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2.17 17:12
수정 : 2014.12.17 20:30
생선·대게 등 직접 골라 양념집으로, 송년회·신년회 모임장소로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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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노량진수산시장을 찾은 대학생들. 회를 떠 들고 양념집으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수·백희준·조재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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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을 넘긴 서울 노량진수산시장은 여전히 왁자지껄한 젊음이 넘친다. 서울 수산물 거래량의 46.9%(2013년 기준)를 차지하는 시장은 요리초보자나 전문요리사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자주 찾는 명소가 된 지 오래다. 요즘은 중국 관광객들도 이들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을 쏙 빨아들이는 매력은 뭘까? 일본 도쿄의 대형 수산물시장인 쓰키지시장의 줄서서 먹는 스시집처럼 사람들이 몰리는 식당들이 많다. 하지만 일반 식당들과는 형태가 조금 다르다. 지하와 2층, 출구 밖에 몰려 있는 이 식당들은 대략 두가지 형태다. ‘회센터’와 ‘양념집’으로 나뉘는데 회센터는 그야말로 일반 일식당으로 보면 된다. 몇년 전부터는 양념집이 인기를 끌자 겸업하는 곳이 많다. 시장의 재료들로 조리한다. 양념집들은 대략 자릿세로 3000원 정도를 받고 손님이 직접 골라온 생선 등을 먹도록 한다. 탕거리나 대게, 꽃게 등을 가져오면 조리비를 받는다. 눈대중으로 쉽게 이 두곳을 구별하는 법은 주방에 전문조리사가 있는가다. 회센터 대부분은 조리사 복장을 한 일식주방장이 있다. 시장 안에는 8곳의 회센터, 11곳의 양념집이 있고 노량진 학원가로 이어지는 출구 밖에는 3곳의 양념집이 있다. 송년회나 신년회 장소로 이만한 곳도 없다. 가격이 일반 일식당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신선한 회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지난 12일과 14일 저녁 무렵 이곳을 찾았다.
풍경 1 어스름한 어둠이 비릿한 시장에 스며든다. 지난 12일 오후 5시.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준비하는 직장인들이 속속 모여든다. ‘오복수산’ 앞. 명함에는 ‘노량진수산시장 최다 방송출연’이라고 적혀 있다. 시장 출구에서 한참 떨어진 뒤편에 있다. 주인 임복성(60)씨는 손이 빠르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가 연신 울린다. 단골들이 양념집에 먼저 자리 잡고 주문 의뢰를 하는 거다. 3만원, 5만원, 7만원짜리 모둠회가 배달 간다. “이 뒤쪽이 조금 더 싸죠. 여기는 앞쪽보다 자리가 안 좋잖아요. 여기까지 손님들이 잘 안 오니깐. 가격을 조금 낮추는 편이죠.” 그는 시장에서 ‘임박사’라 불린다. 옆집 ‘전남수산’의 ‘양박사’가 참견을 한다. “내가 선배야 선배!” 그의 나이 69살. 양박사의 전남수산에서는 킹크랩, 대게 등을 판다. 오복수산의 앞쪽 줄의 ‘전라도 장성’에는 싱그러운 20대들이 줄서 있다. 푸짐한 연어, 광어 등의 회 한 접시와 초밥이 단돈 9900원이란다. 그런데 요상하다. 줄선 20대들이 돈을 안 낸다. ‘먹튀’(먹고 튀기)할 작정인가! 구입 고객들은 이미 한 소셜코머스 웹사이트를 통해 지급한 상태. 주인 양정미(53)씨는 이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말한다. 양씨는 “그냥 오는 손님은 1만5000원 정도 내야지”라고 말한다. 가게 옆에서 동업자 박철승(49)씨가 하얀 김이 오른 밥을 퍼 담고 있다. ‘청양수산’, ‘해남땅끝마을’ 등은 웨스틴조선호텔 직원들이 찾는 가게들. 세련된 호텔리어들도 회식 장소로 이곳을 애용한다.
