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1.05 20:31
수정 : 2014.11.05 20:31
|
경기도 양평 회현리에 지어진 에너지독립하우스 1호와 2호. 왼편이 1호, 그 앞에 있는 낮은 건물은 에너지 발전 시스템이 설치된 두 집의 온실이다.
|
[매거진 esc] 라이프
태양광 에너지로 냉난방에서 요리 온수 조명까지 모든 에너지를 자급자족하는 양평 에너지 독립하우스
10월31일 차가운 비가 내리면서 경기도 양평군 회현리 한낮 기온은 10℃까지 떨어졌지만 나무로 지은 집 안은 따뜻했다. 집 안 온도계는 24℃를 가리켰다. 똑같이 나무로 지어진 바로 옆집에선 두달 전 태어난 아기를 안고 엄마 최민경(38)씨가 반팔 차림으로 손님을 맞았다. 이 두 채의 집은 햇빛을 받아 난방과 전기에너지 모두를 해결하는 태양광 주택이다. 지을 때부터 화석연료를 쓰는 보일러 시설을 갖추지 않은 것은 물론 한국전력의 어떤 송전시설과도 연결하지 않았다. 집주인들은 한국전력과 계약하지 않은 이 집을 ‘에너지 독립하우스’ 1호와 2호라고 부른다.
바닥에 상수도관과 열선 깔아
여름엔 차가운 물이 돌며 열 식히고
겨울엔 열선이 바닥 데워
태양광 발전 설치비용 낮아져
일반주택 건축 현실화
지금까지 지어진 대부분의 태양광 주택은 한국전력과 전선을 연결해 낮엔 태양광 전기를 사용하고 밤에 전기가 모자라면 한전에서 끌어다 쓰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에너지 독립하우스는 난방·냉방·요리·온수·환기·조명에 필요한 에너지를 전부 자급자족한다. 이 집이 건축적으론 열을 다스리는 밀폐와 단열이 뛰어난 에너지 주택, 패시브하우스로 지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에너지 독립하우스 1호와 2호는 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이필렬 교수가 설계했고 1호에 살고 있는 최우석(43)씨는 이 교수와 함께 직접 이 집을 지은 에너지독립연구소의 연구원이다.
|
태양광 발전 시스템을 갖춘 패시브하우스로 지어진 집은 남동쪽으로 커다란 창을 냈다. 창은 모두 독일산이며 패시브하우스 건축 규정에 따라 단열재를 일일이 손으로 맞추는 방식으로 지어졌다.
|
에너지 독립하우스 안에는 보일러나 냉방 조절 장치 대신 환기와 온도 조절을 할 수 있는 스위치가 달려 있다. 햇빛을 많이 받을 수 있는 투명하고 큰 창은 패시브하우스를 알아볼 수 있는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최우석씨의 1호집 창엔 새 모양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작은 새들이 투명하고 큰 창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꾸 부딪치자 창문마다 ‘버드 세이버’라고 하는 형상을 붙여두었다.
독수리가 지키는 창 안쪽을 들여다보면 집 안은 따스하고 단순하다. 거실과 주방, 부부의 작업 공간을 겸하는 66㎡(20평) 넓이의 1층은 창이 없는 곳마다 책으로 채워져 있다. 책이 많은 부부는 2층 침실 벽면도 책으로 채우고 침대 아래쪽과 창틀 아래쪽도 책장으로 만들었다. 집주인은 80㎜ 두께의 육중한 나무가 주는 느낌이 좋아서 집 지을 때 구조목으로 쓰는 공학목재인 글루램으로 마룻바닥을 삼았다고 했는데 과연 마당의 사각거리는 돌자갈밭을 지나 집으로 들어와서 1층 바닥을 밟는 느낌이 특별하다.
