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2.17 20:36
수정 : 2014.12.1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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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여성의 문제를 다룬 일본 다큐멘터리 <일본 여성의 빈곤화>(2014)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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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아리카와 마유미의 요즘 여자
한국판으로도 만들어졌던 일본 드라마 <파견의 법칙>(한국 드라마 <직장의 신>)은 비정규직 여성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주인공이 모든 일에 만능이며 당당하기까지 하다는 점만 비현실적이었지, 언제 정규직이 될지 몰라 불안에 떨고 있는 극중 비정규직 여성들의 모습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연애불안증후군에 빠진 세 여성들이 한집에 사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내가 연애할 수 없는 이유>의 주인공은, 졸업 뒤 원하던 회사의 시험에서 떨어진다. 결국 가족들에게는 대기업에 취직했다고 말하고선 실제로 캬바쿠라에서 호스티스로 일한다. 이것도 일본 젊은 여성들에겐 지극히 현실적인 드라마다.
수년 전 “근로세대(20~64살)의 독신 여성 3명 중 1명이 빈곤”이라는 쇼킹한 헤드라인이 일본 언론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다. 여기서 ‘빈곤’의 기준은 후생노동성이 ‘빈곤선’이라고 정의한 연 수입 114만엔(한화 1074만원) 미만이다. 일본에서 독신 가구의 평균 집세, 교통비 등을 합치면 월 약 10만엔 정도이니, 이 정도 수입이면 옷을 사거나 외식할 여유도 없다. 행여 병이 나거나 직장이라도 관두면 바로 아웃이다.
문제는 남성보다 여성의 빈곤이 많으며, 심지어 격차가 커지는 데 있다. 여성의 고학력화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남성보다 일자리를 얻기 어렵고, 불안정한 고용방식(파견사원, 임시직원, 아르바이트 등)으로 일하는 비율이 높기(여성이 남성의 2배 이상) 때문이다. 미혼율 상승도 커다란 요인이다.
1999년 파견법이 개정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정사원을 비정규 고용으로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기업은 인건비를 싸게 유지하기 위해 비정규 고용 비율을 높였고, 대부분 3년 만에 사람을 바꿨다. 3년 이상 고용하면, 정사원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을 일본에선 ‘즉전력 인력’이라 부른다.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이 되는 이들이다.
그러니 근무 조건이 좋은 구인 공고가 있으면, 50 : 1 이상의 경쟁률을 훌쩍 뛰어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파트타임은 본래 주부나 학생, 고령자 등 시간적 제약이 있는 노동자를 위해 마련된 것이었는데, 실제로 그 일에 몰려드는 사람들은 한창 일할 때인 젊은 여성들이다. 그러니 30, 40대 여성들은 20대 여성들에게 밀려난다. 게다가 여성의 경우, 병이나 실업, 이직의 실패, 이혼 등으로 한번 넘어지면 빈곤이라는 거미줄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은 건 사실이다.
일본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의 아베 아야 부장은 “여성의 빈곤율은 연령과 함께 높아진다. 결혼을 전제로 한 사회보장제도는 효과가 없다. 여성이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제도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빈곤 여성’과 함께 주거 공간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셰어하우스’도 급격히 늘었다. 고백하자면, 나도 10년 전까지 그야말로 ‘빈곤 여성’이었다. 욕조도 없는 집에서 임시방편인 박봉의 아르바이트를 항상 3개씩 하고 있었다. 일하면서도 꾸준히 글을 썼고, 그 덕분에 책을 쓰는 커다란 기회를 얻으면서 빈곤 여성에서 졸업했고, 그때 음식과 옷을 받는 등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도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빈곤 여성의 졸업자로 말해보자면, 빈곤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 첫째, 저임금인 채로 방치하지 않을 것. 둘째, 경제를 재정비하기 위해 자격 취득과 스킬 등 ‘발판’이 될 것을 쌓아둘 것. 마지막으로 겸허하게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끝>
아리카와 마유미 작가·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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