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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드 시드니’ 축제 기간인 지난 5월28일 밤, 시드니 시립도서관(옛 세관) 건물을 대상으로 화려한 레이저빔 조명쇼가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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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여행
화려한 조명축제 ‘비비드 시드니’와 하버브리지 등반, 시 남부 해안지역 자연 탐방기
“시드니항의 멋진 건축물들이 모두 영상조명 쇼의 대상입니다.” 세계 3대 미항의 하나로 꼽히는 호주(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의 밤거리 부둣가(서큘러 키)에서, 도드라지게 빛을 발하는 오페라하우스를 가리키며 가이드가 말했다. 오페라하우스뿐 아니라 서큘러 키 일대의 수십층 초현대식 빌딩들과 200여년 전에 건축된 고색창연한 저층 건물인 현대미술관·시립도서관, 그리고 시드니항의 남북을 잇는 하버브리지, 심지어는 밤바다에 뜬 유람선들에도 레이저 빔을 쏘아 시시각각 형형색색으로 바뀌는 현란한 조명쇼를 펼친다.
시드니의 밤거리를 화려하게 수놓는 조명쇼는 시드니시가 6년 전부터 “화려한 시드니시를 좀더 생생하고 선명하게 관광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마련한” ‘비비드 축제’(비비드 시드니) 주요 이벤트 중 하나다. 올해 ‘비비드 시드니’(5월23일~6월9일) 기간에, 가을로 접어든 시드니시와 시 남부 해안지역의 경관을 찾아갔다. 조명쇼가 벌어지는 야경에다, 남반구의 푸른 가을 하늘과 바다와 흰 모래밭, 야생의 진초록 숲과 목초지가 함께하는 총천연색 여정이다.
레이저 빔 맞은 오페라하우스
색색의 꽃·파도치는 물결로 변신
134m 하버브리지 꼭대기
시드니 풍광을 한눈에
‘미항’ 밤거리 주요 건물 조명 화려한 치장
조명쇼에서 관광객들 눈길이 집중된 곳은 역시 오페라하우스다. 13년간 다양한 건축기법을 개발하며 예상 건축비의 10배를 들여 1973년 완공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까지 이름을 올린(2007년) 시드니의 대표 명소다. 흰 돛을 겹쳐놓은 것 같기도 하고, 막 입을 벌린 조개껍질들을 포개놓은 것 같기도 한 건물이 색색의 꽃으로, 기하학적 무늬들로, 파도치는 물결 모습으로 수시로 바뀌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쉼없이 반짝이며 물결치는 밤거리를, 관광객들은 쉬며 거닐며 사진 찍으며 흘러다녔다.
‘비비드 시드니’ 행사는 눈으로만 즐기는 게 아니다. 거리와 공연장 들에선 음악제·영화제·연극제 등 각종 예술 분야 행사가 동시에 진행돼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호주정부관광청 쪽은 “지난해 축제 기간엔 1만1000명의 외국인을 포함해 모두 80만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시드니를 찾았다”며 올해엔 방문객이 70%가량 늘 것으로 예상했다.
하버브리지(길이 1.15㎞)의 아치형 철제 구조물 정상에 올라 시드니항의 전모를 감상하는 ‘하버브리지 등반’은 가이드의 ‘강추’ 코스였다. 호주 국기와 원주민 애버리지니 기가 함께 나부끼는 하버브리지 정상은, 낮에는 짙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미항 시드니의 깨끗한 경관을, 저녁엔 해넘이 모습과 함께 시드니의 멋진 야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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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마 해변의 ‘블로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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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브리지 등반, 안전사고 대비 인상적
‘등반’은 1932년 건설된 놀랍도록 정교하게 짜인 철교의 수리·보수용 이동로를 따라, 높이 134m 꼭대기까지 걸어 오르내리는 과정이다. 난간을 잡고 계단과 비좁은 통로를 따라 이동해야 하므로, ‘걷기’가 아닌 ‘등반’으로 부른다. 경치보다는 운영팀의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이중삼중의 대비가 인상적이었다.
