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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이 타이거 디스코가 지난 24일 새벽 서울 경리단길 도조 라운지 클럽에서 추억의 가요, 동요 등으로 디제잉을 하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신나게 춤추고 있다. 한식 요리사 이기범씨는 주말 밤이면 디제이 타이거 디스코로 변신한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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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로닉 페스티벌, 클럽 문화 확산되며
디제잉 배우는 일반인 증가
장비 발전으로 입문 쉬워져
지금은 없어진 서울 여의도 아이에프시(IFC)몰 지하 ‘엠펍’에서 1일 디제이를 몇번 한 적이 있다. 주제를 정하고 2시간 동안 음악을 트는 게 임무였다. ‘여름밤, 알코올을 부르는 노래’라는 주제를 잡고, 비치보이스의 ‘서핀 유에스에이’, ‘코코모’로부터 출발해, 듀스의 ‘여름 안에서’, 바비킴의 ‘한잔 더’를 거쳐, 데이비드 보위의 ‘스페이스 오디티’, ‘스타맨’으로 우주에 갔다가, 톱로더의 ‘댄싱 인 더 문라이트’, 글렌체크의 ‘식스티스 가르댕’으로 신나는 춤판으로 이끄는 식이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진짜 디제이’라 여기진 않았다. 엘피나 시디 대신 디지털 음원을 유에스비(USB)에 담아 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디제이 장비를 이용한 ‘믹스’는 꿈도 못 꿨다. 그저 한 곡이 끝나갈 즈음 볼륨을 살살 내리면서 다음 곡의 볼륨을 올리는 수준이었다. 이런 단순한 작업을 하면서도 헤드폰을 쓰고 뭔가 열심히 만지는 척을 하긴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은 신경쓰지 않고 맥주만 들이켰지만 말이다.
지난 24일 새벽 2시 서울 경리단길 들머리에 자리한 ‘도조 라운지’ 클럽. 이곳에서 ‘진짜’ 디제이를 만났다. 커다란 금테 잠자리 안경에 2 대 8 가르마로 빗어넘긴 머리, 위아래로 맞춰 입은 감색 ‘땀복’…. 1980년대에 냉동됐다가 갓 깨어난 분위기다. 잔뜩 싸온 시디를 꺼내 80년대 디스코 음악을 틀기 시작했다. 헉, 그런데 갑자기 익숙한 가락이!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조영남의 ‘화개장터’다. 이 노래를 알 리 없는 외국인들도 즐거워하며 덩실덩실 춤을 췄다. 뭔가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김국환의 ‘우리도 접시를 깨뜨리자’, 김흥국의 ‘호랑나비’ 같은 추억의 가요에 20~30대 젊은이들이 환호하며 넘어질 듯 말 듯 ‘호랑나비 춤’을 췄다. ‘오빠 생각’, 코끼리 아저씨와 고래 아가씨가 결혼한다는 노랫말의 ‘코끼리 아저씨’ 등 동요가 흐르자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떼창’을 했다. 마지막 곡은 88년 서울 올림픽 주제가인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 나이·성별·국적을 넘어 손을 잡고 좌우로 흔들며 대동단결하는 올림픽 폐막식 같은 진풍경이 펼쳐졌다.
이날 1시간 동안 디제잉을 한 이는 ‘타이거 디스코’. 독특한 선곡으로 나름 인기를 끌고 있는 디제이다. 하지만 이를 전업으로 하는 프로페셔널은 아니다. 본명 이기범(29)으로 돌아오면 한식 요리사가 된다. 서울 여의도의 호텔 ‘콘래드 서울’ 뷔페 식당이 그의 직장이다. 80년대 옷차림과 80년대 디스코 음악이 좋았던 그는 2012년부터 디제잉을 독학하기 시작했다. 20여만원을 주고 산 입문용 디제이 장비를 붙들고 씨름하며 기능을 익혀나갔다. 이제는 주말마다 디제잉을 하는 어엿한 정식 디제이가 됐다. 클럽을 옮겨다니며 하루 두 탕씩 뛰기도 한다.
주중에는 요리사주말에는 디스코DJ
“내가 트는 음악에
사람들이 열광하면
뿌듯한 쾌감 밀려와” “평일엔 주방에서 일하고 주말에 디제잉을 하다 보면 피곤하죠. 그래도 정말 재밌고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내가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내가 트는 음악에 다른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걸 보면 뿌듯한 쾌감이 밀려와요.” 그는 “제 영향을 받아 호텔의 다른 요리사 2명도 장비를 사서 디제잉을 독학하기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홍대 앞 ‘잼세션 뮤직 아카데미’. 박대웅(44)씨가 디제이 장비 앞에서 헤드폰을 쓰고 뭔가를 열심히 조작하고 있었다. 아이티 회사에 다니는 그는 올해 초부터 디제잉을 배우기 시작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던 그는 세계적인 디제이 마르쿠스(마커스) 슐츠의 영상을 우연히 보고 전자음악의 한 장르인 ‘트랜스’에 빠져들었다. “트랜스가 클래식 소나타의 기승전결과 비슷하고 감성적·서정적이더라고요. 트랜스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어 디제이 장비를 배우고 있어요.” 박씨는 디제잉을 배우면서 인생이모작의 꿈도 갖게 됐다. “국내에 거의 없는 트랜스 전문 클럽을 만들어 디제잉도 하고 작곡도 하고 싶어요. 기술의 발달로 곧 나이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쉽게 작곡하는 시대가 올 겁니다.” 방송사 사업국에서 일하는 노영진(46)씨는 지난해 9월부터 이곳에 다녔다. “남들 앞에서 디제잉을 할 생각은 없어요. 그냥 혼자 음악을 폭넓게 듣는 게 좋아서 하는 거죠. 여기만 오면 복잡한 회사 일도 싹 잊고 정말 즐거워져요.” 올 초 고등학교를 졸업한 신승아(19)양은 디제이가 되려고 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디제이 학원에 다니는 중이다. “좋아하는 일렉트로닉 음악을 하루 종일 듣는 직업이 뭘까 생각하다 디제이가 되기로 했어요. 여자 디제이는 별로 없지만, 그래도 점차 늘고 있어요. 언젠가 꿈의 페스티벌 무대에 서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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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이 타이거 디스코가 지난 24일 새벽 서울 경리단길 도조 라운지 클럽에서 추억의 가요, 동요 등으로 디제잉을 하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신나게 춤추고 있다.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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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이 타이거 디스코가 지난 24일 새벽 서울 경리단길 도조 라운지 클럽에서 추억의 가요, 동요 등으로 디제잉을 하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신나게 춤추고 있다.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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