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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5.13 19:39 수정 : 2015.05.14 15:56

수도국산 옆 근린공원에서 바라본 송림6동.

[매거진 esc] 여행
인천 동구 수도국산 일대 달동네와 시장 여행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전시중인 ‘가리봉 오거리’전에는 1970~80년대 구로구 가리봉동에 밀집해 있던 이른바 ‘벌집촌’이 재현되어 있다. 손바닥만한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골목과, 벽지 대신 신문지를 바른 허름한 방 등 한때 산업화의 흉터처럼 여겨졌던 도시 서민들의 거처가 이제는 우리가 지나온 시절의 표상으로 조명받고 있다.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에 재현된 달동네 주택가.
중구와 함께 인천의 오랜 원도심인 동구 수도국산 일대(송림동, 송현동)는 일제강점기부터 궁핍한 이들이 터를 잡기 시작한 달동네다. 개항장 주변에 살다가 일본인들에게 쫓겨난 이들이 움막을 지어 살면서 시작된 달동네의 역사는 한국전쟁 때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 산업화 시기에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지은 판잣집들로 이어졌고, 미로처럼 이어진 좁은 골목들의 지도를 만들어냈다.

부산 감천동 문화마을, 경남 통영 동피랑 마을 등 아예 여행 명소가 된 달동네들도 있다. 이에 비하면 수도국산 일대는 여전히 고즈넉한 골목길들로 가득하다. 알록달록한 벽화와 멋 부린 조형물 대신 벗겨진 흙벽과 슬레이트 지붕들, 소방도로를 내면서 잘려 나간 모양 그대로 벽을 세운 집들이 시간을 품은 채 서 있다. 주말마다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중구 차이나타운을 조금만 벗어나면 수도국산 달동네다. 수수한 골목길을 통해 유년의 기억 또는 아버지의 시간으로 들어가고 싶은 도시의 산책자를 위한 여행지다.

두사람이 지나기도 힘든
좁은 골목을 오르다 보면
길을 잃을 것만 같다
그런데 어느 한 군데
막다른 골목이 없다

막다른 골목 없는 미로 같은 산책길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배다리삼거리를 지나 송림오거리에 다다르면 대형 재래시장인 현대시장이 있다. 옷가게부터 야채가게, 생선가게, 떡집, 닭집 등이 모여 있는 이 시장은 1970년대부터 달동네 사람들의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던 시장이었다. 산동네에 세워져 비스듬하게 언덕을 이루고 있는 시장의 맨 위쪽, 송림6동 쪽의 통로로 나가면 좁은 골목의 산동네 주택가가 시작된다. 우선 눈에 띄는 게 바위 위에 올라앉은 집이다. 땅을 고르고 구획을 지을 시간도 경제적 여력도 없는 시절에 지어진 집의 모습이다. 여기부터 두 사람이 어깨를 부딪혀도 함께 지나가기 힘든 골목이 구불구불 이어지며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출입문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송현동 어귀에 붙어 있는 송현시장.
계단식으로 집들이 이어진 감천동이나 동피랑 마을과 다르게 수도국산 달동네의 골목은 미로와도 같다. 도둑이 이 동네로 들어오면 경찰도 잡기를 포기하고 돌아갔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오르다 보면 길을 잃은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런데 이 미로의 특징은 어느 한군데도 막다른 골목이 없다는 점이다. 돌아온 길을 되찾아가기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걷다 보면 큰길로 빠져나온다. 비좁은 골목길을 따라 곳곳에 손바닥만한 텃밭들이 있어 일렬종대로 줄서서 자라고 있는 배추나 상추들이 쇠락한 동네에 숨쉬고 있는 활기를 보여준다. 골목 막바지에서 만난 석온선(84) 할머니는 황해도 출신으로 전쟁 때 백일 지난 아들을 업고 피난 와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여기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맨 쑥대밭이었어. 일가친척 하나 없는 동네에 방 하나 부엌 하나 있는 판잣집 짓고 살면서 아들딸들 키웠지. 이 동네는 황해도 사람들이 많아서 같이 만두도 빚고 백김치, 동치미도 담가 먹으면서 살았는데 다들 동네 뜨고 세상 떠 이제 나 하나 남았어.”

황금고개로 변신한 똥고개의 추억

큰길로 빠져나와 언덕을 내려오면 다시 현대시장 쪽으로 당도한다. 현대시장을 건너면 이어지는 주택가는 안송림이라 부르는데 산 아래 평지라 길도 주택도 널찍널찍하다. 시장 위쪽이 1950~60년대의 풍경이라면 이쪽은 70~80년대에 가깝다.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표지판을 따라 다시 올라가면 박물관이 나온다. 송현동 쪽 달동네를 재개발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지으면서 기부채납으로 근린공원과 함께 만든 이곳은 전문 박물관으로는 드물게 휴일마다 1500명 가까이 찾아오는 곳이다. 실제로 이곳에 있었던 가게들과 골목 일부를 사실적으로 재현해 그 시절을 추억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미로 같은 골목길.
중학교 때 충남 당진에서 올라와 송현동 달동네에서 평생을 살아온 남기영(79) 할아버지는 박물관 해설사로 활동하며 방문객들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준다. “차나 달구지도 올라오지 못하는 골목이라 밑에서 딸랑딸랑 쓰레기차 소리가 나면 연탄재를 이고 냅다 뛰어 내려가곤 했어요. 변소차도 못 올라오니까 똥지게꾼이 다녔는데, 덜 펐네 더 펐네 집주인과 싸움도 허다하게 났지요. 그때는 똥지게꾼 부를 돈도 없는 이들이 많아서 밤이면 근처 산꼭대기 호박밭에다가 몰래 내다버리는 사람도 많았거든. 그래서 똥고개라는 별명도 붙었는데 지금은 거기가 다 공원으로 바뀌었지.” 똥고개 뒤편으로 있는 큰길인 인중로는 지금 황금고개라고 부른다.

