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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6.25 19:30 수정 : 2014.06.26 15:52

터키 남서부 으스파르타와 부르두르 경계에 솟은 아크 산 서남쪽 자락(부르두르 지역)의 고대 도시 사갈라소스 유적지. 지금도 발굴작업이 진행중이다. 원형극장 위쪽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매거진 esc] 터키 으스파르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고리인 터키 아나톨리아 반도는 2000년의 세월이 닦아 반짝반짝 빛나는 고대유적으로 가득한 곳이다.
지중해의 푸른 물빛과 어울려 그 아름다움은 한층 고조되고 여기에 보태지는 장미향은 천상과 지상의 구별을 어렵게 한다.

“일주일 동안 돌덩어리 구경만 하고 다닌 거 같네요.” 터키 이스탄불에서 만난 한 한국인 관광객의 터키 여행 소감이다. 그럴 만하다. 터키가 자리한 아나톨리아 반도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고리 구실을 하며 고대부터 무수한 문명들이 명멸했던 지역이다. 수천년 전 문명의 흔적은 무수한 대리석 돌기둥과 성벽, 무너진 건물 터 들로 남았다. 다양하게 다듬어진 대리석 조각들엔 빛나는 인류 문명사의 세월들이 아로새겨져 있다.

아나톨리아 남부에 동서로 뻗은 산맥이 토로스 산맥이다. 터키 동쪽 유프라테스강 상류에서 터키 남부 지중해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이어진다. 대부분 해발 3000m급의 고봉들로 이뤄진 이 산맥의 정상부는 풀 한포기 자라지 못하는 석회암 바위지대다. 석회암이 굳어져 생긴 변성암이 대리석이다. 토로스 산맥 남서부 일대 곳곳에, 무너지고 깨지고 금가고 닳아빠진 아름다운 대리석 유적들이 무수히 깔려 있다. 터키 남서부 지중해 해안의 중심도시 안탈리아(안탈야)에서 북쪽으로 약 120㎞, 으스파르타(이스파르타)와 부르두르 경계에 솟은 ‘아크다으’(하얀 산) 산자락에서 만난 사갈라소스 유적도 그중 하나다. ‘장미의 도시’ ‘호반의 고도’로도 불리는 으스파르타 일대를 탐방하는 일은, 그래서 하양(대리석)·분홍(장미)·파랑(호수) 등이 어우러진 ‘삼색 여정’이라 할 만하다.

사갈라소스 분수대 옆 건물 벽에 장식된 뮤즈 여신들 조각상.
하양 / 무너져서 더 빛나는 사갈라소스 유적

으스파르타는 인구 20여만명이 사는 고원도시다. 으스파르타와 서남쪽의 소도시 부르두르와 경계를 이룬 산이 ‘하얀 산’을 뜻하는 ‘아크다으’다. 이 산 서남쪽, 해발 1700m의 산자락에 그 빛나는 일단의 대리석 무리들이 빼곡하게 깔린 옛 도시가 있다. 행정구역상 부르두르에 속한 지역이다.

안탈리아에서 으스파르타를 잇는 대로를 벗어나, 키다리 포플러 나무 숲으로 들면 아을라순(아글라순)이라는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여기서 다시 10㎞쯤 심한 굽잇길로 따라 차를 달려 오르면, 2000년 전 대리석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기원전 13세기에 처음 도시가 형성된 이래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 무렵까지 크게 번성했던 고대 도시 사갈라소스 유적지다. 고대 국가 피시디아의 중심도시 중 하나로, 여러 번의 지진과 외침을 겪으며 폐허처럼 변한 곳이다.

무너져가는 흰 돌들이 이토록 아름답게 빛나는 건 눈부신 햇빛과 짙푸른 하늘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위산 자락, 야생 밀과 잡초들 우거진 완만한 경사면을 따라, 무너져내리다 만 흰 기둥들과 건물 벽에는 들여다볼수록 빠져들게 하는 섬세한 그림과 무늬들이 채워져 있었다. 그것들이 다 스스로 빛을 내며 반짝이는 발광체였다.

터키 지중해안의 중심도시
안탈리아에서 120㎞ 북쪽에
위치한 으스파르타 탐방은
대리석과 장미, 호수의 빛깔이
어우러진 삼색여정이다

가이드 두르순은 “사갈라소스는 번성했을 당시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요정의 도시’ ‘열정의 도시’ 등으로 불리며 각국의 황제들이 모두 탐을 냈던 도시”라며 “피시디아 유적 중 가장 원형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9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는 원형극장도, 냉·온탕까지 갖췄다는 목욕탕도, 시민들의 모임의 장소이자 장터였던 아고라도, 그리고 분수대·교회·도서관·절벽무덤 들까지 무너져내린 모습이다. 하지만, 고대 도시국가들이 갖췄던 모든 구성요소의 흔적들을 만나볼 수 있다. 종달새 울고 도마뱀 줄달음치는 탐방로를 따라 2~3시간이면 대충 한바퀴 둘러볼 수 있다. 맨 위쪽에 자리잡은 원형극장 무너진 돌더미 위에 올라서면, 푸른 하늘 아래서 소리없이 명멸하는 뜬구름 조각들과 함께 옛 도시 흔적을 한눈에 짚어볼 수 있다.

