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6.18 19:30
수정 : 2014.06.19 17:43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요즘 뜨는 냉면맛집 3
최고의 요리사도 힘들다는 냉면 맛내기에 성공하면서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는 식당들이 있다
평양냉면은 좀처럼 제맛을 내기 쉽지 않은 음식이다. 그렇다 보니 신흥 함흥냉면 명가는 생겨도 평양냉면은 별로 없다. 하지만 작년부터 평양냉면 명가들에 거센 도전장을 내미는 식당들이 회자되고 있다. 각자 개성 강한 맛을 자랑해 냉면 애호가들의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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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면옥의 평양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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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한 면발의 여운 정인면옥
“육수에서 쇠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조금 나서 좀 부담스럽다”는 기자의 평에 주인 변대일(54)씨는 머리를 긁으면서 “오늘 좀 그랬다. 매일 같은 고기, 같은 부위가 들어와도 쉽지 않다. 앞으로 더 노력하고 열심히 해서 보완할 것”이라고 답한다. 정직하고 성실한 주방장은 반드시 문제를 해결한다. 그는 2년 전 경기도 광명시에서 식탁 7개로 아담하게 냉면집 ‘정인면옥’을 열었다. 맛이 소문나면서 ‘면식수행자’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주방이 좁아 새로운 걸 해볼 여지도 없었다.” 올해 4월 광명시의 정인면옥을 친구에게 넘기고 서울 여의도에 입성했다. 140여명은 넉넉히 들어가는 넓은 공간이다. 규모가 커지면 식당도 한동안 수습 기간이 필요하다. 그 과정을 통해 맛이 제자리를 찾는다. 그에게도 냉면 가계도가 있다. 평양 선교리가 고향인 아버지 변인주(1998년 작고)씨는 1972년 서울 홍제동에 ‘평양면옥’을 열었다. 몇 년 뒤 임대료 문제로 구로구 오류동으로 옮겼고 작고한 뒤에는 아들들이 맡았다. 변대일씨는 12살부터 부모를 도와 면을 삶고 대학 졸업 뒤에도 가게에서 일했다. “시장통에 있었는데 연탄 피워 육수를 냈다.” 변씨는 한우 사태와 양지머리 등으로 육수를 낸다. 돼지고기가 들어가나 소량이다. “육수에 다른 채소는 안 들어가고 파만 들어가는데 아버지의 방법이다.” 면은 투박하고 거칠다. “매일 메밀을 갈고 면에 아무것도 안 넣는다. 아주 많이 치댄다.” 자신의 냉면에 자신감이 있다. 8000원.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 76길 10/02-2683-2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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뿅뿅샤제록의 모리오카 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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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상륙한 모리오카 냉면 뿅뿅샤제록
“그때는 수술하고 재활하면 다시 뛸 줄 알았다” 전직 농구선수 신제록(30)씨는 2007년부터 2년간 프로팀에서 뛰다가 상무에서 활동할 당시 허리를 다쳤다. 허리 디스크는 계속 재발했고 대수술은 이어졌다. 절망은 컸다. “걷지도 못한다” 등 온갖 소문이 돌았다. 2011년 자유계약 자격을 얻었지만 오라는 팀은 없었다. “증명해 보이고 싶은” 고집 하나로 일본에 날아가 용병 생활을 시작했다. 비제이(BJ)리그에서 성적이 꽤 좋았다. 하지만 허리가 계속 뒷덜미를 잡았다. 인생은 반전이 있어 인생인가 보다. 숙소가 이와테현 모리오카시 인근에 있었다. 모리오카시는 ‘모리오카 냉면’의 본고장이다. 1954년 재일동포 1세인 양용철씨가 고향 함흥에서 먹었던 냉면이 그리워 개발한 냉면이다. 양씨의 냉면집 ‘식도원’은 날로 유명해졌고 그를 따라 ‘명월관’, ‘뿅뿅샤’, ‘세로각’ 등이 생겨났다. 일본 전역에서 맛보러 올 정도로 명물이 됐다. 신씨는 한끼 해결하자고 들어간 ‘뿅뿅샤’에서 모리오카 냉면 팬이 됐다.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한인단체에서 뿅뿅샤의 주인인 재일동포 2세 변용웅(65)씨 부부도 만나 가족처럼 친해졌다. 