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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03 20:48 수정 : 2014.12.04 09:59

순천 낙안읍성마을은 주민들이 대를 이어 살고 있는 대표적인 초가 마을이다. 해마다 늦가을부터 이엉잇기 작업을 한다. 새로 이엉을 얹은 황금빛 지붕의 집들 사이로 일부 작업 전의 초가들이 보인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매거진 esc] 여행
사라져가는 ‘초가 이엉잇기’ 주요 민속마을에서 작업 한창…아이들 위한 굼벵이 체험 이벤트

볏짚은 일상이었다. 볏짚 사이에서 일하고, 볏짚 아래서 볏짚 깔고 먹고 자며 살았던 지푸라기의 일상. 벼의 낟알을 떨어내고 남은 줄기가 볏짚이다. 벼농사 중심의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 볏짚은 생활의 도구이자 방식이며 목표였다. 볏짚을 엮어 지붕 해 올리고, 멍석 짜고 가마니를 짰다. 맷방석·소쿠리도 만들고 짚신도 삼았다. 볏짚을 꼬아 만든 새끼줄은 일상의 잡다한 물건들을 묶고 엮고 매달고 갈무리하는 데 쓰였다. 40~50년 전까지도 그랬다.

볏짚의 일상을 대표하던 것이 초가 ‘이엉잇기’다. 해마다 추수가 끝나고 찬바람 불 무렵이면, 마을마다 초가지붕 교체작업(이엉잇기)이 품앗이 형태로 벌어졌다. 남자들은 새끼 꼬며 이엉을 엮고, 여자들은 국수 삶고 막걸리를 준비해 마을잔치를 벌였다. 이 거칠고 궁핍한 지푸라기의 일상은, 정겹고도 아름다운 우리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주거문화 개선으로 초가집은 사라지고 이엉잇기 마을잔치도 자취를 감췄지만, 일부 민속마을과 고택들에서 요즘도 이엉잇기 행사를 펼쳐 볼거리를 선사한다. 주요 민속마을들이 지난달 말부터 본격 이엉잇기를 시작해 이달 말까지 작업을 이어간다. 볏짚 향기 맡으며 선인들 일상생활과 전통 주거문화를 피부로 느끼고 배워볼 수 있는 기회다.

이엉잇기 작업이 한창인 낙안읍성 남문 밖 초가들. 작업은 60~80대 어르신들 몫이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초가 300동 낙안읍성마을 볏짚 향기 물씬

새로 지어 만든 초가 마을이 아니라, 수백년 동안 같은 집, 같은 골목, 같은 마당에서 주민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전통마을이다. 전남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충민길 30)의 낙안읍성. 조선시대 읍성들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꼽힌다. 조선 태조 때 쌓은 토성을 인조 때 임경업 장군이 낙안군수로 부임해 석성으로 고쳐 쌓았다고 한다.

둘레 1400m에 이르는 장방형 성곽도 거닐 만하지만, 볼거리는 뭐니 뭐니 해도 성곽 안팎에 포진한 낮고 둥글고 아담한 초가지붕들이다. 성안에 90여채, 성 밖엔 성곽에 바짝 붙어 40여채의 초가가 몰려 있다. 건물 수로는 300동이 넘는다. 초가지붕들 사이로 돌담 골목이 요리조리 이어지고, 수령 300~400년의 거대한 은행나무·팽나무·푸조나무들이 곳곳에 서서 볏짚 사이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일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영주 선비촌에서 만난 굼벵이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지난 11월27일 오후. 낙안읍성 안팎 2~3동의 초가에서 이엉잇기 작업이 벌어졌다. 기존 지붕에서 뽑아낸 썩은 짚들이 마당에 널리고, 한쪽엔 깔끔하게 엮은 새 볏짚단들을 쌓아뒀다. ‘이엉’은 볏짚 등을 엮은 지붕의 재료를 뜻하고, 이것을 지붕이나 담에 올리는 일을 ‘잇는다’고 한다. 구경꾼들은 먼저 볏짚단의 향기를 맡으며 기뻐하고, 지붕 위에서 위태롭게 일하는 어르신들을 보며 안타까워하다가, 마당의 썩은 짚단 사이에서 꾸물꾸물하는 흰 굼벵이를 발견하고는 질겁을 한다. 나이 든 관광객들은 “햐, 오랜만에 본다, 오랜만에 봐” 하며 추억에 잠기는 표정들이다.

