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의 성지이자 도심 속 생태공원으로 보석처럼 빛나는 효창공원 이야기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자리한 한겨레신문사 옆에는 서울에서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공원이 있다. 신문사의 뒤뜰 같은 효창공원(용산구 효창동. 12만3307㎡)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가 “보석 같은 곳”이라고 말할 정도로 울창한 숲과 생태환경이 잘 보전된 공원이다. 남산공원, 용산가족공원과 삼각편대를 이뤄 강북의 허파 구실을 하는데 다른 두 공원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어 용산구와 마포구 일대 주민들의 고요한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의 오래된 동네인 중구와 용산구, 마포구에 폭 감싸여 있는 효창공원은 그 자체로 유서 깊은 공원이다. 후문에 들어서면 장기판을 놓고 씨름하는, 나이 지긋한 동네 터줏대감들이 많다. 농담처럼 건네는 인사말이 “살아 있었구먼”이다. 그 옆으로 젊은 데이트족들이 음료수를 들고 화사한 웃음을 터뜨리면서 걷는다. 낮에는 생태체험을 하는 유치원생들이 도시락을 꺼내고 저녁이면 중년 여성들이 공터에서 에어로빅 운동을 한다. 젊음과 늙음이 공존하는 공원이다. 잘 닦은 산책길에서는 다람쥐가 번개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고 키 큰 나무 아래 펼쳐지는 커다란 그늘은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휴식을 제공한다. 조선시대부터 일제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흔적을 오롯이 담고 있는 효창공원 산책은 한편의 짧은 역사기행이기도 하다. 효창공원은 본래 정조의 첫째아들 문효세자와 그의 모친 의빈 성씨의 묘가 있는 ‘효창원’이었다. 본래 왕릉이 있는 곳은 소나무가 울창한데 고종 31년(1894년) 청일전쟁 직전 일본군이 이곳의 아름드리 소나무 숲을 훼손했다. 일제는 조선의 위신을 떨어뜨리기 위해 문효세자의 묘 등을 서삼릉(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으로 이전하고 공원으로 바꾸었다. 근처에는 유곽도 만들었다고 한다. 효창공원의 우여곡절 많은 역사의 시작이다. 산책길을 걷다 보면 이곳저곳에 세워진 묘가 눈에 들어온다. 독립운동가들의 묘다. 백범기념관 홍소연 전 자료실장은 “1945년 환국한 김구 선생이 효창원에 독립운동가들의 묘역을 조성했다”며 “일제 침략의 교두보였던 용산에 묘역을 조성해 ‘다시는 나라를 뺏기지 말자’는 의미를 담은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했다”고 한다. 백범이 조성한 독립운동가 묘역일제부터 군사정권까지 수난사
2000년대 생태공원으로 거듭나
주변 세련된 카페와 맛집도 빼곡 삼의사(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묘가 문효세자의 능 자리에 있고 백범의 묘와 임정 요인(이동녕, 차이석, 조성환)의 묘도 있다. 안중근 의사의 가묘도 삼의사 묘역 안에 조성돼 있다. 이승만 정권에게도 효창원 묘역은 눈엣가시였다. 경찰이 길목을 막고 불심검문하는 통에 경찰의 눈을 피한 ‘도둑 참배’가 벌어졌다고 한다. 1959년에는 ‘제2회 아세아축구선수권대회’ 개최를 구실로 독립운동가 묘를 이장하고 효창운동장을 개설하려고 했다. 각계각층의 반대가 일어나자 묘 이전은 보류되었지만 1960년 효창운동장은 결국 문을 열었다. 이런 행태는 박정희 정권에서도 이어져 1968년에는 이곳에 골프장 건립 공사가 추진되었고 공원 위쪽에 뜬금없이 서 있는 북한반공투사위령탑도 역사 지우기의 일환으로 1970년대 세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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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이 우거진 효창공원에서 쉬고 있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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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공원 습지에는 개구리, 두꺼비, 송사리가 서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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