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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7.09 19:18 수정 : 2014.07.10 11:18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여름특집 - 추리소설
“여름이 왔다!”고 외치기 무색하게 벌써부터 날씨는 뜨겁다. 그래서 준비했다. 납량특집. esc가 오랜 추리의 귀재들을 지면으로 불러모았다.
코넌 도일의 ‘셜록 홈스’, 애거사 크리스티의 분신 ‘미스 마플’, 일본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의 ‘김전일’에게 바치는 오마주. 최고의 탐정은 누구?

눈처럼 하얀 머리칼과 쪼글쪼글하고 발그레한 얼굴. 영국의 작은 마을 세인트 메리 미드에 사는 ‘미스 마플’은 다정하고 순진해 보이는 파란색 눈동자를 하고 폭신폭신한 털실에 둘러싸여 있었다. 발치에는 <한겨레> 신문. “아, 벌써 신문을 읽을 시간이군!” 어느새 완전히 밝아져버린 창 밖을 바라보며 그는 뜨개질을 멈췄다.

같은 시각 영국 런던의 베이커가 221B. 검은색 철문이 열리고 두 남자가 나왔다. “홈즈, 오늘은 비가 오지 않을 모양이군.” “어리석긴 왓슨, 저 멀리 먹구름이 보이지 않는가?” 셜록 홈즈는 미간을 찌푸리며 문 앞에 배달되어있는 신문을 집어들었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름의 신문은 왜그리 챙겨 읽나?” 왓슨이 물었다. “여보게 왓슨, 오늘은 목요일이 아닌가?”

“후아암~ 배고파.” 일본 도쿄의 소년 김전일(일본 이름 긴다이치 하지메)가 부엌으로 들어서다가 소리를 질렀다. “앗, 미유키! 아침부터 우리 집에 무슨 일이야?” 태연히 밥을 먹던 미유키는 김전일의 얼굴에 신문을 들이밀었다. “<한겨레> 신문? 아, 맞다. 오늘이 내가 좋아하는 ‘esc’ 나오는 목요일이지!” “바로 그 esc면을 펼쳐봐.” “아니, 이건?”

안내방송이 끝날 무렵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제 남편이
진짜로 죽었어요!
아악, 여기 여자도…”

세 사람이 펼쳐든 7월10일자 <한겨레> 신문은 그들을 피비린내 나는 사건으로 이끄는 지옥으로부터 온 초대장이었다. esc면에 실린 3단 광고에는 굵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살인을 알립니다. 7월11일 금요일 밤 11시10분 부산발 서울행 KTX 2호차에서 세계 최고의 탐정들이 오시기를 기다리겠습니다.”

밤 11시 부산역 플랫폼. 탑승을 기다리며 서성이는 사람들은 서로를 힐끔거렸다. “이상한 일입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오늘 밤에 여행하기로 작정한 모양입니다! 금요일밤 서울행 KTX 막차에 사람이 이렇게 붐비다니요.” 감색 양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 중얼거렸다. 그 뒤로 날씨에 안맞게 검정 코트를 입은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 온화한 미소의 ‘미스 마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소년탐정 김전일과 예쁘게 차려입은 미유키가 서있었다.

“셜록, 꼭 이 기차를 타야겠어?” 왓슨이 입을 여는 순간 미스 마플이 반색을 했다. “셜록? 오우, 반가워요. 전 제인 마플이에요. 비혼이니 그냥 마플 양 정도로 불러줘요.” 옆에있던 김전일이 화들짝 놀랐다. “아니 셜록 홈즈와 마플 할머니라고요?” “뭐, 할머니? 이 녀석 내가 어딜봐서!” “안녕하세요. 전 김전일이에요. 명탐정 킨다이치 코스케의 손자이자 소년탐정이죠. 두 분 정말 존경하는데 이렇게 만나다니, 와우!” 셜록이 미간을 찌푸렸다. “놀라워, 놀라워. 내가 이런 할머니나 어린애와 추리 대결을 벌이겠다고 열두시간 비행기를 타고 이 곳에 왔다니!”

