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7.16 19:42
수정 : 2014.07.1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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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퀸즈의 피시 앤 칩스와 감자튀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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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요즘 대세 튀김 안주
맥주와 안주궁합을 말할 때 치킨이나 땅콩 같은 기름기 많은 안주는 피하라는 조언이 자주 등장한다.
그럼에도 바삭! 하고 한입 깨물면 입안 가득 고소함이 퍼지는 튀김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진다. 기왕 마신다면 맛있게! 그래서 준비한 튀김 열전!
맥주 안주로 오징어와 땅콩이 대세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 자리를 ‘치맥’(치킨과 맥주)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치킨이 확고하게 차지한 지 오래다. 국민 안주다. 요즘 치킨의 권좌를 호시탐탐 노리는 안주가 있다. ‘분위기 좋은 곳’을 찾는 20~30대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다. 이들의 음주 취향은 선배 ‘보리술꾼’들과는 사뭇 다르다.
분식 메뉴였던 튀김
요새는 트렌디한 안주로
치킨보다는 양과 가격
덜 부담스러워 젊은층 선호
지난 13일, 일요일 밤 8시쯤. 서울 이태원동 이른바 경리단길로 불리는 거리의 뒷골목. 예쁜 양옥집인 ‘살롱 프라이드’(Salon Fried)가 바쁘다. “자리 없어요?”, “웨이팅 걸어두셔야 되는데, 앞에 7팀이 있어요.” 데이트 나온 윤지훈(26), 신예슬(26)씨는 종업원의 말에 아쉬움을 남기고 발걸음을 돌린다. 스물일곱살 동갑내기 친구인 김상용, 양한결씨도 돌아서기는 마찬가지. 김씨는 “분위기와 튀김” 때문에 이곳을 찾았다. 이들은 사진공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에 뜬 이 집의 먹음직스러운 튀김과 청포도맥주에 “우와” 탄성을 질렀다. 김씨는 “좌석이 있는데 왜 웨이팅을 받는지 모르겠다”란 말을 남기고 총총 사라진다. 종업원은 “주문한 튀김 안주가 나올 수 있는 시간에 맞춘 거다. 지금도 많이 밀렸다”고 말한다. 주인 김태연씨는 주문을 받고 나서야 반죽을 묻히고 튀기기 시작한다. 그는 “2012년 처음 열었을 때는 튀김 하면 떡볶이와 어묵이랑 같이 나오는 걸로 생각하고 ‘뭐 이런 걸로 돈을 벌려고 하냐’는 소리까지 들었으나 요즘은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단호박·버섯·닭가슴살·오징어·새우 튀김이 안주다. 새우튀김만 빼고 3개에 2000원. 바삭한 안주를 끌어당기는 것은 블루베리·청포도 맥주와 세련된 카페풍의 인테리어다. 가게를 찾은 이들은 대부분 20~30대 초반. ‘부어라, 마셔라’ 하는 이는 좀처럼 없다. 한 잔 놓고 수다 삼매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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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프라이드의 5가지 튀김이 나오는 살롱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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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6호선 상수역 인근에 있는 맥줏집 ‘치치’도 비슷한 풍경이다. 주인 임효상(35)씨는 미국의 일식당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3년 전부터 맛깔스러운 튀김 안주를 만들었다. 양파·새우·김말이·오징어·단호박 등의 튀김 안주 가격은 1000~2000원이다. 생맥주는 2500원. 초창기에는 ‘가볍게 퇴근길 한잔!’을 외치는 손님들과 주머니 얇은 학생들이 많았다. “뭔가 독특하고 다른 곳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분위기를 좋아하는 이들”도 단골이 됐다. 낙서장을 방불케 하는 벽과 은근한 눈길을 나눠야 할 것 같은 낭만적인 조명이 이 가게에 감도는 독특한 공기를 만든다. ‘오뎅탕’(3500원)조차 어묵을 튀겨서 탕을 끓인다. 과거 겨울이면 인적이 드물었던 이 거리는 치치가 들어서면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2012년부터 긴 줄이 생겼다. 주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여성들이 많았는데, 나중에는 남성 손님들이 따라왔다.” 이곳도 취기에 비틀거리면서 문을 나서는 이들은 거의 없다. 치치와 비슷한 콘셉트의 가게들이 인근에 생겼다. 치치를 비롯한 ‘바로튀김’, ‘작은별’은 홍대 3대 튀김맥줏집으로 알려졌다.
