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8.20 18:58
수정 : 2014.08.2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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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친구 엄마들 사이의 잔혹한 관계맺기를 그린 일본 드라마 <이름을 잃어버린 여신>(2011)의 한 장면. 누리집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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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아리카와 마유미의 요즘 여자
지난해 일본 최고 시청률을 찍은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에는 은행원인 남편에 따라 서열이 매겨지는 여성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회사 사택 단지에 모여 사는 이들은 남편의 직급에 따라 집 크기가 달라지고, 나이와 상관없이 아내의 지위도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사택 내 부인모임에서 사원 부인들은 지점장의 아내와 간부의 아내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모르는 ‘사택 문화’다. 처음부터 위아래가 정해진 듯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흡사 과거의 계급사회를 연상하게 한다.
일본에는 ‘마마 카스트’라는 말이 있다. 아이들 친구를 따라 엄마들도 친해진 사이를 ‘마마 친구’라고 부르는데, 보통 친구 사이와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이들 사이에서 서로의 신분이나 상황을 살피고 그룹화하는 기준 중 하나가 ‘점심식사 가격’이다. 일반적인 식당에서 먹는 1만 원 이하의 점심이라면 누구나 참가하기 쉽다. 그러나 그중에 “가끔씩은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요”라며 몇만원에 달하는 코스 런치를 제안하는 엄마가 나타나고, “어머, 좋네요” 하고 찬동하는 엄마들이 있는가 하면, “그런 비싼 곳에 점심 먹으러 못 가요” 하는 엄마들도 있다.
서열을 나누는 기준은 경제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출신배경과 인맥도 크게 작용한다. 마마 친구 사이에서 가장 보스로 추앙받는 인물은 그 지역 출신으로 주변에 친구나 친척이 많은 사람이다. 둘째는 아이가 여럿이라 연령별로 인맥이 다양한 엄마, 셋째는 학교에서 직무를 맡는 등 확실한 발판이 있는 사람이다.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마마 친구들인 만큼 동네에 새로 이사 온 집이 있으면 그 집을 방문해 남편은 어떤 직업인지, 어떤 가정환경인지 등 갖가지 정보를 얻어낸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무리에 끌어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 잦다고 한다. 타지 출신으로 아이가 하나이며 싱글맘, 직장맘인 내 친구는 서열이 가장 아래다. 그래서 아이들 간에 싸움을 해도 일방적으로 나쁜 아이 취급을 받거나 따돌림을 당하고 나쁜 소문에 얽히는 등 힘든 일을 겪어야 했다. 지난해 말에는 마마 카스트의 비밀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엄마들의 갈등을 그린 소설 <해피니스>도 나왔다.
여성문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는 시라카와 도코는 <등급을 매기는 여자들>이라는 책에서 “엄마들 사이에서 괴로움의 근본은 자신을 무기로 싸우지 않는 것이며 평가조차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 여자들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남편의 수입이 얼마인지, 아이의 머리가 좋은지 나쁜지 등으로 비교하면서 ‘남편과 아이’라는 대리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인가.
여성 커뮤니티 안에서 등급 매기기가 심한 이유는 여성들은 직업 외에도 결혼, 외모 등 여러 기준에 의해 평가받고, 여러 역할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더 높게 평가받아도 되는 건 아닐까”라며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늘 가지고 있다. 스스로도 한심함을 느끼는 “나 같은 건…”이라는 낮은 자기평가와 “나 정도면 그래도…”라는 반항심이 동시에 부대끼면서 “그래서 누가 더 위야?”라고 등급을 매기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여자들의 카스트는 어디에나 있다. 연령과 외모로 위치가 정해지는 ‘연애·결혼활동 카스트’, 인맥이 얼마나 넓은지와 남자친구가 얼마나 많은지 등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정해지는 ‘여대생 카스트’, 직장에서 영향력을 가늠하는 ‘오피스 카스트’ 등의 말도 있다. 그러나 바꾸어 생각하면 등급은 달라도 서로가 같은 무리에 속해 있는 존재들이다. 그 무리라는 관계를 서로 돕는 신뢰관계로 만든다면 여자 카스트는 다르게 기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리카와 마유미 작가·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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