이런 순서다. 우선 휴대전화·사진기·색안경·목걸이·시계·볼펜 등 몸에 찬 모든 것을 제거한 뒤, 몸을 커다란 안전복 안에 집어넣는다. 이동통로의 쇠줄에 쇠고리를 연결해 거는 묵직한 벨트를 허리에 묶은 다음, 야광 처리되고 전깃불이 들어오는 조끼를 입는다. 인솔자의 안내음성을 듣는 헤드폰을 고리를 걸어 쓰고, 헤드라이트를 머리에 찬 뒤 모자를 쓴다. 그리고 추울 때 꺼내 입을 겉옷을 접어넣은 가방을 허리에 둘러찬다. 온몸이 처지도록 무거운 안전장비들을 30여분에 걸친 설명을 들으며 제대로 착용한 뒤엔, 등반 연습에 들어간다. 널찍한 공간에 철제 계단들과 이동로를 본떠 만든 연습장이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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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페이퍼바크 캠핑장 숲에서 만난 아기 캥거루. 방금 전, 뒤쪽에 보이는 어미의 배 주머니에서 튀어나온 녀석이다. 본다이 해변의 서핑족. 키아마 해안 풍경. 일라와라 잼버루산 숲 탐방로. 심비오 동물공원에서 만난 코알라.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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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할 때 쇠고리를 쇠줄에 꿰고 걸어라. 계단을 오를 땐 한발씩 오르되 윗사람이 완전히 오른 뒤 출발해라. 절대로 경치 구경하지 마라. 떠들지도 마라.” 일행은 마치 유령 행렬처럼 느릿느릿, 수시로 쇠고리의 연결 상태를 확인하며, 까마득한 발밑으로 차량 불빛이 맹렬하게 오고가는 쇠난간 통로를 걸어야 했다. 두시간 예상의 등반 투어는, 꼬리를 물고 밀리고 밀려오는 관광객들로 이동·대기 시간이 길어지며 세시간을 넘겨서야 마무리됐다. 전망은 좋았으나, 강풍과 추위에 시달려야 하는 등반 투어는 비용(200~300호주달러)까지 만만찮아 쉽게 추천할 만한 코스는 아니다.
시드니의 가을 한낮은 건조하고 따뜻하다. 푸른 하늘 아래 드러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해변이었다. 시내 가까이 자리잡은 본다이 해변은 시민들과 관광객 할 것 없이 누구나 찾아가 파도와 태양을 즐기는 근사한 해수욕장이다. 정부 공인 ‘누드 비치’(상반신 누드)라지만, 해변에서 만난 웃통 벗은 이들은 죄 남자였다. 남녀 서퍼들이 거센 파도를 타고 온몸으로 즐기는 바다 쪽 풍경이 볼만했다.
본다이 해변은 본디 서핑으로 이름난 곳이다. 좀 과장해 말하자면 ‘물 반 서핑족 반’이다. 가이드는 “철인3종 경기가 유래한 곳도 본다이요, 여성들이 즐겨 신는 어그부츠가 기원한 곳도 본다이”라고 말했다. 어그부츠는 서핑족들이 겨울철 보온을 위해 신던, 양털을 넣어 만든 부츠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진다.
