직후에 그는 따로 트레일러 면허를 구입해야 끌 수 있는 750㎏ 이상급 대형 카라반을 구입했다. 그리고 이 마을을 만났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어딘가 한적한 곳에 전원주택을 짓거나 별장을 갖고 싶다는 꿈을 꾸곤 하잖아요. 저희 가족은 캠핑을 좋아하니 좋은 집을 사는 대신 캠핑카를 구입하는 방식으로 그 꿈을 이룬 거죠.” 평범한 회사원인 그는 전셋집에 살고 있다. 이 마을 어귀에만 해도 ‘친환경 한옥 전원주택 2억원대’라는 내용의 홍보 펼침막이 걸려 있다. ‘억’ 소리 나는 전원주택이나 별장에 비해 1천만~5천만원대의 캠핑카는 ‘실현 가능한 꿈’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
이씨의 첫째 딸 상은과 막내 아들 석훈이.
|
|
독일 비스너 카라반의 실내 모습.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