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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21 20:37 수정 : 2015.01.22 13:24

전북 임실 오봉산 자락 국사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저물녘의 옥정호.

[매거진 esc] 여행
고려·조선 개국설화 드리운 임실 성수산 상이암과 옥정호 드라이브 여행

성수산 상이암 찾아가는 길. 성수리 경로당 문을 여니 어르신들 화투놀이가 한창이다. 성수산 상이암을 묻자 할머니들이 대뜸 “기도허러 왔나벼” 하신다. 광을 팔고 잠시 물러난 할아버지 한 분이 말했다. “거기가 긍게 이성계 기도터라. 기도허고 왕이 된 곳이여.” 80대 할머니도 거드신다. “아, 이성계씨가 거시기서 넘어왔디야, 아침재에서, 기도하러.”

성수산(876m) 들머리 마을이 성수리(수철리)다. 이름부터가 성스러운 성수산(聖壽山)은 고려 태조와 조선 태조 두 임금의 개국 설화가 전해와 ‘생왕처’(生王處)로 불리는 곳이다. 팔공산(1151m·장수군) 서쪽 자락에 솟은 임실의 주산(主山)이다. “산의 기운이 좋응게, 기도허러들 마이 옵디다. 생암(상이암)에. 작년엔 마을길에 아스팔트도 깔렸지.”(황재완 전 이장·75)

임실 성수리 경로당 어르신들의 점심식사.

고려 태조 조선 태조 개국설화 드리운 ‘상이암’

상이암(옛이름 도선암)은 신라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암자다. 지난해 드라마 <정도전> 방영 뒤, 외지고 한적하던 상이암에 주말이면 하루 수백명씩 몰려들었다. 승진이나 시험을 앞둔 이들과 그 부모들이 대부분인데, 정치인과 군장성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한 주민은 “작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지망생들이 많이 찾았다”고 귀띔했다.

도선은 이곳을 “왕이 나기에 손색없는 지세로, 여덟명의 성인이 차차 출현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왕건이 도선국사의 권유로 이곳에서 기도한 뒤 궁예를 물리치고 고려를 개국했고, 이성계도 무학대사의 권고로 기도 끝에 계시를 받아 조선을 세웠다고 전해온다.

상이암으로 가기 위해 경로당을 나서려는데, 40~50대 ‘젊은이’ 몇명이 “아이고 어르신들, 안녕들 허시죠” 하며 들어선다. “다름 아니고요. 거시기 똥공장 반대 서명 좀 허시게요.” 성수면 도로 곳곳에서 펄럭이던 ‘자자손손 터전 위에 똥창고가 웬말이냐’ 등 분뇨처리장 반대 펼침막이 떠올랐다. “나가 글씨 쓸 중은 몰러도 이름은 쓰제라” 하시며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서명을 하신다. 한 50대 주민은 “어딘가엔 지어야 하겠지만, 주민과 협의도 공청회도 없이 혐오시설을 일방적으로 짓겠다니 다 반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스런 암자’ 상이암에 가려면, 성수산휴양림에 차를 대고 임도를 걸어올라야 한다. 상이암까지 약 2㎞의 산길은 빙판길로 매우 미끄럽다. 아이젠을 착용하는 게 좋다.

성수산 상이암의 향로봉. 왼쪽 비각 안에 조선 태조의 친필이라 전해오는 ‘삼청동’ 빗돌이 있다.

눈 쓰고 선 옛 부도들 맑은 기운 더해

눈 녹은 물 흐르는 골짜기 따라 30분쯤 오르면 편백나무 세 그루가 치솟은 아담한 절간에 이른다. 스님(동효 스님)은 출타 중이고, 아무도 없는 암자는 싸락눈에 감싸여 적막하다. 왕건과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작은 바위산(향로봉)엔 관찰사·현감·참봉·진사 이름이 새겨져 어지럽다.

상이암의 볼거리는 서너 가지다. 향로봉 앞 작은 비각 안에 태조 이성계의 친필이라 전해오는 ‘삼청동’ 빗돌이 세워져 있다. 이성계는 1390년 남원 황산전투에서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적을 소탕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 들러 기도를 올린 뒤 ‘물과 산과 대지의 기운이 맑은 곳’이라는 뜻의 ‘삼청동’ 글씨를 남겼다고 한다. 앞서 왕건이 기도하고 계시를 받아 기뻐하며 새겼다는 ‘환희담’ 빗돌은 대웅전(무량수전)에서 산신각으로 오르는 길 옆에 있다. 10여년 전 홍수 때 향로봉 밑 계곡에서 찾아냈다는 빗돌이다.