본다이 해변에서 남쪽으로 타마라마 해변~브론테 해변~쿠지 해변까지 6㎞ 남짓의 해안 산책로가 마련돼 있다. 층층이 쌓이고 침식된 기암절벽을 따라 이어진 멋진 산책 코스로, 시드니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운동 코스다. 천천히 거니는 연인들부터 색안경에 비키니 차림으로 빠르게 걷고 달리는 젊은 여성들, 웃통 벗고 활보하는 털북숭이 아저씨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구경꾼인 관광객들까지 모두가 뭉게구름·새털구름 빛나는 짙푸른 시드니 하늘 아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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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기간에 오페라하우스는 시시각각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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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칼립투스 숲길에서 마주치는 야생동물 감동
시드니 시내를 1시간쯤 벗어나면 곧바로 광활한 대자연이 펼쳐진다. 시드니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인기있는 방문지가 시드니 서쪽의 블루마운틴이지만, 이번 일정은 시드니 남부를 해안을 따라 가는 여정이다. 울런공·키아마 지역을 지나, 조개껍질이 부서져 이룬 흰 모래해변으로 이름난 저비스베이에 이르는 일라와라 지역의 해안과 숲을 찾았다.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캥거루, 하루 20시간 잠에 빠져드는 코알라 등 호주의 대표적 동물들을 직접 안아보고 먹이도 줄 수 있는 아담한 심비오 동물공원을 거쳐 호주 개척기의 옛 건물들이 남아 있는 소도시 베리를 둘러보고 키아마의 ‘블로홀’에 도착했다. 블로홀은 말 그대로, 해안의 커다란 바위 구멍 밑에서 파도가 맞부닥치며 물줄기를 분수처럼 뿜어올리는 곳이다. 굉음과 함께 20여m 높이로 물줄기가 솟구치는 장관을 보려면,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 일렁이던 파도가 바위 밑 공간을 가득 채우고 밀려나오다 커다란 파도와 만나 서로 맞부닥치면서 절정의 물기둥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헐떡이듯 쉭쉭 소리를 내며 물보라가 자주 보이면 때에 이른 것이다. 작은 파도를 몇번 보내고 더 큰 파도가 닥치기를 거듭 기다린 뒤에야, 마침내 바위 구멍에선 격정적이고 거대한 물보라가 분수처럼 터져나온다.
일라와라 지역의 잼버루 산에선 철제 탐방로를 따라 걸으며 숲속 깊숙이까지 둘러볼 수 있는 ‘플라이 트리톱 워크’ 체험을 할 수 있다. 울창한 숲에서 머물 때 감동적인 것은 야생동물과의 조우다. 저비스베이 내륙의 페이퍼바크 캠핑장 숲에서 이른 아침, 주머니에 아기 캥거루를 담은 어미를 포함한 야생 캥거루 가족을 만났다. 유칼립투스 나무 사이로 캥거루 세 마리와 눈이 딱 마주친 순간, 얼어붙은 듯 한동안 이방인을 응시했다. 그러더니 차례로 고개를 흔든다. 절레절레. 마치, 누군가를 오래 기다려 왔으나 넌 아니라는 표정. 고개를 흔드는 건 긴장한 캥거루의 경계 행동이라고 한다.
저비스베이는 돌고래 관찰 투어로도 이름난 곳이다. 허스키슨항에서 수시로 돌고래 탐방선이 뜬다. 흰 모래가 눈부신 해안을 따라 돌며 여기저기서 몸을 솟구치는 돌고래들을 관찰할 수 있다.
시드니/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 시드니 여행쪽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이 매일 인천~시드니 직항편을 운항한다. 비행시간 10시간 안팎. 시차는 한국보다 1시간 빠르다. 6월은 겨울로 접어드는 철이다. 아침저녁으론 서늘하고 한낮엔 섭씨 20도 이상으로 오른다. 충전을 위해 멀티어댑터를 준비해야 한다. 화폐는 호주달러(6월11일 현재 1호주달러=950원 안팎).
뉴사우스웨일스주는 호주 동남 해안에 자리잡은 호주 경제·행정의 중심 주다. 호주의 수도 캔버라도, 최대 도시 시드니도 뉴사우스웨일스주에 속한다. 호주는 1770년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이 시드니 보터니 만에 상륙한 이래, 1788년부터 1840년까지 15만명에 이르는 영국 죄수들이 이주하며 만들어진 나라다. 시드니의 항만지역인 ‘서큘러 키’ 일대는 1788년 1300여명의 죄수가 11척의 배에 나눠 타고 첫발을 디딘 곳이다. 부둣가의 ‘더 록스’ 거리가 이주민들이 처음 마을을 형성했던 곳이다. 당시의 건물들을 비롯한 오래된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호주정부관광청 (02)399-6500, 뉴사우스웨일스주 관광청 (02)752-4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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