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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24 18:53 수정 : 2014.12.25 12:38

[매거진 esc] 욕의 전략

<한겨레>자료사진
“무차별 융단폭격” 구봉숙 시대

2000년대 초 김구라, 황봉알, 노숙자라는 이름으로 함께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진행했던 이들 3인방을 구봉숙이라 부른다. 2002년 ‘한국을 조진 100인의 개새끼들’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명성을 얻지는 못하다가 같은 해 김구라·황봉알이 딴지일보에서 <시사 대담>이라는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면서 유명해지자 새삼 주목받았다. 이 프로그램은 주로 김구라·황봉알이 진행하고 노숙자는 가끔 게스트로 출연했다.

총 176회 방송된 김구라·황봉알의 <시사 대담>방송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욕의 폭격이다. 두 진행자는 방송 처음부터 끝까지 욕을 한번도 멈추지 않으며 가끔은 마음을 합쳐 욕랩을 선보이기도 했다. 주로 성적 비하어를 사용해 막말을 퍼붓는 둘의 언어는 지금 극우 사이트 일베와 닮았고 정치적 주제를 논할 때는 지금의 진보 커뮤니티 게시판과 비슷했지만 뚜렷한 지향이 있기보다는 그때그때 대세를 좇는 스타일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즐겨 썼던 말 “나 윤종대야”는 그 뒤 영화 <타짜>에서 “나 이대 나온 여자야”로 응용되었다고 한다.


사진 누리집 화면 갈무리
“쫄지 말고 욕해봐” 나꼼수 시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정봉주 전 국회의원, 김용민 시사평론가, 주진우 <시사인>기자 등이 진행자로 2011년 4월28일 방송을 시작한 <나는 꼼수다>(나꼼수)는 본격적인 국민 욕설 방송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실제 김용민 시사평론가는 국민욕쟁이를 자처했고 방송은 “쫄지 말고 욕하라”고 격려한다. 4명의 남자들은 자기 방식대로 차지게 욕을 구사하는데 특히 정봉주 전 의원이 한 언론사 기자의 “개기름 낀 목소리”를 욕하는 욕드립이 유명하다.

“씨바”나 “×까”가 주를 이루는 그들의 욕 자체가 창의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가카’(이명박 전 대통령)나 정치인에 대한 조롱과 결합했을 때 주는 효과는 컸다. “나꼼수를 계기로 트위터에서 본격 욕설전이 벌어지곤 했던 것도 그들의 욕 해방 전략이 먹힌 결과로 분석된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는 유권자를 겨냥해 ‘나꼼수 욕 제거 버전’이 나오기도 했지만 본래 욕방송만큼 많이 회자되지는 못했다. 팟캐스트 등에서는 아직까지도 그들을 본떠 욕테라피스트, 욕설방송 등이 나오고 있다.


사진 SBS 제공
“욕인듯 욕 아닌듯” 썸욕 시대

누구나 욕을 하지만 강호에 고수가 없다. 욕의 춘추전국시대에 책 <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를 쓴 송상호 목사는 지금 시대 욕의 아이콘으로 에스비에스(SBS) 개그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하 <웃찾사>)의 ‘엘티이(LTE) 뉴스’ 코너를 추천했다. “욕이란 게 창의성도 있고 풍자도 담겨야 하는데 다들 대놓고 욕하지만 해학과 풍자가 없다. 차라리 이럴 땐 욕인듯 욕 아닌듯 욕 같은 욕을 하는 사람이 고수”라는 게 송 목사의 추천의 변이다. 물론 이 프로그램에는 쌍시옷자는 나오지 않는다. 짧은 뉴스를 전하면서 조금만 위험하다 싶으면 “민감하다, 민감해”라며 입을 닫는 식이다. 쌍욕은 시청자의 몫일 뿐.

욕공해 유발자, 우리 시대 또 하나의 욕쟁이들은 악플러들이다. 그러나 재치와 풍자를 활용한 악플러들은 결코 욕먹지 않는다. 조선시대 욕설 대마왕 김삿갓은 이런 시를 남겼다. “서당내조지(書堂乃早知)요, 방중개존물(房中皆尊物)이라. 학생제미십(學生諸未十)이요, 선생내불알(先生來不謁)이라.’(서당을 내 일찍이 알고 찾아왔는데, 방 안에는 모두 귀한 물건들뿐이로다. 학생은 모두 열명이 안 되는데, 선생은 나와 보지도 않네) (김병연의 ‘욕설모서당’(辱說某書堂)) 요즘 댓글 중에도 ‘善漁夫非取’(선어부비취) ‘施罰勞馬’(시벌로마)처럼 욕시들이 눈에 띈다. 욕의 역사는 돌고 돈다.

남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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