이 암자를 한결 고즈넉하게 해주는 게 세 기의 아름다운 부도다. 눈을 쓰고 서서 맑은 기운을 자아내는 듯하다. 왼쪽 두 기는 통일신라 때의 고승 혜월당과 두곡당의 것이고, 오른쪽 부도는 이름이 없다. 상이암이 ‘맑은 기운이 모이는 곳’으로 알려진 건 성수산 산세 때문이다.

“산 위에서 아홉 골짜기가 뻗어내려오다 상이암에서 만나는 ‘구룡쟁주의 지세’(아홉 마리 용이 여의주를 향해 앞다퉈 달리는 지세)죠. 향로봉이 바로 여의주를 뜻합니다.”(해설사 강씨) 상이암이 ‘기가 센 곳’으로 불리는 건, 향로봉 바위가 아홉 골짜기에서 모여든 기를 막아 고이게 하는 구실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강씨는 “이곳 기운이 얼마나 맑고 센지 옛날부터 무속인들은 발을 들이지 못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며 “들어오더라도 시름시름 앓다 떠난다”고 말했다. 산신각에 모신 산신도의 주인공도 산신령이 아닌, 왕의 옷차림을 한 태조 이성계의 모습이다. 대웅전 앞의 120년 됐다는 편백은 줄기가 아홉개여서 눈길을 끄는데, 아홉그루의 묘목을 함께 모아 심은 것으로 여겨진다. 요사채 뒤 산밑엔 450년 됐다는 ‘청실 배나무’도 있다.

왕건·이성계가 기도했던 상이암
아홉 골짜기 모여드는 형세로
맑은 기운 서린 고즈넉한 암자
드라마 <정도전> 방영 뒤
정치인·군장성 발길도 부쩍

임실 호암리 두류마을에 있는 익살스런 표정의 호랑이 석상. 이마의 주름처럼 보이는 것은 호랑이 무늬를 표현한 것이다.
물안개 이름난 옥정호 설경도 감상할만

임실에서 가장 이름난 경관은 물안개가 아름다운 옥정호(임실과 정읍에 걸쳐 있다)다. 봄~가을이면 이른아침의 물안개를 보기 위해, 한겨울엔 설경을 만나기 위해 사진가들이 모여든다. 장사진을 치는 곳이 오봉산 자락 국사봉 전망대다. 옥정호 물길이 입석리에서 용운리 쪽으로 휘감아 도는 지점에 뜬 ‘외앗날’(붕어섬) 풍경과 이곳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매우 아름답기 때문이다.

국사봉은 나무계단을 따라 20분이면 오를 수 있다. 국사봉 오르는 길에 설치된 세곳의 전망대에서, 시원하게 펼쳐지는 외앗날과 주변 물길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세번째 전망대가 조망이 좋다. 좀더 시원한 경관을 만날 수 있는 오봉산(513m) 정상(제5봉)까지는 제4봉 거치며 한시간쯤 산길을 타야 한다. 겨울 옥정호는 설경이 아름답지만 연무가 끼는 날이 많다. 이날도 연무가 깔려 국사봉 전망대에선 깨끗한 경치를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순시선 한 척이 나타나더니, 저물녘 햇살 드리운 눈부신 수면에 매혹적인 물살 무늬를 펼쳐보이며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외앗날은 1965년 섬진강 다목적댐이 건설돼 옥정호(운암저수지·갈담저수지)가 만들어지며 섬이 돼버린 산 능선이다. 주민들은 ‘산 바깥 능선의 날등’이란 뜻으로 외앗날이라 부르지만, 등산객·사진가들이 금붕어를 닮았다며 붕어섬으로 부르기 시작해 함께 쓰인다. 외앗날엔 지금도 주민 2가구가 살고 있다. 이곳 국사봉은 여느 지역 국사봉과 달리, ‘스승 사’가 아닌 ‘선비 사’를 쓴다. 이 일대가 전주 최씨 집성촌인데, 진사를 12명이나 배출하면서 국사봉(國士峰)으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운암대교에서 내량삼거리에 이르는 옥정호 북쪽 749번 도로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한곳으로, 굽이쳐 흐르는 물길을 감상하며 드라이브를 즐길 만하다. 물길 따라 거닐 수 있는 13㎞ 길이의 탐방로도 만들어져 있다.

