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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03 20:30 수정 : 2014.12.04 10:00

아저씨 같은 여자를 그린 일본 드라마 <라스트 신데렐라>. 누리집 화면 갈무리

[매거진 esc] 아리카와 마유미의 요즘 여자

‘여자력’. 몇 년 전 일본 신조어 대상에 뽑히기도 한 이 단어는 여성스러운 모습을 스스로 연출할 수 있는 힘을 뜻한다. 일상생활이나 패션스타일은 물론 요리나 뜨개질 같은 취미가 있을 때,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를 살뜰하게 챙기는 모습을 보이면 ‘여자력이 높네’라고 감탄한다. 최근에는 결혼이나 취업에서도 여자력을 높이는 게 유리하다며 이에 관한 강좌가 개설됐을 정도다. 이 반대쪽에는 ‘여성의 수컷화’라는 현상이 있었다.

어느 트위터리안이 올린 수컷화된 여성의 특징을 보자. ①우물쭈물하는 남자에게 실망한다 ②기상에서 출근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10분 이내이다 ③예쁜 여자를 보면 좋아하는 마음이 생긴다 ④술 마시는 모습이 멋지다 ⑤수염이 2~3개 나 있다.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20·30대 여성의 약 80%가 수컷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느낀다고 답변했다. 심지어 신체적인 변화를 겪기도 하는데, 피부 트러블과 수염이 난다는 대답이 그런 예다. 여성호르몬을 높인다는 마사지 방법도 온라인에 떠돌았다.

연애에서 수컷화된 여성들은 “데이트보다도 일이 우선이다” “남자친구를 너무 방치했더니, 외롭다고 울더라” “애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게 귀찮아졌다”고 한다. 정말이지 남자다운 여자들이다. 나는 20대 때 웨이트리스를 그만두고 의료기기 판매점 점장을 한 적이 있었다. 그전까지는 예쁘게 꾸미고 다니라고 하더니, 새 직장에서는 남성과 똑같이 일할 것을 요구받았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오랫동안 일했고, 화장이 지워져도 고칠 여유는 없었다. 운동부 감독이라도 된 것처럼 남자 직원들에게 ‘어이, 좀 와봐. 빨리 뛰엇!’ 하며 큰 소리를 질렀다. 심지어 ‘요즘 남자들은 정말 의지가 없단 말이지…’ 하면서 남자 부하들을 한심스럽다고 여긴 적도 많았다. 자신을 보면서 ‘나, 남자보다 남자다운 거 아냐?’라고 자화자찬하기까지 했다. 일에 매진하는 여성들을 그린 일본 드라마 <워킹맨>에 등장하는 명대사 “일 모드 온! 남자 스위치를 켭니다”와 같은 일상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적극적이고 일을 열심히 한다고 다 ‘남자다워지는’ 게 아니다. 요즘 여성들은 남자들과 똑같이 능력을 발휘하고 일도 해내야 한다는 마인드를 가진 동시에, 겉모습은 여성스럽고 소녀다운 모습도 유지하려고 한다. 예전에는 외모를 가꾸는 일에 대해 ‘남자들의 욕망’을 채워주려는 행위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두 가지를 다 하려는 이중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여자력’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게 된 이유다. 왜 이런 양면적인 모습을 가지게 되었을까?

이런 현상에 대해 여성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논픽션 작가 스기우라 유미코는 “사회성 지상주의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여성들의 관심사는 언제나 ‘사회에서 나를 어떻게 볼까’에 맞춰져 있다. 사회가 일에서는 남성과 똑같이 일하기를 요구하고, 외모에선 여전히 여성스러움을 요구하니, 이 두 가지를 다 수행하게끔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연애를 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예전보다 여성들이 연애에 더 적극적이지만, 반면 남성들 중엔 초식남들이 늘어가면서 연애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런 초식남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소녀 같은 스타일의 여자, 즉 ‘여자력’이 높은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되었지만, 그런 여자들이라고 다 연애를 잘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겉모습이 남자 같든 소녀 같든, 적극적으로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여성이 더 매력적인 건 분명하다. 그러나 일에서는 ‘여자답지 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퇴근하고 나면 ‘여성스럽다’는 말을 칭찬으로 하는 사회. 과연 여성들에게 더 좋은 시대가 된 것일까?

아리카와 마유미 작가·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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