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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03 21:02 수정 : 2014.12.04 15:38

지난달 29일 파주 출판도시에서 열린 ‘제10회 동아시아 책의 교류’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전시된 책을 만져보고 있다. 출판도시문화재단 제공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책 디자인의 세계
한국과 중국의 책 디자인 명장들이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책’이란 무엇인가

“책이 내용만 좋으면 됐지 모양이 무슨 상관이냐.” 한국의 단행본 출판이 본격화된 1970년대 이래 ‘책 디자인’을 보는 시각은 오래도록 경직되어 있었다. 책 디자인이라면 표지 디자인이 전부인 줄 아는 이들이 많았고 디자인 이야기를 꺼낼라치면 “내실은 신경쓰지 않고 겉모습만 신경쓴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국내에서 ‘책 디자인’ 영역을 개척해온 정병규(68) 서울북디자이너스클럽 회장은 지난달 27일 <한겨레>와 만나 그 시절을 그렇게 기억했다.

민음사의 첫번째 남자 직원이었던 그는 편집으로 시작해 디자인으로 영역을 넓혔다. 책 디자인에 인생을 걸기로 한 뒤 일본과 유럽으로 건너가 접한 책 디자인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고 한다. “가운데로, 위쪽으로 중심을 잡아 지면을 구성해야 하는 공식부터 건축처럼 한 권의 책을 쌓아나가는 방식까지, 디자인은 차라리 암기 과목”이었으며 “종이 선택, 제본, 글자 모양, 삽화 배치, 표지까지 총괄적으로 책을 표현해 내는 것이 디자이너의 몫”이었다.

국내에 “출판 문화가 아닌 책의 문화”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고 여긴 그는 10년 전 중국, 일본, 대만의 책 디자이너들을 연결해 ‘동아시아 책의 교류’ 행사를 기획했다. 50년째 독일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책 디자인’ 시상의 심사위원인 중국의 뤼징런, 대만의 황융쑹, 일본의 스기우라 고헤이 등의 책 디자이너들이 교류하며 아시아의 책 문화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

29일 파주 출판도시에서 열린 10주년 행사장에서 만난 뤼징런(67)은 책 디자인을 세가지 분야로 설명했다. 첫째는 ‘책의 옷’이라 할 수 있는 책의 외부 디자인, 둘째는 문자·이미지·여백·색채 등을 통해 독서에 리듬을 주는 평면적인 디자인, 셋째는 총체적인 내용의 전달을 위해 시각적인 체계를 잡는 편집 디자인이다. 그는 “훌륭한 책 디자이너는 제2의 작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은 최근 10년새
책 디자인 급속도로 발전
한참 앞서 나가던 일본은 주춤
한국은 기존 이미지 저렴하게 구매해
표지 똑같은 다른 책 나오기도

그렇다면 ‘아름다운 책’은 무엇일까? 뤼징런 디자이너는 ‘표지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책 전체가 하나의 ‘완전체’ 개념인 책, 디자인이 새로우면서도 책의 내용과 편집이 어울려 내용이 뚜렷하게 잘 읽히는 책, 책을 펼쳤을 때의 구성까지 신경쓴 책’을 아름다운 책의 조건으로 꼽았다.

지난해 ‘중국의 아름다운 책’ 선정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안지미 디자이너는 “최근 10년 사이 중국에서는 책 디자인 분야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한참 앞서 나가던 일본은 최근 주춤한 모양새”라고 진단했다. 한국은 어떨까? ‘불황’이란 단어가 떠날 줄 모르는 출판계에서는 표지 등 디자인에 공을 들이는 대신 저렴한 이미지를 사 그대로 표지에 내는 방식으로 책을 만드는 사례가 빈번하다 보니 똑같은 표지의 책 두 권이 나오는 웃지 못할 일도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정병규 회장은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 실로 꿰는 제본을 멀리하고, 종이값을 아끼기 위해 활자의 선명도를 떨어뜨리고 책 구성 공식까지 무시하며 색지를 빼는 등 일부 출판사들의 행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지난달 ‘중국의 아름다운 책’ 심사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신진 디자이너들까지 가세한 중국의 책 디자인이 중국 문화의 큰 힘이 되어갈 것”이라며 “우리나라도 책 디자이너 육성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주도로 내년부터 ‘한국의 아름다운 책’ 선정 작업도 시작될 전망이다.

“직접 만지고 줄도 그어가며 나의 모든 감각을 동원한 경험을 해야만 비로소 글은 나에게 인식이 된다.” 안지미 디자이너의 말이다. 책은 물질이다. 만지고, 넘기고, 멈추고, 다시 보는 경험이 한권의 책을 통해 쌓인다. 좋은 책을 만드는 문화와 좋은 책을 읽는 문화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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