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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8.27 19:42 수정 : 2014.08.29 18:24

가게마다 색색의 등을 밝히면서 호이안의 밤이 시작된다. 매월 음력 보름날이면 마을 전체가 청사초롱을 밝혔던 풍습이 이어진 것이다.

[매거진 esc] 여행
16세기 베트남의 풍경을 가진 유적 도시 호이안에서
다낭, 앙코르와트까지 거슬러 올라간 인도차이나 시간 여행

“1년에 한 번씩 베트남을 찾는 관광객들은 올 때마다 길을 잃어버린다”는 말이 있을 만큼 베트남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호이안만은 그렇지 않다. 199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올드하우스 거리의 목조건물들은 우기가 되면 이끼와 풀에 덮여 새파랗게 변해버리는 지붕을 얹고 200년 넘도록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베트남 다낭에서 호이안을 들러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로 가는 여행은 시간을 점점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이다.

30층 높이의 해수 관음상이 내려다보는 다낭의 해변.
오래된 유적 도시 호이안

유적 도시 호이안 여행은 푸젠화교회관에서 시작됐다. 복건회관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17세기 중국 명왕조가 망하면서 호이안으로 피난해온 푸젠성 출신 장군들을 기념하는 곳이다. 6명 장군의 벽화가 그려진 입구를 지나 붉은 향들이 걸린 중앙 홀로 들어서면 넘실거리는 파도 속에서 뱃사람을 구하는 바다의 여신 티엔허우 상이 있다. 티엔허우 뒤편의 작은 방엔 세개의 제단이 놓여 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제단에 향을 피우고 소원을 비는데 한 제단만 택할 수 있다. 조상과 신들이 나란히 놓인 이곳에서 사람들은 무슨 소원을 빌까? 맨 왼쪽에 있는 번영의 신 앞에서 가장 많은 향이 타고 있었다. 가운데는 조상의 안녕을 기원하고 오른쪽은 아이를 많이 낳게 해달라고 비는 자리다.

16세기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번성했던 무역항에 수십개 나라 상인들이 모여 북적이던 흔적은 마을 곳곳에 남아 있다. 일찍부터 화교들이 자리잡은 호이안에는 푸젠회관 말고도 차오저우, 광둥, 중화, 하이난 등 5개의 큰 중국 향우회관이 있다. 투본강 건너편에는 일본인 거리가 있었다. 1593년 일본교(내원교)가 세워지면서 화교회관 거리와 일본인 마을을 연결해왔다. 두 마을의 차이가 거의 사라진 지금은 다리 입구를 지키는 개와 원숭이 동상만이 호이안이 수백년 전부터 다문화 도시였음을 기억하고 있다.

옛 왕의 수영장이었던 앙코르 유적지 연못에서 아이들이 물고기를 잡거나 수영을 하면서 논다.
해가 지면 반짝이는 눈을 뜨듯 베트남의 옛 도시 호이안에 등불이 밝혀졌다. 밤의 베트남은 낮과는 사뭇 다른 세속적인 표정이다. 사원들은 문을 닫고 가게들은 색색의 등에 불을 켜고 손님을 부르는 시간 거리엔 활기가 넘친다. 보트 선착장 근처 공원에선 베트남 노래를 부르는 공연이 열리고 음력으로 매달 14일엔 강물에 등불을 띄운다.

밤과 낮의 얼굴이 다른 것은 중부의 관문, 다낭도 마찬가지다. 베트남 사람들의 휴양지이기도 한 이곳엔 해가 지면서부터 피서객들이 바다로 나온다. 하루에 한번 비가 쏟아지는 우기에도 여전히 드센 낮의 햇볕을 피하기 위해서다. 다낭의 해변가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연결하기 위해 올해 3월 지어진 용의 다리(드래건 브리지) 근처에는 운동과 산책을 하러 나온 시민들로 북적였다. 드래건 브리지 아래 큰 나무들 앞에도 어김없이 소원을 비는 촛불이 켜졌다. <서유기>에 나오는 부처님의 다섯손가락을 닮았다고 해서 오행산(응우한선)이라고 불리는 다낭 근처의 산, 다낭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65m 높이의 해수여래관음상 등 베트남 어디서든 간절히 손 모으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지나가는 시민에게 농담 삼아 “몇 분의 신을 모시느냐”고 물었더니 “나무를 지키는 신, 부엌신, 땅신, 돌의 신… 헤아릴 수 없다”고 답한다. 신앙의 자유는 있어도 포교의 자유는 없는 베트남에서 시민 대부분은 불교도지만, 힌두교나 전통적인 믿음에서 온 수많은 신들이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밤의 베트남은 낮과 다른
세속적 풍경이다
사원들은 문을 닫고
손님을 부르는 거리엔
활기가 넘친다

30층 높이의 해수 관음상이 내려다보는 다낭의 해변.
고대인들의 피라미드가 그렇듯 앙코르 와트 꼭대기로 오르는 계단은 신에게 허리를 굽히도록 좁고 가파르게 지어졌다.
신들의 수도 앙코르와트

베트남 다낭에서 비행기로 1시간30분이면 신들의 수도 앙코르와트가 있는 캄보디아 시엠립에 도착한다. 비 오는 이른 아침 시엠립 시내에 있는 어린이병원 앞에는 아기를 업은 엄마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캄보디아 사람들에게는 무료로 운영되는 이 병원 앞에 서 있는 거대한 얼굴상은 앙코르와트를 지은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면서 앙코르와트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 ‘천년의 미소’를 띤 사면상을 닮았다. 우리에게 부처의 4가지 미덕인 자비, 보호, 연민, 평정심을 갖춘 지도자를 주시옵소서. 고대 크메르 사람들부터 지금 캄보디아 사람들의 공통의 바람이라고 했다.