읍성 주민과 이웃마을 주민들이 나서서 11월 중순부터 12월 말까지 하루 1~2채(3~5동)씩의 초가지붕 이엉잇기를 한다. 추수가 끝난 뒤, 날을 잡아 새끼꼬기·날개엮기(영애엮기)·용마루엮기(용마름틀기)를 하고, 다시 날을 받아 이엉잇기를 한다. 가장 많이 해야 하는 일이, 지붕에 겹겹이 두르는 ‘날개’(영애) 엮기다. 한 움큼씩의 짚을 차례로 엮어, 길이 8m짜리의 날개 한 장을 만드는 데 30분가량 걸린다. 능숙한 사람은 하루 20장을 엮는다고 한다.

주민 김정표(65)씨는 “보통 한 동에 날개 60~70장을 까는데, 요즘엔 키 큰 나락이 없어서 힘이 든다”고 했다. 바람에 강한 키 작은 벼 품종만 재배되면서, 볏짚 길이가 짧아진 탓에 이엉잇기 작업이 늘고 볏짚도 많이 들어간다는 말씀이다. 하지만 주민들 걱정거리는 정작 다른 데 있었다.

초가 지붕 교체작업
추수 끝난 뒤 농촌 일상이었으나
민속마을과 고택만 남아
배우려는 젊은 사람들 없어
명맥 끊길까 우려

용인 한국민속촌 초가에서 헐어낸 썩은 짚더미에서 굼벵이를 찾아낸 어린이들이 만져보며 신기해하고 있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우리 죽으면 끝나부러” 어르신들 명맥 걱정

“이것이 아조 위험한 작업이여. 순간적으로 삐끗해불면 걍 가는 것이제.” 성안 한 식당채 초가지붕 위에서 용마루 올리기 작업을 하고 내려온 주민 송일남(73)씨의 말이다. 송씨는 “아까 낮에도 80살 노인이 지붕에서 떨어져 병원으로 실려갔다”고 했다.

기존 지붕의 썩은 부분을 헐어내고 새 볏짚(진새)으로 메우는 일도, 새로 엮은 볏짚단(날개)을 지붕에 둘러 펴는 일도, 그 위에 다시 새끼줄을 둘러 묶는 일(고삿매기·고사새끼줄치기)도, 60~80대 어르신들이 안전장비 없이 맨몸에 맨손으로 해낸다. “누가 하겄소. 늙은이들뿐인디. 우리 죽으면 이것도 끝나부러.”

주민들의 이엉잇기 작업을 지켜보던 문화재 보수업체 대표 박용섭(70)씨는 “초가 이엉잇기도 기능 보유자로 지정해 보전하지 않는다면 명맥이 끊기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그나마 희망적인 건 낙안읍성 출신 일부 젊은이들이 돌아와, 고향집이자 문화재인 초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주민 송상수(63)씨는 “이번에 40대 주민 몇명이 이엉엮기와 잇기 기술을 배우고 있다”며 “전통문화 전승을 위한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놓인 것 중에 굼벵이(짚굼벵이)도 있다. 일이 느리고 행동이 굼뜬 사람을 빗대 ‘굼벵이처럼 한다’거나 ‘굼벵이도 구르는(뒹구는) 재주는 있다’ 등 속담에서 보듯 굼벵이는 우리 일상과 함께해온 벌레다. 굼벵이는 어혈을 풀어주고 간 질환에 효과가 있다 해서 민간 약재로 쓰이기도 한다. 이엉잇기 철이면 멀리서 굼벵이를 사러 오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초가지붕이 사라져가면서, 그 많던 짚굼벵이도 크게 줄었다. 주민 이봉식(64)씨가 말했다. “썩은 짚을 먹고 자란 짚굼벵이가 진짜배기인데, 요즘엔 이놈치(짚굼벵이)를 사들여, 땅에서 난 것허고 양식으로 기른 것허고 다 섞어서 갈아부링게. 다 속아서 사지라.”