짙은 어둠이 깔린 철길 위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기차가 들어온다!” 흥분한 목소리로 누군가가 소리쳤다. “자, 이제 살인이 시작되는 건가?” 날렵한 몸짓으로 선로에 멈춰선 기차는 취익 한숨같은 소리를 뿜어내고는 문을 열었다. 플랫폼에 서있던 사람들은 하나 둘 기차 안으로 들어섰다.

셜록과 왓슨, 미스 마플의 자리는 특실인 2호차의 좌석 9줄 중 뒤쪽이었다. 셜록과 왓슨의 앞자리에 김전일과 미유키가 앉았다. 2호차 안에는 50대 부부와 대학생으로 보이는 아들과 딸, 아기띠로 아이를 안은 30대 부부, 20대 젊은 연인, 70대 노부부 등 다양한 사람들이 25개 좌석을 가득 메웠다.

“환영합니다. 여러분은 빠르고 쾌적한 세계 최고의 기차, KTX가 여름을 맞아 준비한 ‘납량특집 열차’에 탑승하셨습니다. 정식 런칭에 앞서 시범으로 하는 첫 회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기차가 부산역을 떠난 지 5분 쯤 지났을 무렵 1A 좌석에 앉아있던 자줏빛 블라우스에 까만 치마를 입은 여성이 휴대용 마이크를 들고 통로 앞쪽에 나서며 진행을 시작했다. “예고한대로 잠시 뒤 불이 꺼지면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앞으로 동대구역에 도착할때까지 40분동안 이 칸에 탄 승객 여러분은 모두 탐정이 되어 범인을 맞춰주시면 됩니다. 상금 200만원이 걸려있으니 놓치지 마세요!”

“뭐? 예고 살인이 기차 회사에서 준비한 납량 특집 이벤트라니, 믿을 수가 없군!” 화를 내는 셜록에게 왓슨이 말했다. “내가 뭐라고 했나. 가지 말자니까…. 티저 광고에 속은 모양이군.” “함께 셋을 외치면 불이 꺼집니다. 하나…둘…” ‘셋’을 외치는 소리와 함께 2호차의 불이 꺼졌다. “아우, 오싹하네.” 앞쪽 자리에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3초만에 불이 다시 켜졌다. 진행자는 통로 밖 화장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 이제 화장실로 가보시면 시체가 있습니다. 50대 남성인데요. 피를 많이 흘렸네요. 모두 함께 현장을 살피고 추리를 시작하시죠.” 회사가 준비한 이벤트라는 사실에 대한 실망과 200만원에 대한 기대가 슬쩍 교차하며 기차 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호호호” 미스 마플은 뭐가 재밌는지 웃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켜 통로를 걸어나갔다. 게임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굳힌 모양이었다.

남자는 변기 뚜껑을 닫고 그 위에 앉은 채 머리를 뒤로 젖히고 늘어져 있었다. 남자의 다리가 길게 화장실 밖으로 나와 화장실 문은 열어젖혀진 채였다. 몸에는 핏물이 흥건했다. 언뜻 보기에도 싸구려 물감으로 만든 것이었다. 셔츠와 바지 여기저기가 찢겨져 있었다. 칼에 찔린 흔적을 만들려고 한 듯 한데 어설프기 그지 없었다. 화장실 거울에는 그 핏물 물감으로 ’RACHE’라고 써있었다.

시체 역할을 맡은 남자의 사지를 축 늘어뜨린 연기는 볼만했지만 불룩 나온 배는 쉴새없이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했다. 쓰레기통에는 빈 에너지 음료수병과 피범벅 휴지가 쑤셔박혀져 있었고 바닥에는 ‘H’ 이니셜이 새겨진 손수건과 피묻은 부엌칼이 놓여있었다. 장갑을 낀 손부터 앞치마까지 한가득 핏물이 묻은 20대 행사 진행 보조 아르바이트생 남자가 승객들이 ‘현장’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저지했다. “’RACHE(독일어로 ’복수’란 뜻)’라니…. 모든게 놀라울 정도로 유치해.’” 어느새 곁에 온 셜록이 말했다.

