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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6.03 20:56 수정 : 2015.06.04 17:20

바다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스쿠버다이빙은 바닷속에 펼쳐진 또다른 세상을 만나는 황홀한 경험이이다. 한겨레 김정효, 조혜정 기자가 스쿠버다이빙 입문기와 제주 바다의 매력적인 풍광을 사진으로 담아왔다. 점쏠배감펭과 조혜정 기자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스쿠버다이빙 입문기
스쿠버다이빙 마니아 조혜정 기자의 제주 서귀포 일대 초여름 바닷속 여행기

여름은 누가 뭐래도 바다의 계절이다. 바다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가지 있지만, 스쿠버다이빙은 바닷속에 펼쳐진 또다른 세상을 만나는 황홀한 경험이다.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나와 바다가 온전히 교감하는 느낌은, 말 그대로 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지난달 27~31일 제주 서귀포의 섶섬, 문섬, 월평포구 등에서 초여름 바닷속을 여행했다.

로그1) 84. 섶섬 작은 한개창

6개월 만의 바다다. 5㎜ 웨트슈트와 후드조끼로 다이빙을 하는 처지라 겨울 바다는 언감생심이다. 2012년 1월 바로 이곳 섶섬 작은 한개창에서 오픈워터 인정증2)을 딸 때만 해도 16도라는 수온이 추운 줄 몰랐는데, 이젠 19도에서도 한기를 느낄 때가 있다. 찬 바람 부는 날이 얼른 지나 바다를 안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하늘이 잔뜩 찌푸린 채 심술을 낸다. 그래도 조용히 있어주는 바람이 고맙다.

배 위에서 공기통에 호흡기와 부력조절기를 체결해 어깨에 멘 뒤 백롤3)로 입수했다. 공기통이 수면을 치는 소리와 함께 잠시 몸이 가라앉았다 뜬다. 슈트 안으로 서서히 바닷물이 스며들면서 슈트가 몸에 착 감겨온다. 이 느낌, 바다가 온몸의 피부 세포 하나하나를 간지럽히며 깨우는 듯한 이 느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그 순간 바다는 사랑의 신 에로스다.

강사 2명을 포함해 모두 5명이 오케이 사인을 주고받은 뒤 하강했다. 이퀄라이징4)엔 문제가 없는데, 오랜만이라 그런지 자꾸 긴장된다. 3m밖에 안 되는 시야도 답답한데다, 수온도 16도밖에 안 나온다. 조금 예민해지려는 순간, 파랑돔 떼가 놀고 있는 게 눈에 들어오면서 편안해졌다. 섬을 오른쪽에 끼고 천천히 유영하기 시작했다. 불볼락, 용치놀래기, 호박돔, 달고기가 유유자적 돌아다니고, 화산석 직벽에 난 보라색 맨드라미 산호 사이로 청줄돔도 간간이 보인다. 드디어 제주 바다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버블팁 말미잘 위엔 흰동가리나 샛별돔, 공생새우가 있어야 제격인데, 샛별돔이 나오기엔 아직 수온이 낮고 다른 녀석들도 좀체 눈에 띄지 않는다. 서운함을 누르며 바위 위를 지나는데 바로 뒤 모랫바닥에 흰가오리 한 마리가 모래인 척 누워 있다. 뒤따라오던 버디5)에게 손짓하니 금세 다가와 사진을 찍는다. 앞에서 리드하던 양염염 강사가 상승 신호를 보낸다. 그렇게 이번 투어의 첫 다이빙이 마무리되나 하는데, 벽에 검붉은색의 점감펭 한 마리가 숨어 있다. 못생긴 게 볼수록 귀엽고 신기하다. 초보 땐 가이드가 찾아줘야만 볼 수 있던 녀석이었는데, 이젠 나 스스로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버블팁 말미잘
사슴뿔긴갯민숭이
로그 87. 섶섬 동코지 앞

‘외돌개보다 더 좋은데?!’ 외돌개 포인트는 한라산 자락에서 뻗어나온 웅장한 화산석 바위가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서귀포에 오면 적어도 한번은 꼭 들렀던 데다. 그런데 동코지는 더 힘이 넘친다. 가이드를 맡은 현주민 강사가 입수 전 브리핑 때 “섶섬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 했던 게 과장이 아니다. 직벽과 커다란 돌에 노란색, 보라색 맨드라미 산호와 해송, 키 작은 수지 맨드라미 산호, 부채산호가 어우러져 넋을 잃게 한다. 시야가 8m밖에 안 터지고, 갈조류가 녹는 시기라 부유물이 조금 있는 게 아쉽기 그지없다. 가만가만 돌 틈새를 살펴보니, 문어 한 마리가 수줍은 듯 숨어 있다. 족히 60㎝를 넘어, 변색을 해도 소용없는 크기의 광어는 ‘나 여기 있소’ 하며 바위 위에 누워 있다.