굼벵이는 풍뎅이나 매미, 사슴벌레·하늘소·꽃무지 등 변태를 하는 곤충 애벌레의 총칭이다. 매미와 풍뎅이의 애벌레는 흙속에서, 꽃무지의 애벌레는 썩은 짚더미에서, 하늘소의 애벌레는 썩은 나무둥치에서 주로 산다고 한다.

낙안읍성 초가 용마루 올리기 작업.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용인 한국민속촌에선 굼벵이 찾기·굼벵이 경주

굼벵이를 내건 축제를 여는 곳도 있다. 사철 다채로운 세시풍속 행사를 펼치는 경기도 용인의 한국민속촌이다. 이곳 한옥 160여동 중 80여동이 초가다. 해마다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이엉잇기 작업과 함께, 굼벵이를 주제로 내건 행사를 벌여 눈길을 끈다. 굼벵이 관찰, 굼벵이 경주, 대장굼벵이 찾기 등으로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 단위 관람객들의 흥미를 돋운다.

11월29일 민속촌 한약방 초가의 이엉잇기 현장. 엄마·아빠(수원 영통동)와 함께 굼벵이를 찾아낸 황다윤(4) 어린이는 “말랑말랑하고 귀엽다”며 꿈틀거리는 굼벵이를 집어들고 눈을 뗄 줄 몰랐다. 엄마 이현진씨는 “말로만 듣던 초가지붕 이엉잇기를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다”며 “아이에게도 새롭고 흥미로운 체험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는 ‘초가집 새 지붕 얹는 날, 굼벵이 대축제’를 12월14일까지 진행한다. 주말인 6일과 7일 낮 12시30분 공연장에선 가장 빠른 굼벵이를 선발하는 ‘F1 굼벵이 그랑프리’가 벌어진다. 선착순으로 입장한 350명에게 굼벵이 번호표를 나눠주고, 5분간 경주를 벌여 해당 굼벵이 번호표를 가진 이들에게 상품을 준다. 몸집이 크고 움직임이 왕성한 굼벵이를 찾는 ‘왕꿈틀이 선발대회’(선착순 10명, 6·7·13·14일 오후 3시30분 민속마을 47호)와 이엉잇기 현장에서의 굼벵이 관찰(매일) 행사도 열린다. 민속촌에선 ‘굼벵이 키우기 키트’도 살 수 있다.

순천 용인/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초가 이엉잇기 벌이는 주요 민속마을

고성 왕곡마을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 11월 중순~1월 초. 초가 90여동. 짚풀공예 체험 가능. (033)631-2120.

용인 한국민속촌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 11월 말~12월 말. 초가 80여동. 새끼꼬기·이엉엮기 체험 가능. (031)288-0000.

아산 외암민속마을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10월~1월 초. 초가 140여동. (041)544-8290.

영주 선비촌 경북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11월 중순~12월 말. 초가 24동. 새끼꼬기·이엉엮기 체험 가능. (054)638-6444.

경주 양동민속마을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11월 중순~1월 초. 초가 300여동. 070-7098-3569.

순천 낙안읍성마을 전남 순천시 낙안면 동내리. 11월 중순~12월 중순. 초가 300여동. (061)749-883.

서귀포 성읍민속마을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1~2월. 초가(띠집) 300여동. (064)787-1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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