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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10 20:38 수정 : 2014.09.10 20:47

<맥심>은 훔쳐보기와 드러내기 사이에서 설레는 젊은 남성들의 욕망을 솔직히 드러내는 방식으로 독자층을 다져왔다. <맥심> 10월호 촬영 현장.

‘군대맥심’ ‘수컷들의 학교’ 등 별명으로
10~20대 남성들의 컬트가 된 <맥심>의 발칙한 시도


단지 야한 사진을 보기 위해
독자들은 지갑을 열지 않는다
남자들의 속내 숨기지 않는
편한 여자친구 같은 자리매김

맥심고에 전화를 걸었다. “전세계 수컷들이 선택한 최고의 매거진, 맥심입니다”라는 자동응답기가 전화를 받는다. 점심시간에는 “지금은 직원들에게 사료를 지급하는 시간입니다. 오후 1시 이후에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답한다. ‘맥심고’는 남성 잡지 <맥심>이 고등학생 독자들을 위해 2013년 11월호부터 매달 ‘맥심고-수능신공’이라는 제목으로 연재중인 기획기사다. 그리고 자연스레 <맥심>지의 별명이 되었다. ‘수컷들의 학교’ 맥심고를 찾아갔다.

장난감이 분명한 장총과 만화 <진격의 거인>에 나오는 거인의 머리를 본뜬 피규어들을 지나면 편집부에 들어선다. 지난 5일은 마침 사내 체육대회, 아니 철권 게임 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당구대와 큰 게임용 모니터를 갖춘 사무실은 잡지사라기보다는 정보기술(IT) 기업 사무실을 닮았다. 직원들은 “함께 클럽을 가거나 회사 내에 소소하게 놀거리를 많이 둔다. 팍팍한 잡지노동을 오래 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했다.

명품과 고가의 브랜드가 우리의 일상인 듯 다루는 패션지가 중심인 잡지계에서 <맥심>은 이상한 잡지다. 외국 잡지 브랜드를 그대로 들여온 라이선스 잡지면서 부록도 광고도 거의 없이 판매 수익에만 의존하며 정인영 스포츠 아나운서, 가수 나비, 걸그룹 레인보우의 멤버 조현영 등 ‘수컷들의 여신’이 표지 모델로 선 올해 1, 2, 3월호는 발행부수가 모두 팔리는 완판 기록을 세웠다. 이영비(32) 편집장은 “섹시한 여성의 비주얼이 남자들에게 가장 시각적으로 큰 충격을 주니까 표지에 가장 공을 들인다”며 “앞표지 모델은 여신급에서 섭외하고 뒤표지는 음악가 양방언, 이영돈 피디, 강용석 변호사,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등 어떤 어른이 될까 고민하게 되는 남자들의 다양한 롤모델 중에서 정한다”고 설명했다.

가장 많이 팔리지만 광고주들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주류 잡지는 아니라는 점도 특이하다. 책 앞머리에 실리는 독자들의 고민상담란에선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외과 전문의라고 자신을 밝힌 독자가 “요즘 제 고추가 점점 작아지고 있어요. 아무래도 너무 안 써서 퇴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라는 절박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고민상담을 담당하는 <맥심> 에디터는 “음경 강화를 위해 고추에 작은 쇳덩이를 매달고 다녔다”는 일본 홋카이도 원주민 아이누족 사례를 들려주며 독자를 격려한다. 봉만대 영화감독은 “뭐야, 이거 안 야하잖아” 하품을 하면서 “모름지기 훌륭한 남자라면 연장 탓을 하지 않는 법”이라고 점잖게 충고한다. 맥심고의 교육 내용은 쉽게 따라해서는 안 되는 ‘하드코어 금연 비법’이나 ‘유난히 복잡한 란제리를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기술’ ‘일본 막장 게임의 세계’ 등 주로 남자들이 키득키득 웃으며 몰래 돌려볼 만한 내용들이 다수다.

이 잡지에선 연예인들도 갑자기 힘을 뺀다. “섹시하기로 손꼽히는 여성들은 다 맥심 표지를 거치지 않았느냐”며 기뻐하던 가수 나비는 선정적인 자세로 화보를 찍으면서 방귀와 트림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힙합그룹 리듬파워는 자신들을 욕하는 다른 힙합 아티스트들에게 “너나 잘하라”고 받아치고, 칼 들고 화보를 찍은 가수 버벌진트는 “한동안 안 했더니 꼴린다”며 “(다른 뮤지션들을 질타하는) 디스곡을 다시 해보겠다”는 결의를 밝히기도 했다. <맥심>은 이런 인터뷰 내용을 모두 반말투로 싣는다. 뜬금없이 영어를 끼워넣는 말투를 ‘보그체’라고 하는데, 나이 막론하고 반말 주고받으며 돌직구 날리는 말투는 ‘맥심체’라고 할 만하다. 외국 남자들이 나오는 방송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을 소개하면서 ‘외산 고추들의 어택’이라는 제목을 버젓이 다는 등 이 잡지는 명백히 비(B)급 코미디를 지향한다. 단, 화보에서만큼은 진지하다.