폐허가 된 뒤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사갈라소스 유적은, 1706년 파울 루카스라는 프랑스의 탐험가에 의해 유럽에 알려졌다. 하지만 1985년에야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영국·벨기에 합동발굴단이 본격 발굴을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도 발굴작업이 진행중이다.

으스파르타 괴넨 지역 주민들이 장미꽃을 따고 있다.
분홍 / ‘장미의 도시’ 세계적 명성 으스파르타

으스파르타 시청 뒤 작은 광장엔 장미꽃다발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의 동상 하나가 서 있다. 터키에 장미를 처음으로 들여왔다는 이스마일 에펜디의 동상이다. 그는 1888년 불가리아에 다녀오는 길에 장미 꽃씨를 지팡이에 몰래 숨겨가지고 왔다고 한다. 우리나라 문익점 격인 인물이다. 이때부터 으스파르타 지역에서 분홍색 ‘로자 다마세나’ 품종이 재배되기 시작해 지금은 거의 모든 마을에서 ‘장미 농사’를 짓는다.

이 지역의 장미는 관상용이 아닌, 100% ‘장미오일’ 생산용이다. 으스파르타 주민이자 터키 서부지중해개발공사 국제협력 담당자인 메흐메트 페흘리완은 “전세계 장미오일 생산량의 65%가 으스파르타에서 나온다”며 “장미오일의 95%를 프랑스 등의 유명 화장품 회사로 수출한다”고 말했다.

터키 남서부 여행
으스파르타에서 대표적인 장미농원 마을이 괴넨이다. 5월 중순부터 6월까지 장미꽃 따기 작업이 이뤄지는데, 매일 새벽 이슬을 맞은 꽃을 따야 향과 품질이 뛰어난 장미를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지난 6월16일 괴넨 마을에선 장미 수확이 한창이었다. 읍내 영농조합에선 주민들이 수확해 경운기에 산더미처럼 싣고 온 장미꽃 자루의 무게를 달아 수매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메흐메트는 “1㎏의 장미오일을 만들려면 ‘100만 송이의 장미’(엄청난 양이라는 뜻, 대략 3~5t)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을의 한 장미농가에서 받은 아침 밥상에도 장미 향기가 가득했다. 양귀비 씨앗을 넣어 만든 빵도, 빵을 찍어먹는 잼도 장미를 이용해 만들고, 뷔페식 식탁과 접시도 장미 꽃송이들로 장식했다. 이곳 전통 방식대로, 음식을 접시에 덜어 들고 방바닥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면서도, 담소하며 홍차를 마시면서도 장미 향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이드 두르순은 이렇게 말했다. “이게 바로 ‘모하메드(무함마드)의 겨드랑이 냄새’입니다.” 그는 “이슬람 신자들은 모하메드를 존경하는 뜻에서, 장미꽃 향기를 그의 겨드랑이 냄새라고 표현한다”고 말했다.

에이르디르 호수. 호수 남쪽 언덕 위에서 본 모습이다.
파랑 / 짙푸른 물빛 돋보이는 에이르디르 호수

으스파르타 시내에서 동쪽으로 30~40분쯤 차를 달리면 바다처럼 여겨지는 민물호수 에이르디르호에 이른다. 터키에서 네번째로 큰 호수이자, 담수호로는 두번째로 큰 규모의 호수다. 해발 900m의 고원지대다. 짙푸른 호수 물빛과, 도로로 이어져 가늘고 긴 반도처럼 보이는 작은 섬인 ‘예실아다(예쉴라다) 섬’ 풍경 등 경관이 아름다워 사철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호수다. 호숫가 에이르디르 마을엔 오래된 집들과 사원 등 유적, 식당·펜션 등이 즐비하다.

호수 남서쪽 언덕길을 따라 오르면, 호수 경관을 즐기며 식사하고 차를 마실 수 있는 방갈로식 식당(악프나르 이외뤼크 차드르)이 있다. 호숫가에 자리잡은 마을의 붉은색 지붕을 한 집들과 푸른 하늘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물빛, 그리고 가느다란 막대기 끝에 달려 있는 듯이 보이는 예실아다 섬 풍경이 그림 같다.

에이르디르 호수는 상수원보호구역이지만 무동력선을 이용하면 제한적으로 낚시가 가능하다. 일부 백사장에선 수영도 할 수 있다.

으스파르타(터키)/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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