시엠립 중심가에서 북쪽으로 5㎞를 가면 갑자기 앞이 탁 트이면서 거대한 사원, 앙코르와트를 둘러싼 200m 넓이의 인공호수 앞에 서게 된다. 사암으로 만들어진 220m 길이 다리를 건너면 만나는 서쪽 성벽에는 춤추는 여신 압사라들이 완성되지 못한 채 윤곽만 남아 있다. 1층 지옥에서 2층 지상으로, 그리고 3층의 천국으로 올라서면서 압사라 부조는 더욱 뚜렷하고 풍성해진다. 여백을 허락하지 않는 벽은 힌두교와 왕조의 전설로 빼곡하고 회랑을 돌 때마다 중앙탑 4면의 서로 다른 불상과 마주치게 된다. 시바, 비슈누, 브라만 같은 힌두교의 신을 위해 지어지고 나중엔 불상들이 들어선 여기는 명백히 신들의 자리다.

왕궁은 물론 어떤 건물도 앙코르와트의 높이를 넘어선 안 되는 시엠립에서 사람의 일은 그보다 낮은 자리에서 은밀히 이루어진다. 지난해부터 앙코르 유적지에서 구걸이나 호객행위가 금지되면서 아이들은 왕궁 앞뜰과 수영장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슬며시 돈을 받는다. 앙코르 중앙탑 안에서 세계에서 온 순례객들을 위해 기도를 해주던 나이 든 여자는 바구니에 달러가 들어올 때마다 옆에서 단속하는 경찰에게 넘겨주었다.

앙코르 유적지를 안내하던 캄보디아 출신 가이드는 앙코르 유적지가 1년에 430만명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지만 정작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많지 않다고 했다. 형은 북쪽에서 지뢰를 제거하는 일을 하고, 자신은 한국어를 배운 덕분에 온 집안의 돈을 끌어모아 ‘자릿세’를 내고 가이드가 되었다는 그의 생활 자체가 캄보디아인의 전형이다. 올 초부터 캄보디아에는 수도 프놈펜을 중심으로 최저임금 인상과 토지 분배를 요구하는 노동자와 농민들의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신들을 위해 만들어진 탓에 유난히 가파르고 좁은 앙코르 유적의 계단을 오르면 사원 한구석엔 꼭 ‘통곡의 방’이 있다. 이곳 벽에 기대 서서 억울한 일을 털어놓으며 가슴을 두드리면 그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사원을 울린다. 수많은 신과 7t짜리 거대한 돌기둥 수천개 사이에서 오랫동안 사람들은 가슴을 두드렸으리라. 쿵쿵.

다낭·시엠립/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베트남항공 제공


>>> 호이안·시엠립 여행쪽지

가는 길 베트남항공은 인천공항에서 다낭까지 매일 1회 항공편을 운항한다. 비행 소요시간은 4시간30분. 다낭에서 호이안까지는 29.2㎞ 거리로 택시를 타거나 시간이 있다면 지역민들이 이용하는 버스를 타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시간은 한시간가량 걸린다. 다낭에서 시엠립까지 가는 비행편도 매일 한번 있다. 시엠립에서 캄보디아의 수도인 프놈펜까지는 버스로 7~8시간 정도 걸린다. 요금은 12달러 정도. 시엠립 시장 거리에 가면 방콕과 가까운 국경도시 시아누크빌까지 밤새 달리는 버스를 예약할 수도 있다.

먹을거리 다낭은 베트남 북부 고원의 신선한 채소 요리와 남부의 다양한 생선 요리를 모두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비빔쌀국수 미꽝부터 외국 사람 입맛에 맞춘 프랜차이즈 식당까지 다양한 쌀국수 요리를 편력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베트남 음식 이름은 음식 종류, 조리법, 재료 순서로 되어 있어서 간단한 베트남어를 알면 주문하기가 쉽다.

대표적인 캄보디아 음식으로는 코코넛과 카레가 섞인 아목, 전골 요리인 숩 츠낭 다이가 있다. 관광지에선 캄보디아 전통 음식보다도 베트남이나 타이 음식이 더 흔하다. 영화 <툼레이더> 제작진이 자주 드나들었다는 시엠립의 카페 ‘레드 피아노’에선 배우 앤절리나 졸리의 이름을 딴 칵테일을 팔고 있다.

머물 곳 해변 도로인 박당거리를 따라 리조트와 호텔이 몰려 있는 다낭엔 최근 고급 숙소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그보다 조금 떨어진 선짜 해변에 전용 해변을 갖고 있는 인터컨티넨탈호텔, 전용 골프장과 빌라를 함께 운영하는 몽고메리 링크스 골프클럽 등이 있다. 역시 하루가 다르게 고급 호텔이 늘어나고 있는 시엠립에서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나 전통 목조가옥을 개조한 독채 숙소를 고려해볼 수 있다. 공항에서 왕궁 가는 길에 숙소가 몰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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