‘맥심’은 훔쳐보기와 드러내기 사이에서 설레는 젊은 남성들의 욕망을 솔직히 드러내는 방식으로 독자층을 다져왔다. 정인영 스포츠 아나운서가 실린 2014년 1월호는 완판을 기록했다. 표창원 범죄연구소 소장을 모델로 한 뒤표지. 온라인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맥심고-수능신공’ 기사와 화보.(왼쪽부터)
군인들의 필수품이라는 뜻의 ‘군대 맥심’이란 별명처럼 남자들은 주로 선정적이며 직설적인 화보를 보기 위해 이 잡지를 산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영비 편집장은 “요즘 소비자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차라리 야동을 보지, 야한 사진 때문에 돈 주고 잡지를 사진 않는다”고 반박한다. “우리 경쟁 상대는 남성 패션잡지들이 아니다. 방송 <무한도전>이나 남자들이 즐겨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곳과 경쟁한다고 생각한다. 화보는 직설적이어도 장난스럽고 발칙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했다. 19금 잡지로 종종 오해받기도 하지만 ‘전체구독가’다.

또 <맥심>은 이따금 전문 모델이나 연예인 대신 에디터가 대신 모델로 나서 패션사진을 찍게 하고 맥심 모델인 미스 맥심 인기투표를 붙이는 등 온라인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방법을 곧잘 구사한다. ‘명품 지향’이 아닌 덕에 몸이 가벼웠다. 잡지 이름을 건 ‘맥심 파티’나 전자 잡지도 선전중이다. 한국 발매 12년이 된 이 잡지가 최근 들어 더 큰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스포츠 아나운서의 인기 비결과 비슷하다. 성, 스포츠, 게임, 파티, 농담…. 남자들의 욕망을 쉽사리 털어놓을 수 있는 속편한 여자친구 같다는 것이다. 유승민(33) 에디터는 이렇게 말한다. “패션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덕후(오타쿠)스럽다고 보고, 우리는 그들을 허영이 꼈다고 본다. 전체적으론 어린 남자들의 로망을 다룬다. 끝내주게 노는 법 같은 것.” <맥심>은 9월호에 일본 에이브이 여배우 아오이 쓰카사 인터뷰를 실으며 “그녀와의 4초 합체를 노리는 한국 남자의 자랑, 조웅재 에디터의 ‘아오이 쓰카사 체험기’를 잡지에서 만나라”고 광고했다.

9월24일 발행되는 10월호 표지모델은 성우 서유리씨다. 서유리씨는 “맥심은 남자들에게 수백만원짜리 명품 지갑 같은 걸로 박탈감을 안겨주지 않는 것처럼 여자에게도 그렇다. 비현실적으로 깡마른 모델 대신, 좀 튼실하더라도 건강한 여성을 보여준다”며 “표지 촬영하는데 절대 살 빼고 오지 말라고 당부하더라”며 웃었다. 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맥심 제공

■ 에디터 모델은 어떻게 시작됐나

2002년부터 한국 발행을 시작한 <맥심>은 사건·사고가 있을 때마다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특유의 대응을 하면서 인지도를 높여왔다. 선정성과 스타성의 경계를 활용해온 맥심의 사고 일지.

영욕의 에디터 모델
2012년, 한 여성 스포츠 스타와 표지 화보 촬영을 마치고 인쇄를 사흘 남긴 날, 스타 쪽에서 화보 전량 폐기를 요구해왔다. 맥심 코리아는 전말을 공개하고 5월호 표지로 촬영했던 스타 대신 담당 에디터 사진을 내보냈다. 에디터의 아슬아슬한 뒷모습이 찍힌 5월호가 매진되면서 잡지가 대중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국산 맥심녀의 좌절
맥심에서는 온라인 인기투표로 매년 맥심 모델 ‘미스 맥심’을 뽑는데 2012년 11월 열린 결승에선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 일어났다. 결승까지 올랐던 한국의 인기 모델 엄상미씨가 중국 누리꾼들의 몰투표에 밀려 중국계 미국인 대닝 푸에게 무릎을 꿇은 것. 관전자들은 “중국발 디도스 공격에 버금가는 투표였다”고 회고한다.

5월호 발행 연기
지난 4월19일 <맥심>은 “모든 이가 여객선 침몰 사고로 충격과 슬픔, 분노에 젖어 있는 지금, 마냥 재미와 웃음을 파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이미 제작된 5월호 발행을 당분간 보류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야한 잡지’ 맥심이 ‘개념지’로 알려지게 된 사건이다. 5월호는 그로부터 열하루가 지난 4월30일에 발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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