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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블루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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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요리
7월 제철 식재료 산지 투어 | 수확 한창인 강원도 원주 김기연씨의 유기농 블루베리 농장
햇살이 키 작은 나무에 꽂힌다. 허리춤에도 닿지 않는 나무 사이로 젊은 남녀가 보인다. 웃음꽃이 만발한다. 김사랑(27)씨와 강신(31)씨는 3년째 사랑을 이어온 연인이다. 민소매에 드러난 흰 팔이 싱그럽다. 이들이 지난 4일 찾은 곳은 블루베리 농장 ‘드림베리’(강원도 원주시 행구동)다. 사랑씨는 블루베리 묘목 5그루를 아파트 베란다에서 이미 키워본 적이 있다. “실력이 안돼서 다 죽였어요.” 아쉬움이 남아 농장을 찾았다. 블루베리를 직접 따 용기에 담는다. “농장 주인에게 부탁했더니 허락해주셨어요.”
2007년부터 전국적 재배면적
쑥쑥 늘어나
제주부터 경기·강원까지 재배
하루 30알 먹으면
눈까지 맑아지네
10년 전만 해도 블루베리는 우리에게 다소 낯설고 비싼 과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년 사이 진달래과 산앵두나무속에 속하는 블루베리는 여름철 대표 과일이 될 정도로 인기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재배 농가와 미국, 캐나다, 칠레 등에서 수입하는 양이 늘면서 가격도 내렸다. 블루베리는 <타임>이 2002년 세계 10대 ‘슈퍼푸드’로 선정해 주목을 받은 먹거리다. 항산화물질인 안토시아닌이 포도보다 30배 이상 많고 비타민 C와 E, 칼슘, 철, 망간 등의 무기질이 풍부하다. 시력 회복이나 장운동,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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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베리 농장에서 블루베리를 따고 있는 김사랑·강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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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베리 농장주 김기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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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베리의 주인 김기연(52)씨도 블루베리의 매력에 푹 빠져 7년 전 9917.3㎡(3000평) 넓이의 땅에 재배를 시작했다. “한 번 심으면 60년은 산다는 것도 끌렸어요. 캐나다에서 환갑이 된 사람이 ‘블루베리는 같이 늙어온 친구’라고 한 것을 잡지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자신이 태어나자 부모님이 블루베리를 심었다고 해요.” 25년을 전업주부로 살다가 시작한 일이다. 가족의 반대에도 굴하지 않았다. 흙을 파고 열매를 따는 동안 갱년기가 소리 없이 지나갔다.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키우는 게 중년 여성들의 갱년기 우울증이나 건강 악화를 막는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아이들 다 키우고 시작한 일, 매일이 즐겁습니다.” 까맣게 탄 피부가 자랑스럽다. 그는 익숙하지 않은 농사를 제대로 하고 싶어서 방송통신대 농학과의 문을 두드렸다. 상지대에서 석사학위도 곧 받을 예정이다. 활기가 넘치는 농부다.
처음 그가 한 일은 땅을 산성화시키는 것. 블루베리는 수소이온농도지수(pH, 산성도나 염기도를 나타내는 척도)가 4~5 정도인 토양에서 자란다. 피트모스(이탄토, 습지, 늪 등에 수생식물 및 그밖의 것이 부식화되어 쌓인 것)를 땅에 섞어 산성도를 맞추었다. 수백가지의 품종 가운데 북부 하이부시종인 스파르탄과 블루레이를 선택했다. 블루베리는 식물학적으로 크게 3종으로 나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하이부시, 키가 15~30㎝ 정도밖에 안 되는 로부시, 3m 이상 자라는 래빗아이 등. 하이부시는 키가 1~3m 정도로 65%가 생과용, 35%가 가공용으로 쓰인다. 150여가지 품종이 있다. 농가들은 이밖에도 듀크, 블루크롭, 엘리엇, 드레이퍼 등의 하이부시 품종을 선택해 키운다. 래빗아이는 열매가 익기 전에 토끼 눈처럼 빨갛게 변해 붙은 이름이다. 국내에서는 일부 지방에서만 재배할 수 있다고 한다.