사람들이 ‘범죄 현장 구경’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려는 찰나, 다시 불이 꺼졌다. “이것도 이벤트인가요?” 한 여자가 소리 높여 물었다. “아니에요, 이건 예정이 없어요! 불 좀 켜주세요!” 진행자가 소리를 질렀다. 순간 기차가 덜컹 하고 멈췄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꺅~ 너무 무서워요!” 한 여성의 비명 소리가 아이의 울음소리에 뒤섞였다. 어디선가 꺼억 꺼억 흐느끼는 여자도 있었다. “신고는 했나요?” “살려주세요!” “문을 엽시다, 문을!” “비상 전원 없나, 비상전원?” “우왕좌왕 하지 말고 자리에 앉아서 안내를 기다립시다” “가만히 있으라고? 웃기지마, 누가 앉아서 죽을 줄 알고?” 한 남자가 비상 스위치 마개를 깨고 2호차 뒤쪽의 문을 여는 데 성공했다. 

사람들이 우르르 기차 밖으로 나갔다. “틀렸어, 여긴 터널 안이야.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20km짜리 금정터널 안에 있다고. 걸어서 나가는 건 무리야.”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다시 기차로 올라탔다. 기차가 멈추고 전등과 에어콘이 꺼진 상태에서 극도의 공포와 더위 속에 혼절하는 사람까지 발생할 무렵. 다시 불이 켜졌다. 기관사의 안내방송. “열차의 전원장치에 이상이 생겨 잠시 정차하고 있습니다. 곧 조치를 취할테니 자리에 앉아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린 것은 안내 방송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남편이, 제 남편이 진짜로 죽었어요! 아악, 여기 여자도….” 행사를 진행하던 여자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화장실이었다. 아까부터 그 곳에 쓰러져있던 ‘시체 역할’의 남성은 싸구려 물감이 아닌 진짜 피에 흠뻑 젖은 채 죽어있었다. 화장실 맞은편 벽에는 청바지에 검정색 반팔 티셔츠를 입은 여성이 쓰러져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얼빠진 표정의 아르바이트생이 피를 뒤집어 쓴 채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었다. 시간은 11시42분. 기차가 출발한 뒤 불과 32분만의 일이었다.

“경찰입니다. 모두 자리에 앉으세요! 혹시 여기 의사 있으신가요?” 3A 자리에 앉아있던 얌전한 인상의 사내가 일어서며 소리쳤다. 왓슨 박사가 손을 들고 어깨를 한번 으쓱 하고는 한국 경찰과 함께 화장실로 향했다. 그 뒤를 셜록 홈즈와 미스 마플, 김전일이 따랐다. 한국 경찰이 저지하려고 하자 왓슨이 말했다. “내버려두시오, 세계 최고의 탐정들이요.”

죽은 남자의 모습은 처참했다. “둘 다 숨은 완전히 멎었습니다. 남자의 가슴과 배에 찔린 상처만 12곳이군요. 가슴 쪽에 2~3군데가 뼈와 근육까지 뚫고 들어갈 정도로 세게 찌른 상처입니다. 배 부분은 치명상은 아닌데 얕게 여러번 쑤셔댔군요. 여자는… 가슴에 세 번, 목과 등에 한 번씩 찔렸네요. 출혈이 심해 몇분만에 쇼크가 왔을 겁니다.”