생선과 감자를 튀긴 영국 펍의 대표 안주 ‘피시 앤 칩스’(fish and chips)도 주목받고 있다. 에스피시(SPC)그룹이 올해 초 한남동에 문 연 ‘디.퀸즈’에서 가장 인기있는 맥주 안주는 피시 앤 칩스다. 쌀가루와 맥주를 섞은 반죽을 생선에 입혀 튀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흰 살 생선 맛이 잘 살았다. 때로 영국 여행길에 맥주 대신 물을 섞은 피시 앤 칩스를 먹고 ‘맛없다, 생선가스와 같다’고 평하는 이들도 있다. 맛이 천차만별인 우리 냉면과 비슷한 경우다. 채송화 마케팅팀 팀장은 “기름기 많은 피시 앤 칩스가 맥주의 쌉싸름한 탄산 맛과 잘 어울리고 맥주가 들어가 궁합도 맞다”며 “홍익대 인근, 이태원동, 한남동 일대 등 트렌디한 지역의 시장조사를 해보니 피시 앤 칩스를 비롯한 튀김류가 확실히 인기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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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의 양파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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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김은 물의 끓는점을 훌쩍 넘는 지방과 기름의 발연점을 활용해 색다른 맛을 만드는 조리기술이다.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식재료도 끓는 기름통에 빠졌다 나오면 탄탄하고 바삭해진다. 셰프들은 이 변신기술을 오래전부터 사랑했다. 밀가루나 쌀가루, 옥수수가루 등과 물, 우유, 맥주 같은 액체를 섞은 반죽을 튀김옷이라고 부른다. 식재료가 기름과 직접 닿는 것을 막아주는 완충재다. 건축으로 치면 단열재 구실을 한다. 건강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칼로리가 높은 튀김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치킨보다 양이 적고 가격이 싼 튀김의 참을 수 없이 고소한 매력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튀김의 바삭함은 그야말로 유혹적이다.
과거에는 튀김이 맥주 안주가 될 거라고는 술꾼들도 생각지 못했다. 예전에는 어떤 안주를 먹었을까? 맥주는 구한말 일본인 거주지가 늘면서 흘러들어왔다. 1933년 대일본맥주주식회사가 조선맥주주식회사를 설립하고, 같은 해 기린맥주주식회사가 동양맥주의 전신인 소화기린맥주주식회사를 경기도 시흥군 영등포읍에 세웠다. 당시 맥주는 3상자 반이 쌀 한 석(144㎏)과 맞먹을 정도로 귀한 술이었다. 번화가인 명동이나 무교동 등지에서 주로 소비됐다. 맥줏집을 일컫는 ‘비어홀’ 단골들은 자신의 이름을 단 전용 잔을 두고 들락거리면서 멋을 냈다.
1929~1940년에 발간된 동아일보, 매일신보 등에는 안주 기록이 많다. ‘덴뿌라 한 그릇’, ‘일본밥 오야꼬돈부리 두 그릇’, ‘소라 모라 우육 등의 통조림’, ‘센베이’, ‘산드위치(샌드위치) 치즈’와 콩 등이 안주로 등장한다. 김과 오징어는 그때도 인기였다. 동아일보(1940년 5월4일치)에 게재된 연재소설 <탐구의 일일>에는 ‘여급이 맥주와 김과 오종어(오징어)를 갖다노코 한컵씩 떨어 노은 후 술을 권한다’란 문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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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프라이드를 주로 찾는 손님은 20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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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미군정이 관리하던 이들 회사는 1950년대 초 민간에 불하되어 조선맥주(현재 하이트진로맥주)와 동양맥주(현재 오비맥주)가 되었다. 1953년 경향신문의 ‘맥주 서너병에 오징어 호콩(땅콩)을 조곰 주고’란 기록이 있다. 오징어와 땅콩 묶음은 안주로서 역사가 꽤 길다. 70년대 건설경기 붐으로 국민소득이 늘면서 맥주 소비가 늘기 시작했다.
70~80년대 맥주 안주로 오징어와 땅콩 세트, 멸치 등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맥주와 전기구이통닭을 같이 먹기는 했으나, 통닭에 맥주를 곁들이는 식이었다. 2000년대 초 월드컵을 기점으로 맥주 하면 치킨이란 공식이 굳어진다. 2000년대 중반 넘어 ‘치맥’(치킨과 맥주)이란 단어까지 생겨났다. 2012년에는 아예 ‘치맥’을 간판에 건 레스토랑이 문 열었다. 치맥의 총괄셰프 박세민씨는 “무겁고 기름기 많은 치킨은 청량한 맥주의 목 넘김을 좋게 한다”면서 안주로서의 장점을 강조한다. 그는 캠핑 붐을 타고 나타난 ‘비어캔치킨’도 치맥 인기의 상승에 한몫을 했고 프로야구도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최근 튀김, ‘피맥’(피자와 맥주), 먹태 등 다양한 안주들이 상승세를 타자 치킨도 변신을 시도 중이다. 잘 삶은 문어를 올린 ‘문어치킨’, ‘낙지치킨’, ‘와플치킨’ 등이 시장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디.퀸즈’의 와플치킨은 잘 구운 와플과 치킨이 한 접시에 나오는데, 달콤한 시럽을 뿌려 먹는다. 몇 년 사이 과일향이 가득한 맛부터 홉의 쓴맛이 강한 맥주까지, 다양한 맥주가 수입되면서 안주도 바뀌고 있다. 오비맥주 남은자 부장은 “이제 우리 맥주문화도 성숙해지면서 안주라는 개념보다는, 와인처럼 술과 어울리는 음식으로 접근하는 이들도 많아졌다”고 말한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도움말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 겸 <음식강산> 저자
참고도서 <우리생활 100년·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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