김기연씨는 유기농 재배를 결정했다. “병충해가 심하지 않아 굳이 농약을 칠 필요가 있을까 싶었어요.” 풀, 쌀겨, 다시마, 황태 머리 껍질, 인진쑥 등을 미생물과 섞어 발효시킨 액체 비료를 쓴다. 작년부터 유기농 생산 방식을 인정받아 한살림에 납품하고 있다. “5년 전부터 매년 신청했는데, 올해 납품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기뻐요.” 고난은 인생의 선물이다. “처음에는 봄철 냉해에 약하다는 것을 몰라 수확을 거의 못 하고 다 버렸어요.” 병충해에는 강하지만 추위와 건조, 습한 기온에 블루베리는 약하다. 변덕스러운 봄 날씨, 수확기인 7~8월에 찾아오는 장마가 큰 골칫거리였다. “2~3일에 한 번씩 물을 줘요. 물을 많이 줘야 잘 자라는 과일입니다.” 그는 요즘 새벽 5시면 일어나 농장에 간다. 일꾼들과 열매를 딴다. 1그루당 블루베리가 3~5㎏ 정도 달리는데, 흰색 분이 하얗게 앉은 열매를 보면 고단함이 사라진다. 원주 지역에서는 김기연씨가 처음 생산을 시작했다. 현재 12농가가 재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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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한 블루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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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베리 농장 가족들이 자주 만들어 먹는 블루베리잼 샌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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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기준 전국 4354농가가 약 1500㏊의 재배면적에서 5046t을 생산한다. 우리나라에 블루베리가 처음 소개된 때는 1965년이다. 당시 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현 국립원예특작과학원)는 재배를 목적으로 연구에 돌입했으나 한국 토양에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얻었다. 1990년 말~2000년대 초에 이르러 재배가 시작됐다. 농가 소득 작목으로 인식되면서 2007년부터는 재배면적이 연평균 54%씩 증가했다. 2007년 112㏊였던 것이 2013년에는 1516㏊까지 늘었다. 당시 전북이 생산의 44.6%를 차지했으나 지금은 제주도부터 강원도까지 전국적으로 재배된다.
블루베리는 미국 대륙의 원주민들이 발견한 신의 선물이다. 원주민들은 야생 블루베리를 채집해 끼니로 먹고, 아플 때는 약재로 썼다. 옷을 염색할 때도 사용했다. 블루베리 잎과 뿌리도 요긴했다. 볶아 두었다가 뜨거운 물에 타 차로 마셨다. 블루베리차는 출산을 앞둔 산모들이 많이 마셨다. 요즘으로 치면 신경안정제였던 셈이다. 실제로 잎은 열매보다 항산화 기능이 30배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1620년 풍토병에 시달린 미대륙 이민자들은 왐파노아그족 인디언들로부터 블루베리를 전해 받았다고 한다. 이민자들은 처음 먹은 열매에 열광했다. 1900년대 초 미국 농무부 소속 프레더릭 코빌 박사는 야생 하이부시 블루베리를 품종개량해 상업적 생산이 가능하도록 했다. 1920년대에 본격적인 재배가 시작됐다. 인기 있는 과일치고는 역사가 짧다. 블루베리는 미국이 원산지이나 최근에는 캐나다, 칠레, 유럽, 뉴질랜드 등지까지 퍼져 재배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50여년 전 재배를 시작했다.
블루베리와 관련한 영국 공군의 일화는 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의 한 공군 조종사가 블루베리잼을 듬뿍 바른 빵을 먹고 출전하자 야간에도 물체가 잘 보였다고 증언했다. 그 보고를 토대로 시력 회복과 관련한 연구가 진행됐다고 한다.
몸에 좋다는 블루베리, 얼마나 먹어야 우리 몸에 효과가 있을까? 농촌진흥청 자료를 보면 생과로 하루 40g(열매 약 20~30개) 이상을 3개월 넘게 꾸준히 먹으면 시력 감퇴 억제나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블루베리는 생과로도 먹지만 빵, 쿠키, 케이크, 잼, 주스 등의 재료가 된다. 최근에는 아이스바, 송편, 케첩, 막걸리, 요구르트, 양갱 등에 넣거나 비누, 화장품을 만드는 데도 활용하는 농가들이 생겨났다. 한살림, 아이쿱 등의 매장에서는 생과를 1㎏당 3만2000~4만원대에 판매한다. 대형마트는 냉동 블루베리일 경우 대략 900g당 7000~1만원대, 유기농 블루베리일 경우 200g당 대략 5000원대에 판다. 유기농 재배가 아닐 경우 300g당 7000원대로 판다. 대부분의 생산농가들은 택배배송 한다. (사)한국블루베리협회 누리집에서 회원 농가를 확인할 수 있다. 김씨는 1㎏당 2만8000원에 판다.
김기연씨는 지난해부터 ‘아로니아’라 불리는 초크베리 재배에도 도전하고 있다. 생과 가격이 블루베리의 10배나 되는 장미과 식물이다. “나무를 가만히 보면 뭐가 필요한지가 보여요. 할아버지가 과수원을 하셨는데, 제가 할아버지 능력을 이어받았나 봐요.”
원주/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참고 농촌진흥청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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