흑백사진처럼 남은 화려했던 중앙·양키시장

박물관 언덕에서 동인천역 방향으로 내려오면 송현시장이 나온다. 송현시장 건너편에는 중앙시장과 양키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송현자유시장이 있다. 현대시장을 비롯해 수도국산 주변에 자리잡은 4개의 대형시장은, 과거에 이곳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며 활기 넘치는 동네였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특히 포목, 의류, 그릇 등으로 유명했던 중앙시장은 인천뿐 아니라 김포, 강화, 수원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오는 시장이었다. 80년대까지 줄을 서서 살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다가 재개발로 아파트 단지와 대형마트가 들어오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중앙시장 옆에 웅크리고 있는 양키시장은 전쟁 직후 근처 미군부대 피엑스에서 흘러나온 수입품들과 구제 물자를 파는 곳이었다. 양주나 커피, 코티분 따위가 귀한 물건 대접을 받을 때는 건물 안에 100여개의 가게가 하루 종일 오렌지색 등불을 밝혔지만 지금은 듬성듬성 불 켜진 가게들이 남아 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어두컴컴하면서도 추억 돋는 분위기를 구경하러 오는 여행자들만이 가게들을 기웃거린다. “이제는 그지깡깽이가 다 됐지. 이 바닥 좀 봐. 50년 넘게 한 가게라 그만두기도 뭐해서 나와 앉아 있는 거야.” 간판을 뗀 한 가게의 주인 할머니는 “요 옆집도 앞집도 얼마 전에 주인 양반이 세상 떠나면서 가게 문을 닫았다”고 시장의 근황을 전한다.

배다리 문화공간 스페이스빔. 지금은 드라마 <초인시 대>가 촬영되고 있어 임시로 ‘주봉인력’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다.
수도국산 근린공원에 위치한 송현배수지 제수변실 입 구. 본래 수도국산의 이름은 송림산이었지만 1908년 일 제가 서울과 인천 사이 상수도 건설을 위해 이곳에 배수 지를 지으면서 수도국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좁은 골목에서 상추, 배추들이 자라난다.
중앙시장 큰길 건너편에는 배다리 헌책방 골목이 있다. 침체한 동네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가게들이 하나둘 생기면서 재미난 골목으로 변신하고 있는 곳이다. 2007년 이 골목에 있던 배다리양조장에 문을 연 문화공간 스페이스빔에서는 6월말까지 매주 토요일 인천 원도심 일대의 골목길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주민과 전문가에게 듣고 현장을 함께 걸어보는 ‘골목 인문 콘서트+투어’를 진행한다. 스페이스빔은 그 앞에 서 있는 깡통로봇으로 유명한데 지금은 드라마 <초인시대>를 찍고 있어 로봇 대신 ‘주봉인력’ 간판이 임시로 걸려 있다. 강연 문의 (032)422-8630.

글·사진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인천 동구 여행 정보

가는 길 지하철 1호선 인천선을 타고 동인천역에서 내려 북광장 방향으로 나온다.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급행열차를 타면 13분 정도 시간이 절약된다. 주말에는 15분 간격으로 급행열차가 배치된다.

머릿고기 한 접시 8000원

먹을 곳 동인천역 북광장 옆으로 중앙시장 끝편에 송현동 순대국 골목이 이어져 있다. 30년 이상 영업해온 순대국집 십여곳이 모여 있으며 싼값에 푸짐한 순대와 곱창, 술국을 먹을 수 있다. 송현시장 안에 위치한 ‘영종집’은 영화 <파이란>에 등장했던 곳으로 주인 할머니가 직접 만든 순대와 머릿고기가 잡내 없이 구수하다. 순대국 6000원. 머릿고기 한 접시 8000원(사진). 북광장에서 서쪽으로 200m 정도 걸어가면 ‘화평동 냉면거리’ 표지판을 만난다. 방송에도 많이 등장한 양 많고 매콤한 세숫대야 냉면집들이 줄 서 있다. 냉면 5000원. 송현시장에서 좁은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가면 간판도 없이 테이블 네개만 놓은 보리밥집이 있다. 겨울에는 팔순 넘은 주인 할머니와 며느리가 직접 빚은 만두가, 여름에는 직접 간 콩과 뽑아낸 국수로 만든 콩국수가 일품이다. 보리밥 4000원. 만두국·콩국수 5000원.

동구골목문화지도 동구청이나 배다리 안내소,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등에 가면 예쁘게 일러스트로 그린 동구골목문화지도를 구할 수 있다. 기사에 나온 ‘노동자,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달동네길’ ‘인천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명물시장길’ 외에 ‘우각로를 따라 걷는 근현대 역사길’ ‘매립지 위에 조성한 공장지대와 부둣길’ 등 원도심 6개 골목길 코스를 안내한다.

탐방문의 인천 동구청 문화체육과 (032)770-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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