수심 22.7m. 다이빙 컴퓨터가 무감압 한계시간 27분을 가리킨다. 수심이 깊은 곳에서 다이빙을 하면, 얕은 수심에서 일정 시간 머무르며 몸속에 쌓인 질소를 배출하는 감압을 해야 안전한데, 현재 수심에선 27분까지는 감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마음의 무감압 한계시간은 얼마나 될까. 서로가 웃음의 가면을 쓴 채 부대끼는 일상, 결과물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내야 하는 일의 틈바구니에서 쌓인 마음의 질소를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내 숨소리만 들리는 고요함을 잡생각이 밀고 들어와 깨버린다. 제철 맞은 자리돔이 빛을 내며 떼를 지어 지나간다. 꿈을 꾸는 것 같다. 처음 ‘물뽕’을 맞게 해준 이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물속에서의 시간이 바로 마음의 감압이라는 생각이 든다.

출수해 고개를 드니 파랗게 갠 하늘마다 한라산이 맞닿아 있다. 모름지기 스카이라인은 이래야 하는 게 아닌가, 고층 건물과 아파트가 빚어내는 살풍경이 아니라. 바다에서 보는 모든 것이 감사하다. 행복하다.

슈트 안으로 바닷물이 스며들며
슈트가 몸에 착 감겨온다
바다가 온몸의 피부 세포 하나하나
간지럽히다 깨우는 듯한 이 느낌
그 순간 바다는 사랑의 신 에로스다

여름은 바다를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섶섬 앞에서 본 한라산. 수면 위로 남방큰돌고래떼가 지나고 있다.
로그 99+1. 섶섬 큰 한개창

언제 100번이나 다이빙을 할까 싶었는데, 그날이 오늘이다. 고대호 강사가 가이드를 맡았다. 맨드라미 산호가 화려하게 피어 있는 바위 뒤에서 100번째 다이빙을 기념하는 사진을 찍었다. 범돔, 주걱치가 커다란 해송과 연산호 군락 사이를 평화롭게 왔다갔다 하고, 자리돔 떼도 예외없이 반짝댄다. 자그마한 거북복 한 마리가 쌩하니 지나간다. 커다란 점쏠배감펭이 옆지느러미를 활짝 펼친 채 우아하게 유영한다. 한참을 지켜봤다. 얼마나 다이빙을 하면 저 물고기들처럼, 저 산호들처럼 물속에서 평화롭고 편안해질 수 있을까.

2012년 10월 ‘강사의 강사’인 인스트럭터 트레이너이자, 다큐멘터리 영화 <물숨>의 수중 촬영감독인 ‘스쿠버 라이프’의 김원국 강사를 처음 만났다. 그해 7월 어드밴스트 오픈워터 인정증6)은 땄지만 로그수는 20여차례밖에 안 된,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던 때였다. “다이빙 횟수가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김 강사는 “99번”이라고 했었다. 사실 그는 7000차례 이상의 다이빙 경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그런 답을 내놓는 건 “로그수가 100회를 넘어가면 과도하게 자신감이 붙어서 위험에 빠질 수 있고, 오만해지는 경우도 많다. 바다는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번의 다이빙에서 두 차례나 가이드를 잃어버린 92번째 다이빙이 떠올랐다. 그 전에도 몇 차례 다이빙을 했던 월평포구라 익숙한 곳이었는데 시야가 3m밖에 안 나왔다. 수신호 오해로 가이드를 놓치고선 버디와 함께 수면으로 올라왔다. 해변으로 헤엄쳐가다 물속에서 올라오는 가이드의 공기방울을 발견하고 다시 입수해 다이빙을 계속 진행했는데, 이번엔 사진을 찍다가 가이드와 버디를 모두 잃어버렸다. 가이드나 버디를 잃은 경우는 오픈워터 교육 때부터 대처 요령을 배우고, 실제 다이빙 때에도 간혹 벌어지는 일이지만 나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100번째 다이빙을 앞두고 겪은 이 일은, 자만심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경계하라는 바다의 신호가 혹시 아닐까. 그래야만 이 아름다운 바다와 오래도록 사랑을 나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어깨에 힘을 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나의 로그는 이제 다시 1회다.

서귀포/글·사진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 다이빙 횟수 2) 스쿠버다이빙을 하려면 다이빙 단체에서 강습을 받은 뒤 인정증을 받아야 한다. 오픈워터는 이 인정증 가운데 첫번째 단계로 최대 18m까지 잠수할 수 있다. 3) 배의 난간에 걸터앉았다 뒤로 구르며 입수하는 방법 4) 하강할수록 높아지는 수압에 맞춰, 코를 막고 숨을 내쉬어 귀 쪽으로 공기를 밀어넣거나 침을 삼키는 등의 방식으로 귀의 압력을 조절하는 방법 5) 스쿠버다이빙은 안전을 위해 반드시 2명씩 짝을 지어 진행하는데, 버디는 그 짝을 이른다. 6) 다이빙 인정증의 두 번째 단계로 최대 40m까지 잠수할 수 있다.

■[수중 촬영] 제주 서귀포 앞바다의 초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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