바닥에는 진짜 피가 묻은 부엌칼이 놓여있었다. 셜록이 아르바이트생에게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겁니까?” “모르겠어요. 전… 갑자기 불이 꺼지고 너무 무서워서 2호차 안으로 들어가있다가 사장님을 안챙겼다는 생각이 들어 더듬거리며 화장실로 다시 와본거에요. 그런데 이 여자가 사장님을 칼로 마구 찌르고 있었어요. 제가 말리려고 하니까 이 여자가 나를 찌르려고 했어요. 몸싸움 끝에 제가 칼을 뺏어들고…. 그 다음에는 저도 살겠다고 마구 휘둘렀는데 불이 켜지고 나서 보니까 이렇게 됐어요. 어흐흑.”

“일단 일어나시죠.” 셜록이 그를 일으키려 하자 아르바이트생은 왼손을 내밀었다. “칼을 뺐었는데도 용케 손에는 상처가 안났군요.” “네, 그 여자가 칼을 떨어뜨렸을 때 주웠어요. 또 장갑일 껴서…. 대신 여기 팔뚝에 한번 칼이 스쳤는데….” “키는 180cm가 넘나요?” “조금요.” “쓰레기통에 에너지 음료는 당신이 먹은건가요?” “아, 아니요. 사장님이 드신 겁니다. 전 그런 음료는 안먹어요. 그 분은 좋아하셨죠.” “자리가 어디죠?” “1C요. 여깁니다.” 아르바이트생은 펼쳐져있던 테이블을 접어넣고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전화통화를 마친 한국 경찰이 말했다. “사망자의 이름은 이경재, 나이는 53세. 이번 ‘납량특집 행사’를 맡게된 이벤트 업체 대표라고 합니다. 아까 진행하던 여자의 남편이기도 하고요. 전과가 있는데….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3년형을 살았네요. 10년 전에 두번째 부인과 함께 전처 사이에 난 9살짜리 딸을 상습 폭행해 결국 딸이 죽었다고…. 지금 부인은 2년 전에 결혼한 세번째 부인이라고 하고요. 세번째 부인도 남편에게 폭행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한 것만 두 번이었다네요. 여성 사망자의 경우에는 신분증이나 소지품이 전혀 없어서…. 목격자인 부인도 조사를 좀 해봐야겠는데….” “조용히좀 하시오. 당신이 생각하는 소리를 내는 것조차 시끄러우니까.” 셜록이 말했다. 얼굴이 벌개진 한국 경찰은 2호차 안으로 들어가 승객들의 인적사항 파악과 소지품 검사를 시작했다.

“우리 셋이 이야기좀 하지요.” ‘미스 마플’이 몸을 숙이며 셜록 홈즈와 김전일에게 말했다. “다들 내 생각과 비슷하리라 생각해요. 남자의 가슴을 찌른 사람과 배를 찌른 사람은 칼의 방향이나 힘의 세기에서 서로 다른 사람일 가능성이 커요.” 셜록이 말을 받았다. “160cm도 안되는 왜소한 체격의 여성이 180cm의 건장한 사내와 힘겨루기를 해 칼로 해칠 생각을 했다는 건 말이 안되죠. 쓰레기통 속 음료수병을 쏟아보니 하얀 가루가 몇 개 남아있더군요. 검사는 해봐야겠지만 수면제일겁니다. 남자는 죽기 전, 핏물을 뒤집어 쓴 채 죽은 척을 할 때도 깨어있다고 보기에는 너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숨을 느리게 쉬었죠. 가슴의 상처는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 아마도 범인은 왼손잡이겠죠. 아르바이트생처럼요. 죽은 여자는 오른손잡이에요. 오른쪽 주머니의 핸드폰, 오른쪽으로 돌려묶은 머리끈 등이 모두 그걸 증명하죠. 불이 꺼진 뒤 자리에 돌아가 있다가 다시 화장실로 왔다는 그의 증언과 달리 그의 좌석 테이블은 왔다갔다 하기 불편하게 내려져 있는 상태였죠. 아르바이트생은 불이 꺼진 내내 자리에 돌아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커요. 핏물이 뭍어있던 그의 운동화 발자국도 자리 주변엔 없었죠.”

