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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17 22:51 수정 : 2014.09.18 15:37

[매거진 esc] 스타일
‘문화 샤넬-장소의 정신’전을 계기로 패션전문가들이 짚어보는 명품의 상징, 샤넬 현상

전시장에 들어서는데 12살 소녀가 옆으로 오더니 함께 걷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가 시골 마을 수도원의 고아원에 그를 버렸다고 했다. 검은 옷을 입은 소녀는 눈을 빛냈다. 10개의 주제로 분류된 전시장을 도는 속도에 따라 소녀는 자라났다. 뮤직홀에서 노래를 부르는 아가씨로, 사랑을 찾은 숙녀로, 독립심 강한 디자이너로.

그의 이름은 가브리엘 샤넬. 지난 12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고 있는 ‘문화 샤넬전’(다음달 5일까지)에서 그를 만났다. 이날 하루만도 대여섯개 학교의 단체관람을 포함해 수천명이 전시장을 찾아 몹시 붐볐지만 그를 만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주제가 ‘장소의 정신’이었던 덕분이다.

1883년 8월19일 프랑스 소뮈르에서 태어나 1971년 파리의 한 호텔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그의 88년 인생은 전시장에 강렬하게 재구성됐다. 수도원에서의 10대, 노래를 부르며 사랑을 만난 20대, 도시로 나가 디자이너의 꿈을 불태운 30대 이후…. 각각의 장소들이 샤넬의 작품에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샤넬의 후예들은 치열하게 정리했다.

1917년에 만든 ‘첫 모자 작품’과 1955년에 만든 ‘첫 퀼팅 핸드백’ 등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치마 입고 양옆으로 발 모으고 말 타던 시대에 남자와 같은 승마바지를 입고 말에 오른 여성이 만든 브랜드, 그 브랜드에서 만든 군복 장식 모티브의 정장과 말안장 문양의 핸드백을 우리는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가? 이른바 ‘청담동 며느리’를 위한 고가 브랜드로만 이해하기에는 샤넬의 눈빛은 너무도 도도하다. 그래서 더 물었다. 과연 우리에게, 나에게 샤넬은 무엇인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이 멋진 아이러니라니

엄마에게는 샤넬백이 있다. 나와 동생이 돈을 반씩 모아서 사드린 것이다. 샤넬백. 사드리고 싶었다. 사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수천만원짜리 자동차를 리스로 굴리는 어린 남자들의 욕심이 사치가 아니라면, 장성한 두 아들이 있는 50대의 중년 여인이 샤넬백을 드는 것은 더더욱 사치가 아니다. 그리고 샤넬백은 누가 어떻게 들어도 근사하다. 10대 소녀가 청바지에 티를 입고 들어도 멋지고, 50대 여자가 진주 목걸이에 검은 투피스를 입고 들어도 어울린다. 스타일의 측면에서 보자면 샤넬백처럼 실용적인 백은 거의 없다. 아마도 여기서 당신은 부르짖고 싶을 것이다. 샤넬과 실용주의, 두 단어가 어울리기나 하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디자이너로서 샤넬은 언제나 실용주의자였다. 그녀는 (오직 그녀만의 업적은 아니지만 여하튼) 코르셋으로부터 여자를 해방시켰다. 여자들이 검은 옷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었다. 지금 당신이 알고 있는 여성의 현대적인 복식은 샤넬로부터 거의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거대한 전지구적 럭셔리 브랜드가 되어버린 지금도 코코 샤넬의 실용주의는 여전하다. 물론이다. 그건 모두를 위한 실용주의는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럭셔리 브랜드들이 최대한의 이윤을 벌어들이기 위해 저렴한 라인을 개발하고, 돈 없는 세대에게 팔기 위해 스파(SPA) 브랜드와 협업(컬래버레이션)을 하는 와중에도, 샤넬은 고고하게 샤넬을 입고 들 수 있는 사람만을 위해서 옷과 가방을 만든다. 그러니까 코코 샤넬의 실용주의는 ‘실용주의적 럭셔리’로 변화한 셈이다. 캬. 이 멋진 아이러니라니.

김도훈 <허핑턴포스트코리아> 편집장

실용주의에서
실용주의적 럭셔리로
취향과 경험을 녹인
베끼기에서 독창성 꽃피워

한 세기를 지탱할 힘 있습니까?

한 세기 가깝게 하나의 브랜드를 지속했다면, 걸어온 길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문화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샤넬은 그들이 쌓은 문화를 기록하고 재해석하여 전파하는 데 누구보다도 탁월하다. 카를 라거펠트 샤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전 <보그 파리> 편집장 카린 루아트펠드가 상징적인 샤넬 재킷에 영감 받아 만든 전시이자 동명의 사진집 <리틀 블랙 재킷>이 그러했고, 지금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는 <문화 샤넬-장소의 정신> 전시도 그 연장선에 있다.

