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6.24 19:25
수정 : 2015.06.2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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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전통 만두 ‘모모’와 곁들여 먹는 고깃국. 한국의 곰국과 비슷한 맛이다. 김소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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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소민의 부탄살이
“불교국가에 동물을 죽이는 공장을 짓겠다는 게 말이 돼? 아마 다 반대할걸.” 페마(32)는 열받았다. 지난 한 달 부탄의 핫 이슈는 정부가 추진중인 육류 가공 공장이었다. 난리 났다. 결국 정부가 “오해”라며 진화했다. 고기 수입해 가공포장만 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도축이라곤 씨도 없냐면 아니다. 공식적으로야 생선 포함 살생을 안 한다지만 동네잔치 때마다 슬쩍, 마당에 닭도 슬쩍, 방목하는 야크도 슬쩍, 특히 부탄 안 소수민족인 네팔인들이 총대 잡고 슬쩍 잡는다. 그래도 페마는 “가끔 잡는 거하고 떼로 만날 죽이는 거하고 같냐”고 했다.
죽이는 건 꺼리는데 먹는 데는 거리낌없다. ‘슬쩍 도축’으로는 누구 코에 붙이지도 못할 양이다. 결국 대부분 인도에서 수입한다. 부탄 신문 <쿠엔셀>은 “매년 1t 이상 들여온다”며 “부탄의 한 사람당 육류 소비량이 남아시아 최고”라고 썼다. 그만큼 루피가 인도로 흘러들어가니 정부로서는 속 타는 거다. 결국 먹으니 죽이는 거 아닌가? 어디서 어떻게 잡았는지 모를 고기를 먹느니 투명하게 관리하며 도축하는 게 낫지 않나? 소남(56)은 모르는 소리 말란다. “똑똑한 척하는 사람들이나 먹는 거랑 죽이는 거랑 거기서 거기라고 떠들지. 둘은 죄질이 다르다니까. 업보가 달라.”
다를지도 모르겠다. 부탄 사람들이 아무리 먹는다고 서구처럼 흥청망청 고기가 흘러넘치지는 않는다. 수도 팀푸에서 가장 큰 마트라고 해봤자 한국 아파트 단지 상가 안 슈퍼 정도 크기다. 한국 구멍가게 아이스크림 냉장고만한 냉동고기 코너가 구석에 쭈그리고 있다. 다른 마트에선 그나마 구경하기 힘들다. 생선 자리는 없다. 고기를 사고 싶으면 정육점이나 주말장터에 가야 한다. 그나마 냉동코너건 정육점이건 지난달 18일부터 한 달째 문 닫았다. 육식을 줄여야 하는 금욕의 달이다. 상점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이라곤 바싹 말려 걸어놓은 생선밖에 없다. 가게 낀 골목 전체에 풍기는 비린내가 이 나무토막 같은 게 실은 생선이란 증거다.
못 사게 한다고 안 먹나. 이미 쟁여놨다. 팀푸 시내에서 소고기 모모를 제일 맛있게 한다는 음식점 ‘줌볼라’에선 점심시간마다 자리 쟁탈전이 벌어진다. 번화가인 ‘홍콩 마켓’ 구석에 있다. 대체 여기가 왜 홍콩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여간 줌볼라는 시내에 두세 곳뿐인 피자집 중 하나와 할리우드 영화나 16부작 한국 드라마 전체를 300눌트룸(약 5천원)에 내려받아주는 불법 다운로드 전문 가게 사이에 있다. 건물 옆구리로 터진 문을 열면 10여평 공간에 테이블 대여섯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서울 명동 뒷골목 김치찌개집 같은 분위기다.
모모는 만두다. 양념한 소고기나 치즈와 채소를 섞어 넣는다. 같이 나온 고깃국은 그대로 곰국이다. 둥둥 띄운 고수만 외국 맛이다. 앞에 앉은 할머니는 그 국물에 국수를 풀어 코를 박고 먹었다. ‘무념무상, 국수와 나’라는 표정이다. 그걸 보니 한 젓가락 하고 싶다. 채소 모모와 고깃국, 볶음밥까지 둘이 먹고 다 합쳐 170눌트룸(3천원) 나왔다.
모모건 고깃국이건 피자건 빠지지 않고 따라 나오는 양념이 있다. 고춧가루에 기름을 섞은 에지다. 한국 고추장의 매운맛은 애교다. 에지만 앙칼진 게 아니다. 부탄 요리 대표 선수 ‘에마다치’도 그렇다. 양파, 마늘 등 온갖 채소에 되는대로 고추를 많이 투척한 뒤 기름에 살짝 볶다 물을 넣고 치즈를 녹인다. 작은 호빵 모양의 뽀얀 치즈에선 서양 치즈 같은 구린내가 안 난다. 이걸 보라색 빛이 살짝 도는 부탄 밥에 뿌려 먹으면 된다. 매콤한 곰탕 맛이 났다. 매운 통각이 미각을 순식간에 사살해 버리는 통쾌한 맛이기도 하다. 적어도 속이 느글거릴 새는 없다.
전 국민의 식후땡은 ‘도마’다. 길 가다 난데없이 악수를 청한 할아버지는 내가 손을 잡자 환하게 웃었는데 이가 온통 새빨갛다. 도마 흔적이다. 잎사귀에 핑크빛 라임을 바르고 밤톨을 썰어놓은 것 같은 도마를 얹어 씹는다. 내가 씹어보겠다니 상점 주인이 라임을 덜어냈다. 다 넣었다간 입속이 타는 느낌일 거라고 했다. 무인도에서 생나무 둥지를 뜯어 먹으며 구조 요청을 하고 있는 맛이다. 씹을수록 쓰고 입이 후끈해진다. 여하튼 겨울엔 몸이 뜨끈해져 좋단다.
식후땡 담배는 위험하다. 공공장소에서 피웠다간 500눌트룸(8천원)을 벌금으로 뜯긴다. 파는 건 더 힘들다. 300대 이상 담배를 허가받지 않고 가지고 있다 걸리면 벌금이 1만 눌트룸(17만원)이다. 보통 사무직 한 달 초봉(1만1000눌트룸)을 떼 가는 거다. 1200대 이상 가지고 있다 4번 이상 걸리면 최고 5년 형까지 징역살이다.
그래도 핀다. 점심 먹은 도지(32)와 왕모(24)는 직장 건물 뒤편 공터에 앉아 한 대씩 빨았다. 사무실 아래층이 바로 경찰서인데 괜찮냐니 다 친구라며 니코틴 부서 사람들만 피하면 된다고 했다. 나도 담배 사고 싶다니 어려울 거란다. 아는 사람이 아니면 상인들이 담배 보따리를 풀지 않는다. 도지는 담배가 본격적으로 금지된 2008년 이전부터 골초였다. “그때 담뱃값이 갑자기 10배 뛰었지. 지금도 제값의 2배 주고 사야 해. 몰래 담배를 들여올 수 있는 사람들만 땡잡는 거지.” 쪼그려 앉아 숨어 피우니 더 맛나 보인다.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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