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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텐 뮤지션 그래픽 티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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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스타일
가슴에 유명 뮤지션 아트워크 새긴 티셔츠 인기…유니클로 이어 국내 브랜드 탑텐도 브라바도와 협업 생산
검은 티셔츠 앞판이 실크스크린 아래를 지난다. ‘RUN DMC’(런 디엠시)라는 흰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진다. 런 디엠시는 1980~90년대 활동한 미국 힙합그룹으로, 록과 랩을 접목한 선구자로 일컬어진다. 티셔츠가 또다른 실크스크린 아래를 지나자 흰 글자 위로 푸른색이 덧입혀지면서 하얀 꽃무늬가 피어난다. 그렇게 두 개의 실크스크린을 더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록달록 꽃밭으로 물든 런 디엠시 로고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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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신성통상 현지법인 공장에서 탑텐 티셔츠를 만드는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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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동쪽으로 80㎞가량 떨어진 카라왕에 자리한 신성통상 현지법인 공장. 지난 2일 오후(현지시각) 이곳에선 외국 유명 음악인들의 아트워크가 새겨진 반팔 티셔츠들이 생산되고 있었다. 티셔츠마다 런 디엠시, 비틀스, 롤링스톤스, 퀸, 데이비드 보위, 펫숍보이스 등의 로고나 앨범 표지 그림이 다양하게 새겨지고 있었다. 귀로 듣는 음악은 그렇게 우리 몸을 감싸는 존재로 변신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음악을 입는 시대다. 신성통상의 토종 에스피에이(SPA) 브랜드 ‘탑텐’과 유니버설뮤직의 머천다이즈 브랜드 ‘브라바도’가 손잡고 만든 뮤지션 그래픽 티셔츠가 흐름을 주도하는 모양새다. 두 회사는 지난해 처음 아티스트 22팀의 디자인 티셔츠 100가지를 선보였다. 30만장을 찍어 다 팔아치웠다. 올해는 목표를 100만장으로 올려 잡고 아티스트 39팀의 200가지 디자인 티셔츠를 출시한다. 오는 17일 대대적인 출범 행사를 열고 전국 탑텐 80여개 매장과 온라인 스토어에서 판매에 들어간다.
일본 에스피에이 브랜드 ‘유니클로’의 티셔츠 ‘유티’(UT)도 뮤지션 티셔츠를 선보이고 있다. ‘뮤직 아이콘’ 라인이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너바나, 클래시, 비스티 보이스 등을 선보인 데 이어, 올해는 에어로스미스, 콜드플레이, 다프트펑크, 메탈리카, 레드핫칠리페퍼스, 우탱 클랜, 유투 등 7팀의 40여가지 디자인을 내놓았다. 레드핫칠리페퍼스와 다프트펑크 시리즈가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젊은층 취향 과시보다
패션으로 받아들여
롤링스톤스·런디엠시·비틀스 인기
티셔츠 입은 뒤 음악 입문도
뮤지션 티셔츠가 사랑받은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1980~90년대 헤비메탈이 세계 대중음악계를 주름잡던 시절 ‘록티’ 또는 ‘메탈티’라 불리는 티셔츠가 서울 이태원 등지에서 대거 유통됐다. 검은 티셔츠에 밴드 로고나 그림이 새겨진 형태였는데, 대부분 정식 허가를 받지 않고 불법으로 만든 것들이었다. 아티스트의 허가를 얻어 정식으로 제작된 티셔츠는 최소 3~4배 더 비쌌을 뿐만 아니라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당시 이런 티셔츠는 메탈 마니아들이 자신의 밴드 취향을 노골적으로 과시하는 통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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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바도 머천다이즈 의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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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이후 국내 음악시장의 판도가 바뀌었다. 해외 팝 시장이 죽고 아이돌 가요 시장이 대세가 된 것이다. 음악 관련 상품의 흐름도 바뀌었다. 록티나 메탈티 대신 아이돌 가수 관련 상품이 뜨기 시작했다. 보통 뮤지션 관련 상품을 ‘머천다이즈’ 또는 ‘엠디’(MD)라고 일컫는데, 아이돌 관련 상품은 ‘굿즈’로 통했다. ‘Goods’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용어로, 일본에서 일찍이 아이돌 관련 상품이 발달한 데서 유래를 찾는다. 아이돌 굿즈는 티셔츠에 국한되지 않는다. 야광봉, 비옷, 스티커, 엽서, 달력, 컵 등 다양하다. 굿즈 판매는 아이돌 연예기획사의 주요한 수입원이다.