불혹 넘긴 노량진수산시장
도소매 거래 북적
알뜰 회식장소로 인기
20대도 즐겨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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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수산시장의 오복수산에서 뜬 회를 시장의 양념집인 '사랑방'에서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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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과 약속 시간은 저녁 7시30분. 2시간 전에 예약에 나서본다. 미식가로 알려진 화가 사석원 선생의 단골집인 ‘중앙식당’. “자리 없습니다. 없어요.” 주인의 매몰찬 소리가 들린다. 매운탕 끓이는 솜씨가 좋다고 알려진 ‘미자식당’으로 발길을 옮긴다. “자리 없습니다.” 뇌에 경고음이 울린다. 회센터인 ‘진남회집’도 마찬가지다. ‘설마!’ 시장 밖 식당도 기대를 저버린다면 ‘대략 난감’이다. 시장 밖 ‘충남식당’에서 우르르 사람들이 나온다. “옳다구나!” 자리가 있다. 종업원은 “예약 손님 오기 전에 잠깐 줬던 자리다”라고 말한다. 충남식당은 문 앞에서 커다란 새우튀김을 판다. 새우튀김을 사들고 다른 식당을 가는 이들도 많다.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이 찔끔 난다. 새우튀김을 사 매서운 바람을 반찬 삼아 어기적 씹는다. 고소하다. ‘이러다가 회도 못 사겠다’ 싶은 마음에 오복수산을 향한다. 5~6분 만에 커다란 회 접시를 받아든다. 골목마다 모둠회를 들고 다니는 유랑민들이 서로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는, 동병상련의 눈빛을 교환한다. 하지만 곧 연대의식은 깨지고 경쟁적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 63에프앤비(F&B) 사업부 직원들이 찾는 식당은 ‘청해진’과 ‘유달식당’이다. 회센터인 청해진은 시장통에서 제법 넓은 편이다. 최종 낙점된 식당은 충남식당 옆 후미진 골목에 있는 ‘사랑방’. 겨우 식탁 한 개가 남았다. 이유가 있었다. 몇 분 단위로 ‘덜커덩덜커덩’ 소리가 머리 위로 울린다. 지하철 선로가 바로 지척이다. 그래도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노량진 식당가는 예약이 필수!
풍경2 지난 14일 오후 6시. 선남선녀 3명이 노량진수산시장을 찾았다. 이들은 대학교 4학년 동갑내기 친구들인 강수, 백희준, 조재완씨다. 세 친구가 쪼르륵 달려간 곳은 시장 안쪽에 자리잡은 ‘여수여천’, 주인 최덕안(57)씨는 40여년 경력의 수산인이다. 조재완씨가 “저희 주문한 회 주세요”라고 하자 최씨가 “잠깐 잠깐만요”라고 하고 천에 둘둘 싸둔, 숙성된 생선들을 꺼내 쓱쓱 자르기 시작한다. 1분, 2분, 3분, 4분…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가게 앞에는 또 다른 젊은이들 무리가 늘어선다. 조씨와 친구들은 경남 진주 신진초등학교 동창생들로 송년회차 시장을 찾았다. 장소는 조씨가 정했다. 그는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상경해 줄곧 시장을 종횡무진 다닌 단골이다. “서울 구경하다가 워낙 (시장이) 유명해서 갔는데 좋았다.” 1주일에 3~4번을 찾았을 정도다. 전문가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인데 회를 미리 주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호객행위에 넘어가 주로 입구의 첫줄에서만 사 먹었다. 50m 이상을 벗어나질 못했다.” 친절하게 갈 식당까지 소개해주는 여수여천이 꽤나 마음에 든다. 이들은 주인이 소개해준 ‘수산회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날 이들이 마신 술은 소주도, 맥주도 아니다. 폭탄주는 더더구나 아니다. 조씨가 마트에서 구입한 1만원대의 화이트와인이다. 와인 코키지(와인잔 사용비)는 3000원. 코키지를 5만원 정도까지 받는 레스토랑이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와인 애호가들 입장에서는 만세 삼창할 만한 가격이다. 5만원의 모둠회, 자릿세, 매운탕 조리비 등까지 합쳐 이날 이들이 쓴 비용은 총 10만원. 자고로 송년회는 1차만 하면 섭섭하다. 저녁 8시께 시장을 나온 이들은 인근의 카페로 옮겨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시장이 좋은 이유는 1인당 3만원 예산 잡았는데 딱 맞았고, 인근에 카페도 많아 회 먹고 수다 떨러 가기 좋다. 9시면 끝난다. 시간을 남겨서 좋다.” 20대가 노량진수산시장을 활용하는 신풍속도다. 그는 지난 16일에도 같은 코스로 다른 친구들과 송년회를 했다. 와인을 들고.
노량진수산시장을 방문하지 않고도 시장의 신선한 회로 사무실에서 송년회를 할 방법은 없을까? ‘영광수산’ 진열대에는 한참 철 맞은 방어 몇 마리가 몸통 일부가 잘린 채 있다. 주인 김현순(60)씨는 “딱 이 부위가 좋아요. 우리는 모둠(회)보다 한 가지(생선)만 해요”라고 한다. 전국 퀵배달이 가능하다. 5만원까지는 손님이, 10만원부터는 주인이 퀵비를 낸다. “사무실 송년회, 신년회 많이 보냈지. 대전까지 보낸 적도 있어요.” 남편 황인석(63)씨가 말한다. 지방은 서울의 터미널까지 퀵으로 보낸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노량진수산시장 소매상과 음식점
소매상
오복수산: (02)816-5639/010-3229-9451
전남수산: (02)821-5200
전라도 장성: (02)812-5766/010-6483-5175
청양수산: (02)812-6887
해남땅끝마을: 010-5334-3317
여수여천: (02)821-1221/010-9140-0730
영광수산: (02)812-5300/010-3767-1416
양념집 및 회센터
중앙식당: (02)812-8856
미자식당: (02)815-0324
충남식당: (02)813-9780
청해진: (02)815-4664
유달식당: (02)813-5909
사랑방: (02)822-0808
수산회관: (02)815-7979
진남회집: (02)815-2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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