그는 한국에 돌아와 2012~2013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그때 나이 고작 28살. 미련 없이 일본으로 날아가 냉면 요리사로 변신했다. “아내와 두 자녀가 있다. 가족을 책임지려면 기술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승은 변씨였다. 변씨는 제조 비법을 알려주고 강도 높은 훈련을 시켰다. “5개월간 하루 2~3시간밖에 못 잤다.” 지난 3월 그동안 흘려온 땀방울이 열매를 맺었다. 뿅뿅샤의 첫 한국지점인 ‘뿅뿅샤제록’이 그의 손에 의해 탄생했다. 그의 모리오카 냉면은 한마디로 재밌다. 딱히 평양냉면이라고도 함흥냉면이라고도 단정짓기 어렵다. 면은 감자전분과 밀가루로 만들어 탱탱하기가 놀라울 수준이고, 푸짐한 양배추김치, 제철과일, 장조림 등이 고명이다. 육수는 사골, 양지, 닭, 파 등으로 내고, 뿅뿅샤만의 조미료를 넣는다고 한다. 20대의 혀를 사로잡았다. 형 덕에 유명 배우들도 많이 찾는 맛집이 됐다. 배우 신성록씨가 그의 형이다. 8000~1만2000원. (서울 강남구 선릉로 157길 20-8/02-3444-0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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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라도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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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마와 표고로 우린 국물맛 능라도
진입 장벽이 높은 평양냉면 명가의 세계. 그 벽을 넘보는 냉면집이 있다. 서판교에 위치한 ‘능라도’다. 이미 냉면 마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자자하다. 음식칼럼니스트 박찬일이 육수 맛을 보고 ‘쩡하다’고 표현한 집이다. 주인 김영철(55)씨는 20년 넘게 환경 관련 사업을 한 기업가였다. 냉면을 좋아했던 부친의 유지를 받아 3년 전 ‘능라도’를 열었다. 본래 ‘능라’로 불렸으나 최근 김씨는 상호를 ‘능라도’로 확정했다. “아버지는 1·4후퇴 때 집에서 해먹던 냉면국수틀을 챙기신 분이다. 평양고보 출신이신데 동창들과 냉면집을 자주 다니셨다. 늘 (나에게) ‘냉면 장사 해라’ 하셨다.” 사업을 접자 부친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부친의 사진을 정리하다가 냉면 레시피를 발견했다. 2년간 전국을 돌면서 냉면 연구에 몰입하고 하루 한끼는 꼭 냉면을 먹었다. 처음 6개월은 고전했다. 이른바 냉면명가들의 맛과는 조금 달랐다. “한번은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이 와 맛있었는지 포장까지 해 갔다.” 그쯤 연예인이 오기 시작하고 입소문이 났다.
한우 투플러스(1++) 사태, 양지, 설도 등으로 육수를 낸다는 그는 자신 있게 한우 구입 세금명세서를 보여준다. 돼지고기도 들어간다. 국물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독특한 풍미다. 국물 우릴 때 다시마와 표고버섯이 들어가는 점이 특이하다. “면은 습도의 차이 같은 계절의 영향을 받는다. 그 감에 따라 메밀가루와 고구마 전분을 섞어 반죽한다.” 그는 메밀에 관해서 박사급이다. “통메밀을 언제 도정하느냐가 중요하다. 11월에 추수한 메밀을 저온 보관하는데, 4월이면 묵은 메밀이 돼서 맛없다.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방법이 필요하다.” 그는 반죽하기 전날 도정한다고 한다. 1만원.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산운로 32번길 8/031-781-3989)
박미향 기자
mh@hani.co.kr
>>> 집에서 평양냉면 육수 따라 해보기
실력 출중한 요리사도 제맛 내기가 힘든 음식이 평양냉면 육수다. 각오하고 시작하자.
사골, 한우 잡뼈, 사태살, 양지머리 등이 주재료. 돼지고기, 닭고기, 대파, 무, 양파 등의 채소는 부재료다. 입맛에 따라 돼지고기와 닭고기는 빼기도 한다. 양지머리나 사태살 위주로만 육수를 낼 경우 4인분 기준 300g에 물 15컵을 넣어 끓인다. 이 경우에는 느끼한 맛을 줄이기 위해 동치미 국물과 1:1 로 섞어 최종 육수를 만든다. 우릴 때 최소 4시간 이상 끓인다. 고기는 대략 1시간 반 정도, 익었다고 판단되면 꺼낸다. 끓이기 전에 피를 빼는 등의 손질은 기본. 육수는 차갑게 식힌다. 소량의 간장, 소금 등으로 간을 한다. 끓이는 동안 올라오는 불순물을 계속 걷어내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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