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스타일
흰색 검은색 등 보수적 색채 치우친 자동차 시장에 레드로 도전장 내민 SM3·QM5와 국내외 신모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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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 삼성 ‘SM3 Neo R4U 에디션’, ‘QM5 Neo R4U 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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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돈 많아 보이는 새 남자친구’의 차는 ‘빨간 스포츠카’, 호텔 앞에 멈춰선 회장님의 차는 ‘검정 세단’, 갓 결혼해 새 차를 뽑았다고 싱글벙글한 김 대리의 차는 ‘은색 중형차’…. 자동차 색상에 대해 우리는 어느 정도 ‘학습된 편견’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올해도 회장님은 검정 차를, 새 남친은 빨간 차를, 새신랑은 은색 차를 탔을까?
새 남자친구든, 새신랑이든 올해 차를 샀다면 세명 중 한명은 흰색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올해 가장 인기있는 자동차 색은 ‘흰색’이다. 글로벌 자동차 페인트 업체인 엑솔타(AXALTA)가 발표한 ‘2014년 자동차 인기 색상’ 집계에서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자동차 색으로 ‘흰색’이 꼽혔다. 이 보고서에서 국내 흰색 차량 점유율은 34%로 세계 평균인 29%보다 높았다. 지난해보다도 2%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세계적으로 흰색이 인기지만 한국에선 그 쏠림이 더 강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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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프 랭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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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동안 현대자동차의 대표 중형차 모델인 ‘엘에프 쏘나타’의 가장 잘 팔린 색상도 흰색(35.8%)이었다. 2013년 한해 동안 준중형차인 ‘베엠베(BMW) 3시리즈’를 선택한 이들 중 절반이 넘는 59% 역시 흰색을 선택했다. 2003년만 해도 75%가 회색을 선택했다. 중형차인 ‘5시리즈’를 구입한 이들도 흰색(36%)을 가장 많이 골랐다.
구상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교수는 “흰색은 차체를 더 커 보이게 하며 유행을 거의 타지 않는 기본적인 색”이라고 설명한다. 흰색은 차체의 입체감보다는 실루엣을 강조해 어떤 배경에서든 자동차를 명확히 구분해준다. 한마디로 ‘차체의 존재감’을 살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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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트 칭퀘첸토 컬러 리미티드 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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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송희 현대디자인센터 컬러팀 책임연구원은 “흰색은 유려한 몸체 스타일을 강조하는 데 효과적인 컬러”라며 “친환경의 깨끗한 이미지와 스마트폰 등 아이티(IT) 기기의 화이트 컬러 트렌드에도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그는 “포니부터 엑센트까지, 그리고 쏘나타도 1~5세대까지는 국내 자동차 시장에 현재보다 오히려 다양한 색깔이 많았는데 1990년대 후반부터 무채색 선호가 높아졌다”고 했다.
‘회장님 차는 검정 차’ 식의 보수적인 선택도 여전하다. 엑솔타의 2014년 보고서에서 국내 자동차 인기 색상의 공동 2위는 은색·회색·검은색(15%)이 차지했다. 지난해에 비해 1~2%포인트 정도 낮아진 점유율이지만 무채색 일변도의 ‘보수적인 선택’은 여전하다. 흰색이 강세였던 베엠베도 대형차인 ‘7시리즈’로 올라서면 검정(46%)이 압도적인 1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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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뉴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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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는 색깔이 예쁜 차를 좋아하다가도 막상 내 차를 살 때는 나중에 중고차 시장에 내다 팔 걱정까지 하며 무채색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다. 자동차에 새로운 색을 추가하면 생산 설비에 도장 탱크 하나를 더 만들어야 하는데 해당 색상의 자동차가 잘 팔리지 않으면 탱크에 가득 찬 페인트를 처치하기 곤란하다. 그리하여 ‘안전한’ 4~5개 색상으로 한정해 차를 팔다 보면 ‘국산차는 색상이 다양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엘에프 쏘나타·베엠베3 등