역사와 전통을 지닌 패션 브랜드들은 세월이 곧 가치와 같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어떠한 브랜드가 주춤했다가도, 브랜드의 과거를 제대로 이해하는 새로운 예술감독의 혁신에 의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것은 기록을 소중히 여긴 문화 덕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수많은 브랜드가 수많은 유명인을 앞세우고, 특정 시기의 경향을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패션 브랜드들은 장기 불황에 저마다 갈 길이 바쁘다. 의식 있고 자각 있는 패션 디자이너들이 생겨도, 그들에게 생존은 역사나 가치라는 단어보다 더 현실적인 문제다. 그래도 10년, 20년 후 언젠가 지금의 샤넬 같은 전시를 우리 공간과 지역에서, 세계 어딘가에서 만나기를 고대한다. 이제 사람들이 걸치고 소비하는 것의 이유가 단지 좋은 소재와 멋진 디자인만으로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으니까.

홍석우 <스펙트럼> 매거진 편집장

스스로를 믿는 자가 창조한다

코코 샤넬을 보고 알았다. 스스로 스타일을 창조할 줄 아는 사람들은 결코 당대의 유행이라든가 관습에 따르지 않는다는 걸. 샤넬이 샤넬일 수 있었던 건 당대 유행했던 귀족적 취향을 우습게 여기고 되레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던 자신의 초라한 과거와 고아원 수녀나 어부 같은 주변인들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녀는 자기 옷이나 액세서리의 복제품이 나오는 걸 환영했다. ‘복제는 사랑이다’ 하면서. 1920년대 파리에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멋쟁이들이 좀 많았나? 자유분방하고 진보적인 예술가 아가씨들 말이다. 예컨대 남장을 하고 다녔던 콜레트 같은…. 샤넬 자신도 좋아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베꼈다. 그러나 자기 방식대로. 자기 경험 안에서 형성된 취향과 확신 속에서 모방 혹은 영감의 대상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승화시키기! 한마디로 샤넬은 나에게 자기만의 스타일, 혹은 독창성이라는 게 과연 어디서 나오는 건지 알려준 인물이었다. 샤넬이 내게 속삭인 바에 의하면 이렇다. “명심해. 이 세상에서 유일한 건 나밖에 없다는 거. 그래서 자기 뿌리, 자기 경험이 중요한 거고. 무엇보다 넌 너 자신을 믿어야 돼. 네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어떤 부류가 가장 천박해 보이는지. 네 눈에 진정 품격 있고 멋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네가 인간 존재에 대해 경외심을 품게 만드는 예술가들을 흠모하고 있다면 그들을 적극 활용해도 좋아. 그러나 찬미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김경 패션 칼럼니스트

‘오리지널’은 힘이 세다

누군가의 혼수 품목 또는 어머니의 친구들은 하나쯤 갖고 있다는 ‘그 백’. 샤넬은 내게 이쯤 되는 브랜드다. 직업이 패션 디자이너지만 아직도 샤넬 매장에 들어가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샤넬의 수장 카를 라거펠트를 알고 오드리 토투가 주연을 맡은 영화 <코코 샤넬>을 극장에서 보았으며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주인공을 맡은 앤 해서웨이가 입은 샤넬 트위드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글을 써내려가면서 새삼 느낀다. 우리(아니면 그저 나)는 이미 샤넬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샤넬은 패션을 판타지로 만들어 파는 일개 ‘브랜드’가 아닌 어떤 의미에서 하나의 종교가 되어 버렸다. 이는 단지 영리한 마케팅의 결과가 아니다. 과거의 유산을 간직하고 역사를 중요시한 덕이라 생각한다.

현재 동대문디자인플라자라는, 서울에서 가장 미래적인 건축물에서 샤넬은 오래된 ‘클래식 백’과 ‘트위드 재킷’을 전시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의 격차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서로 잘 어울린다. 샤넬은 그렇게 오랜 시간 ‘오리지널’을 지키며 현대의 여러 아티스트와 협업을 통해 미래를 만들어왔다. 첨단을 달리는 패션피플들은 매 시즌 파리에서 압도적인 규모로 화려하게 펼쳐지는 샤넬의 컬렉션을 기다린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적절하게 잘 뒤섞고 있는 브랜드가 또 있을까?

가브리엘 샤넬이라는 한 사람의 불안한 삶을 주제로 후세에 더욱 환상을 주입시키는 마케팅 방법을 활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샤넬의 가장 큰 힘은 이러한 ‘오리지널의 진화’다. 디자이너로서 저렇게 브랜드의 정체성을 소중히 여기며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곳에서 일을 한다면 어떨까, 상상을 해보게 된다.

김선호 ‘그라운드웨이브’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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