그러다 최근 몇년 새 해외 팝 머천다이즈 판매가 다시 늘기 시작했다. 영국 머천다이즈 회사 브라바도는 유니버설뮤직에 합병된 이듬해인 2008년 국내 진출했다. 티셔츠, 후드티, 스냅백 모자, 휴대전화 케이스, 머그컵 등 100여가지 상품을 판매하는데, 해마다 100~300%씩 매출 성장세를 보여왔다. 브라바도코리아 관계자는 “팝 음악의 인기가 높아져서라기보다는 머천다이즈 디자인이 예뻐서 좋은 반응을 얻은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젊은층이 자신의 음악적 취향을 과시하거나 드러내기보다는 세련된 패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아이돌 티셔츠는 집에 고이 모셔놓는 존재이지만, 팝 뮤지션 티셔츠는 실제로 입고 다니는 옷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고 덧붙였다.
브라바도코리아는 아예 국내 의류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협업)을 하기에 이르렀다. 브라바도가 권리를 가진 뮤지션 아트워크를 제공하면, 탑텐이 티셔츠를 만들어 파는 방식이다. 그 때문에 티셔츠 가격을 9990원으로 낮출 수 있었다. 브라바도에서 직접 파는 반팔 티셔츠는 보통 3만원대다. 유니클로의 뮤직 아이콘 티셔츠도 1만9900원이다.
록티는 세계적인 패션 트렌드와 궤를 같이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유행한 스키니진은 록 패션에서 파생된 스타일이다. 이런 록 트렌드가 꾸준히 인기를 끌어오다 몇년 전부터 반대 움직임이 일었다. 트렌드를 주도하는 유명 디자이너들이 “이제 스키니진의 시대는 갔다”며 배기팬츠 등 펑퍼짐한 스타일을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생 로랑’의 수석 디자이너 에디 슬리만은 스키니진과 가죽 라이더 재킷으로 대변되는 록 트렌드를 지난해 컬렉션에서 대거 선보였다. 이런 전략이 매출 신장으로 이어지면서 록 트렌드는 다시 대세가 됐다. 외국 유명 연예인들도 스키니진에 록티를 즐겨 입는다. 탑텐의 신윤종 상무는 “세계 고급의류 시장의 트렌드는 다시 ‘록’이다. 거기서 힌트를 얻어 지난해 록티를 공격적으로 내세운 것이 결국 대중의류 시장에서 통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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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클로 유티 뮤직 아이콘 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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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티에서 가장 인기있는 뮤지션은 누구일까? 신 상무는 “지난해를 보면 롤링스톤스, 런 디엠시, 비틀스 순으로 선호도가 높았다. 음악적 지명도뿐 아니라 아티스트가 지닌 사회적 상징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디자인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밥 말리, 도어스, 데이비드 보위처럼 디자인과 이미지 자체가 섹시한 아티스트가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고 덧붙였다. 탑텐은 올해 록 뮤지션뿐 아니라 에미넴, 릴 웨인 등 힙합, 마이클 잭슨, 레이디 가가 등 팝, 빌리 홀리데이, 덱스터 고든 등 재즈까지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 티셔츠도 내놓는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티셔츠가 팝 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유니버설뮤직의 이인섭 이사는 “롤링스톤스를 잘 모르던 젊은층이 단지 디자인이 예뻐서 티셔츠를 사 입고는 롤링스톤스 음악을 검색해 들어보는 경우가 많다. 팝 음악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시대에 패션이 팝 음악의 저변을 끌어올리는 구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니버설뮤직은 아예 무료 스트리밍 라디오 애플리케이션 ‘비트’와 손잡고 전용 채널을 만들었다. 탑텐 티셔츠 태그에 새긴 정보무늬(QR코드)를 스마트폰에 입력하면 해당 채널로 접속해 80여곡을 무료로 들을 수 있다. 이 이사는 “100만명이 뮤지션 티셔츠를 입음으로써 널리 홍보되고 실제 대중의 팝 음악 감상으로 이어지는, 패션과 음악의 선순환 구조가 꿈만은 아닐 것”이라고 기대했다.
카라왕(인도네시아)/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각 회사 제공·카라왕/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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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텐 뮤지션 그래픽 티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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