최우석씨의 동생 최민경·유주형 부부가 사는 옆집의 면적과 구조도 비슷하다. 여동생 부부는 지난봄 이곳으로 이사 와 둘째 아이를 낳았다. 도심 아파트에서 살던 때는 에어컨 없이 지내는 여름을 상상도 못 했는데 뜨거운 여름 한낮에도 실내 기온은 26℃를 넘지 않았다고 했다. 2호집은 집주인의 취향 따라 좀더 값비싼 마감재를 썼다. 바닥에는 상수도관과 열선이 깔려 있다. 여름에는 차가운 물이 집을 한바퀴 돌며 열을 식히고 겨울에는 전기를 이용한 열선이 바닥을 데우는 원리다. 마당 온실에는 두 집의 난방과 전력을 책임지는 태양에너지 발전 시설이 있다.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을 모으는 집광판이 발전 시설과 연결되어 있다. 냉장고와 세탁기, 티브이, 컴퓨터 그리고 전기난로까지 보통 가정에서 쓰는 전기제품을 모두 갖췄지만 아직까지 불편을 느껴본 일이 없다. 다만 장마 동안엔 빨래를 하지 않는 것처럼 비가 계속 내릴 땐 따뜻한 태양광으로 만들어내는 전기도 줄어들 것을 생각해 물을 펑펑 쓰거나 세탁기를 돌리지 않는 등 자연에 따라 일상을 조절하는 ‘해바라기 생활’을 할 필요는 있다고 했다. 겨울이 되면 전력 필요량은 후딱 올라가지만 보통 99㎡ 넓이 건물의 난방에너지 수요를 연간 250㎾h(킬로와트시)로 잡는 데 비해 두 집은 12㎾h를 넘지 않는다. 빈틈없이 단열하고 열을 집 안으로 되돌리는 환기를 하는 등 패시브하우스의 건축 원칙을 그대로 지켜 지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패시브하우스 인증 기준인 연간 난방에너지 수요량 15㎾h 이하를 충족하는 집은 많지 않다고 했다.
에너지 독립하우스를 설계한 이필렬 교수는 독일 패시브하우스(passivhausprojekte.de) 누리집에 한국 패시브하우스로 등록된 첫번째 건축물, 경북 영양 농촌체험센터를 설계한 사람이다. 그는 2011년엔 자신이 살던 서울 종로구 부암동 집을 개조해 에너지 독립하우스 0호로 지었다. 0호가 에너지독립연구소 건물이자 모델하우스였다면 양평은 에너지 독립하우스의 실체인 셈이다. 이필렬 교수는 에너지 독립하우스를 지을 때 설계비를 전혀 받지 않는 대신 집의 에너지 사용량 측정권과 언제든지 누구에게든 집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견학권을 갖는다. 양평의 기온이 10도이던 날 아침, 그는 부암동에서 전력관리 프로그램 사이트인 비즐리닷컴(bidgely.com)으로 두 집의 에너지 사용량을 관찰하고 있었다. 시민단체 에너지전환 대표를 지내기도 했던 이 교수는 2008년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패시브하우스 디자인을 공부하며 현장 경험을 익혔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났죠. 원전으로부터 벗어날 대안은 무엇인가 고민했습니다. 답은 분명했죠. 우리가 한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원전이나 밀양 송전탑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에너지 독립하우스는 국가권력만큼이나 거대한 한전 권력이나 화석에너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찾은 대안이다. 10년 동안 4분의 1로 줄어든 태양광발전 시설 설치 비용이나 패시브하우스 건축 기술이 에너지 독립하우스를 현실화하는 데 밑거름을 주었다. 에너지 독립하우스는 이런 집들을 여럿 지어 마을 공동체가 에너지를 생산하는 꿈을 꾸고 있다.
|
태양광 모듈은 지붕에 비스듬히 설치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집은 5도 정도의 기울기로 수직에 가깝게 설치했다. 겨울에 눈이 쌓일 것을 대비해서다.
|
밀폐와 환기를 중시하는 에너지 독립하우스는 기초부터 다른 집 바닥 공사의 두배 두께로 지어질 만큼 건축비는 보통집보다 높을 수 있지만 에너지 비용을 줄이는 효과는 크다는 주장이다. 1호와 비슷한 면적의 단독주택은 보통 난방, 온수, 전기 비용을 합쳐 연간 400만원 정도를 내는 것으로 추산된다. 에너지 독립하우스가 30년을 간다면 거의 건축비에 가까운 에너지 비용을 줄일 수 있다. 40년이라면 에너지를 아낀 돈이 건축비를 넘어선다.
이상과 현실이 만난 지점에서 에너지 하우스는 오래 지속될 꿈을 꾸고 있다. 검게 그슬린 탄화목으로 지은 1호에서 사는 최우석씨는 “탄화목은 지금은 검지만 세월이 갈수록 은빛을 띠면서 멀리서 보면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에너지 독립하우스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양평/글·사진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에너지독립연구소 제공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