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3.11 20:36
수정 : 2015.03.12 09:42
[매거진 esc] 요리
최고 뽑는 권위 버리고 취향대로 골라먹기로 한상차림
음식 프로 전성시대다. 아니, 먹방 전성시대다. 뭐라고 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티브이는 이제 가족보다 더 많은 끼니를 우리와 함께한다. 삼둥이가 오물거리며 식사를 하는 광경이든, 연예인 집 냉장고 털이든, 지역별 특색 요리로 서바이벌 쇼를 하든, 어쨌든 한상차림이 필요하다. 그 많은 먹는 프로그램들, 왜 자꾸 보게 될까?
<삼시세끼> 음식 자체보다
집밥이 주는 행복감에 초점
맛집 골라내는 <수요미식회>
각자의 입맛 따라 고르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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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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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냉장고 훔쳐보기 <냉장고를 부탁해>
연예인의 집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많은 것은, 엿보고 싶은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장고 속은 잘 보여주지 않는다. 티브이를 보는 주부들은 알고 있다. 아무리 저렇게 아빠, 엄마 노릇을 살갑게 하는 연예인들이라 해도 카메라가 꺼진 뒤에는 “아줌마~!”를 부르며 소파에 늘어질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진짜 살림을 하는 사람이라면 냉장고가 그 증명을 하리라는 것을. <냉장고를 부탁해>는 살림살이를 한눈에 알게 해주는 냉장고를 터는 예능이다. 소유진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식당 체인을 여럿 거느린 남편을 살뜰하게 내조하는 주부 9단으로 이미지 환골탈태에 성공했다. 거기에 더해 <냉장고를 부탁해>는 “냉장고에 있는 재료만으로 뚝딱!”이라는 요리프로그램에나 등장하는 상상을 실행에 옮겨 보여준다. 냉장고 안의 고만고만한 재료들이 그럴듯한 요리로 거듭나는 과정이라니. 자꾸 우리 집 냉장고를 열어보고 한숨짓게 만드는 마성의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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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어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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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끼리 먹고 살기 <삼시세끼-어촌편>
남자들끼리 고립되면 어떻게 먹고 살까? 나영석 피디는 ‘남자고립예능’ 전문가다. 1박2일도 그랬지만, <꽃보다> 시리즈도 여배우 편 <꽃보다 누나>가 가장 호응이 적지 않았던가? 여기에는 필연적인 이유가 숨어 있다. 대체로 여행 준비든 살림이든, 집에서는 여자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남자끼리’라는 설정은 평소 꼼짝도 하지 않고 투덜거리던 남자들이 직접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 될 때의 상황극을 가능케 한다는 뜻이다. 매일 아침 옷을 갈아입고 패션 센스를 자랑하는 대신 퉁퉁 부어오른 얼굴로 잠투정을 하고, 일 하나 시키면 말대꾸가 열마디다. <삼시세끼-농촌편>에서 이서진이 중요한 역할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것이다. 타고난 투덜이. 그러나 시키면 어떻게든 해낸다.
<삼시세끼-어촌편>은 작동 원리가 약간 다르다. 여기에는 ‘차줌마’ 차승원이 있다. 웬만한 주부보다 더 능숙하게 어떤 요리든 해내는 그는 심지어 ‘맨몸으로(?)’ 빵을 구워냄으로써 주부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등에 업었다. 여기에는 한동안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차승원의 가정사와 관련된 선입견도 제법 훌륭한 조미료가 된다. 딸과 통화하는 모습이라든가, 재료를 손질하는 날랜 손놀림을 보고 있자면,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적당히 하려고 예능에 출연하는 게 아닌가 싶은 선입견이 사라진다. 거기에 ‘맛있게 먹는 남편 그랑프리’ 같은 걸 준다면 1등상을 받아야 할 유해진이 집안 살림을 뚝딱 만들어내는 모습이 주는 평화로운 행복감. 모든 게 갖춰진 도심의 부엌에서는 맛보기 힘든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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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미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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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먹고 다닌 남자들의 수다 <수요미식회>
맛있는 집 좀 다녀봤다는 남자들끼리 수다를 떤다. 맛집을 찾아가서 입안 가득 음식을 넣고 “최고예요!” 하는 맛집 프로들과의 차별점이라면 어디까지나 말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만두 좋아해요? 탕수육은 부어 먹나요, 찍어 먹나요? 여느 모임에서나 종종 화제에 오를 법한 최고의 맛집과 나만의 맛집에 대한 대화를 듣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포털 검색창에 식당 이름을 검색해보게 된다(식당 이름은 프로그램에 전혀 나오지 않지만 한국의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는 실시간으로 실명이 뜨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맛칼럼니스트로 이름난 황교익이 출연하나, <수요미식회>는 전문적으로 맛의 이유를 분석하고 랭킹을 가르는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저, “내가 거기서 먹어봤는데…”면 충분하다.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다. 미식회 멤버들의 입맛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만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 최고로 꼽는 만두집이 있고, 만두는 여간해서는 먹지 않는 사람이 제법 맛있게 먹었다는 만두집도 있는 것이다.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대신 펼쳐 보이는 것이 장점. 우리 각자의 입맛은 모두 소중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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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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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의 고수들이 맛을 논할 때 <오늘 뭐 먹지?>
집밥의 고수나 유명한 셰프를 초청해 쉽게 만들 수 있는 가정식 레시피를 공유한다는 콘셉트지만, 무엇보다 말 잘하는 신동엽과 요리 좀 한다는 성시경의 콤비플레이가 빛나는 프로그램. 예컨대 허니버터칩이 인기있을 때 ‘3분 완성 허니 고구마칩’을 만드는데, 신동엽의 질문은 이렇다. “껍질 안 깎아도 되죠?” 그래 놓고는 혼자 놀라서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러고는 또 혼자 덧붙인다. “예! 맞습니다. 안 깎아도 됩니다.” 신동엽이 혼자 자문자답하는 동안 성시경은 옆에서 웃고 있다. 성시경이 요리과정을 리드하고 신동엽은 옆에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유머를 담당하는데, 그 광경 자체가 제법 삼삼하니 보는 맛이 있다. 프로그램이 회를 더해 갈수록 두 사람의 요리솜씨가 성장해가는 점도 은근히 재미를 더하는데, 집에서 음식 투정을 전문으로 하는 식구에게 강력히 권하고 싶은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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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정보통 황금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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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반찬 뭐 할까 <생생정보통 황금레시피>
아무리 맛있는 프로그램들이 넘쳐나도, ‘클래식’의 자리를 고수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생생정보통 황금레시피>다. 음식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라면 차고 넘치지만, 여타 프로그램들의 조리법을 시도했다가 한끗 모자라 아쉬워해본 사람들이 강추하는 레시피의 지존이 바로 <생생정보통 황금레시피>다. 다른 프로그램들이 쿨한 요리, 훈남 셰프를 들이밀 때, 바지락칼국수, 잔멸치볶음, 뚝배기불고기 등 당장 지금 한 끼 해 먹는 데 필요한 정보를 착착 정리해 알려주니 실용성은 최고. 살림 경력 5년 미만인 사람들 사이에서 단연 최고로 꼽히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참고로 차승원의 <삼시세끼> 제육볶음 레시피도 <황금레시피>에서 나온 것과 똑같다는 것! 명불허전이라는 건 이런 때 쓰는 말이다.
이다혜 <씨네21> 기자, 사진 각 방송 화면 갈무리
[잉여싸롱] 오늘 뭐먹지? 냉장고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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