“아르바이트생이 남자를 찔렀다면 이후 상황은?” “그건 제가 말할게요.” 왓슨의 질문에 김전일이 나섰다. “여자가 우연히 불 꺼진 상태에 남자를 죽이러 왔다고 보긴 무리에요. 우연이 그렇게 겹칠 순 없죠. 아마도 여자는 불 꺼지고 정지한 열차의 상황, 수면제를 먹고 축 늘어진 남자의 상황 등을 통제할 힘을 갖고 있었을 거에요. 사전에 모의가 된거죠. 약속대로 남자를 죽이러 왔는데 남자는 이미 아르바이트생이 죽인 뒤였죠. 여자가 남자의 배를 찔러댈 때는 아마도 그 사실을 몰랐을 거에요. 10번이나 힘껏 찔러댄 이유죠. 할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칼을 내려놨겠죠. 그 칼에 다시 당한것일 테고요.” “어차피 여자가 남자를 죽일 예정인데도 굳이 아르바이트생이 남자를 미리 죽인 이유는?” 왓슨이 다시 물었다. “복수.” 세 탐정이 동시에 말했다.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어! 모두 모여….” “나대지 말아요.” 김전일의 말을 ‘미스 마플’이 막아섰다. “아직 이르다오. 한국 경찰 양반!” 미스 마플이 경찰을 불러 물었다. “죽은 남자의 전처는 몇년 형을 받았나요?” “아, 10년형을 받았답니다.” “그럼 저기 누워있는 여자가 혹시 그 여자인지 확인해 보시려우?”

한국 경찰이 문자를 확인한 뒤 외쳤다. “맞아요! 두번째 부인 염미숙. 10년형을 받고 출소한 지 이제 겨우 한달이 됐다는데 사진이 일치하네요. 출소하자마자 전 남편을 죽이러 온거구만.” 떠벌이는 남자를 ‘미스 마플’이 눈빛으로 제압했다. “나는 잠시 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겠어요.” 미스 마플이 아르바이트생에게 다가가서 속삭였다. “왜 그랬어요?”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어린아이의 표정으로 그는 가방에서 쪽지 하나를 꺼내 미스 마플에게 건넸다. 순간 덜컹 하고 열차가 육중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68분만에 도착한 지원 열차에 견인 고리를 연결하고 다시 부산역으로 돌아간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기관사의 목소리는 무겁게 잠겨있었다. 기차는 서서히 부산역 안으로 들어섰다. 환하게 불을 밝힌 플랫폼에는 수십명의 경찰이 대기하고 있었다.

세 탐정은 해운대 앞 백사장에서 아침을 함께 맞았다. 눈 앞에는 작은 쪽지가 불타고 있었다. “작전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유서를 적는다. 내 이름은 이영호. 염미숙이 낳은 아들. 엄마가 이경재와 재혼한 뒤 난 엄마가 아빠 전처의 딸인 다영이 누나를 매일 때리는 걸 보고 자랐다. 고작 나보다 두 살 위였는데…. 짐승같은 이경재는 술을 마시면 가족 모두에게 손찌검을 했다. 다영이 누나는 결국 내 앞에서 죽어갔다. 부모가 모두 감옥에 들어간 뒤 난 먼 친척에게 입양됐다가 또 버림받았다. 죽을 고생을 하다 1년전 간신히 이경재를 찾아가니 출소 뒤 이미 재혼한 그는 내게 아는 척을 하지 말라며 대신 회사의 허드렛일을 시키고 아주 적은 돈을 줬다. 한달 전 출소한 엄마란 인간은 나를 찾아와 이경재를 죽일테니 도와달라 했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복수에 나섰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참고문헌

<살인을 예고합니다><오리엔트 특급 살인>(아가사 크리스티 지음, 황금가지 펴냄)

<주홍색 연구><네 사람의 서명>(아서 코난 도일 지음, 황금가지 펴냄)

<소년탐정 김전일-이진칸 호텔 살인사건, 마술 열차 살인>(서울문화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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