임실 용암리의 진구사지 석등. 통일신라 때 것으로 높이 5m가 넘는다.

마을 지키던 ‘웃는 호랑이’ 이젠 초병 신세

성수산 상이암에서 옥정호 오가는 길에 들러볼 만한 곳이 있다. 호암리 두류마을의 호랑이 석상(호암리석상)과 용암리의 진구사지 석등이다.

호랑이 석상은 두류마을 입구에서 호암리낚시터로 가다 오른쪽 농로를 따라 150m쯤 들어가면 군부대 철조망 옆에서 만날 수 있다. 250년 전 세워졌다는 석상이다. 둥글넓적한 얼굴에 눈은 부라리고 있지만, 입은 찢어지기라도 할 듯 환하게 웃고 있는 익살스런 표정의 호랑이다. 호암리엔 애초 지명 유래가 된 호랑이바위가 있었다고 한다. 마을 뒷산의 절 중이, 마을에 우환이 없고 평화로워 시주하는 이가 없자, 마을을 지키는 호랑이바위 때문이라고 여기고 주민들을 꾀어 바위를 깨버렸다고 한다. 이때부터 마을에 우환이 잇따르자 주민들이 다시 호랑이 석상을 만들어 세웠고, 마을은 평화를 되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30여년 전 이 일대에 군부대가 들어오면서 마을은 해체되다시피 했고,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지금 이 호랑이 석상은 철조망 앞에서 부대를 지키는 초병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용암리 진구사지 석등(보물)은 높이 5.18m로, 화엄사 석등(국보)에 이어 국내에서 둘째로 큰 통일신라시대 대형 석등이다. 정교한 연꽃무늬·구름무늬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무너져내린 모습의 대형 탑과 ‘용암리 사지 석조 비로자나불상’도 볼만하다.

임실/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임실 여행 정보

가는 길 수도권에서 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익산·포항고속도로(익산분기점 장수 방향)~전주·광양고속도로(완주분기점 남원 방향)~임실나들목. 서울~임실 약 3시간30분.

먹을 곳 섬진강 고장 임실엔 다슬기탕(다슬기수제비)을 내는 식당이 많다. 강진면사무소 앞 성원회관과 버스터미널 앞의 성심회관 등에 손님이 많다. 호박·부추를 썰어 넣은 맑은 다슬기탕이다. 강진시장 안의 국숫집 2곳도 많이 찾는다. 소면이 아닌 중면을 삶아 겉절이 반찬들과 함께 내는 할매국수집과 행운집이 나란히 붙어 있다. 사선대관광지 안의 초원장은 메기매운탕 등을 잘한다. 치즈테마파크 치즈캐슬 식당에선 치즈피자·치즈돈가스 등을 낸다.

묵을 곳 임실의 숙박시설은 열악한 편이다. 읍내의 임실힐링펜션은 평일 4만~6만원, 주말 7만~10만원. 임실역 앞, 슬치고개 등에 허름한 모텔이 있다. 30분 거리에 있는 전주의 숙박시설을 이용해도 된다.

여행 문의 임실군청 (063)640-2114, 임실 여행안내(문화관광해설 등) (063)640-2343.

여행공책

한국방문위원회는 20일~2월6일 누리집(www.vkc.or.kr)에서 온라인 서비스 이용자 만족도 조사를 실시한다. 참여자 60명을 추첨해 국민관광상품권·모바일상품권 등을 준다.


용인 파인리조트가 올 스키 시즌 폐장일까지 리프트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2월 시즌권’을 11만원에 판다. 리프트에 장비 대여를 포함한 2월 정기권(15만9000원)도 판다. 1차 판매기간 22일까지. 사용기간은 24일~폐장일. (031)329-9440.


김해 롯데워터파크는 20~27일(주말 제외) 오전 10~11시에 입장하는 롯데워터파크 페이스북 친구에게 입장권을 50% 할인해 준다. 페이스북 ‘얼리버드’ 페이지에서 ‘좋아요’를 누르고 공유한 뒤 매표 때 공유화면을 제시하면 된다. 1661-2000.


‘HK 여행작가 아카데미’가 제3기 수강생을 모집한다. 시인 신경림·정호승, 요리사 박찬일, 사진작가 신미식, 방송인 밥장 등이 강사로 나선다. 성적 우수자에겐 무료 해외여행 취재, 여행작가 등단 기회를 준다. 2월11일~5월6일(주 1회 2시간, 매주 수요일) 총 13회. 수강료 65만원(대학생 10% 할인). (02)566-5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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