흰색 인기 압도적인 가운데
‘SM3 네오’ 빨간색 매출
흰색·검은색 앞서
색채 강자 베엠베 미니
오렌지색까지 선보여
이런 상황에서 ‘펄’(진주색 같은 반짝임)은 무채색과 총천연색 사이 ‘제3의 길’로 인기를 끌고 있다. 순수한 검정, 흰색, 빨강 등의 도료에 산화알루미늄 분말, 티타늄 분말 등 금속 성분을 섞으면 각도에 따라 다른 빛을 내는 ‘펄’ 느낌이 완성된다. 남미와 유럽 등에서는 대부분이 ‘순수한 흰색’을 선택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흰색 구매자의 32.4%가 ‘펄 화이트’를 선택했다. 흰색이 가장 많이 팔린 ‘엘에프 쏘나타’도 펄을 넣은 ‘아이스 화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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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M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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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색상에 펄이 들어가면 입체감이 살아난다. 빛의 각도에 따라 색이 다르게 느껴지니 더 우아한 느낌도 난다. 어떤 재료를 얼마나 섞는지에 따라 같은 도료로도 다른 느낌을 낼 수 있다. 펄과 만나 과감한 색상들도 빛을 보고 있다. 국내에서 무채색 다음으로 인기있는 색이 바로 빨간색(6%)과 파란색(6%)이다. 현대자동차가 ‘아이(i)40’를 내놓으며 ‘블루 스피릿’을, 르노삼성이 SM3·QM5에 ‘크림슨 레드’ 색상을 내세운 것이 대표적인 예다.
엔진에까지 빨간색을 적용한 페라리의 영향으로 ‘스포츠카의 색’으로 인식해오던 빨간색의 경우 강렬하긴 해도 색 자체는 그리 밝은 편이 아니다. 때문에 빨간색 차는 검은색 장식과 조화를 잘 이루고 흰색 차처럼 유리창의 형태나 헤드램프 등을 강조하는 디자인이 더 잘 어울린다.(<컬러마케팅>, 지구문화사)
올해 4월 ‘크림슨 레드’로 빨간 차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SM3 네오(NEO)’의 경우 올 한해 동안 흰색(7.14%), 검은색(7.88%)보다 빨간색(8.32%)이 더 많은 선택을 받았다. 르노삼성은 “레드 색상이 추가되면서 SM3와 QM5가 다시 시장에서 주목을 받아 지난 11월까지 작년 동기 대비 판매가 11% 늘었다”고 밝혔다. 최근 출시한 ‘QM5 Neo R4U 에디션’과 ‘SM3 Neo R4U 에디션’은 가죽시트와 내부 손잡이 등 인테리어에도 붉은색을 가미해 감각있는 ‘패션카’를 추구했다.
기아자동차 ‘올 뉴 카니발’의 ‘파우더 블루’와 ‘올 뉴 쏘렌토’의 ‘임페리얼 브론즈’ 색상은 지난달 한국색채학회가 선정하는 ‘2014 한국색채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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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현대자동차 ‘LF 2014 쏘나타’, ‘2015 쏘울’, ‘2014 i40’, 기아자동차 ‘올 뉴 쏘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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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엠베 미니’(BMW MINI)도 올해 ‘뉴 미니’를 출시하며 대표 색상으로 ‘볼캐닉 오렌지’를 내놓았다. 더 커진 차체, 풀 엘이디(LED) 헤드라이트 등 강렬한 이미지의 뉴 미니는 ‘볼캐닉 오렌지, 선더 그레이, 블레이징 레드’ 등 10가지 색상으로 디자인을 완성했다.
역동적인 레저용 차량인 지프 랭글러도 ‘플레임 레드, 하이드로 블루 펄, 코퍼헤드 펄’ 등 원색에 펄을 더한 색상으로 눈길을 끈다. 지난달 출시된 2015년형 피아트 칭퀘첸토 컬러 리미티드 에디션은 라이트그린, 라이트블루, 에스프레소 색 등 낯선 색상을 자동차에 적용했다.
구상 교수는 “차의 디자인을 완성하는 것은 바로 차체의 색”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동차를 살 때 브랜드, 모델까지 다 정해놓고도 머리를 쥐어뜯곤 한다. ‘차량의 스타일에 어울리는 다양한 색상의 개발’이 내년에도 이어진다니 고민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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