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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바지를 입고 출근한 케이티앤지 직원들. 왼쪽부터 구해림 과장, 김희진 대리, 이응한 대리, 오희승 대리, 배진용 과장.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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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라이프
출근 옷차림으로 반바지 허용하는 대기업 늘어 … 반팔 티보다는 긴팔 셔츠, 샌들보다는 운동화나 로퍼 추천
“청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도/ 깔끔하기만 하면 괜찮을 텐데/ 여름교복이 반바지라면/ 깔끔하고 시원해 괜찮을 텐데.”(‘디오시와 춤을…’ 중)
디제이 디오시(DJ DOC)가 이렇게 노래한 게 1997년 일이다. 꼭 이 노래 때문은 아니었으나, 반바지 출근을 선동한 이가 있었다. “바지 길이로 남성의 자존심을 지키던 시절은 지났습니다. 바지 길이를 과감히 줄입시다. 그리고 장딴지와 발가락을 해방시킵시다.” 박중언 <한겨레> 당시 국제부 기자는 2000년 여름 내근하는 남자 동료들에게 이런 내용의 전자우편을 보냈다. ‘행동의 날’로 정한 7월10일, 그의 취지에 동의한 6명의 남자 기자가 반바지를 입고 출근했다. 하지만 신문사 안팎의 불편한 시선 탓인지 반바지는 점차 모습을 감췄고, 홀로 고군분투하던 박 기자도 언젠가부터 더는 반바지를 안 입게 됐다.
“우선 덥기도 했고, 언론사인 만큼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해보자는 취지로 반바지 입기 운동을 제안했는데, 아무래도 바깥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는 분위기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어요. 내근 기자를 대상으로 했는데도 ‘바깥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면 좀 그렇지 않겠느냐’며 말리는 목소리가 많았죠. 결국 얼마 못 가 좌절되고 말았어요.” 지금은 디지털에디터를 하고 있는 박 부장의 말이다.
디제이 디오시의 파격적 제안은 10여년이 훌쩍 지나서야 점차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2012년 일부 중·고등학교에서 여름용 반바지 생활복을 도입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일부 직장에서 청바지를 넘어 아예 반바지 출근을 허용하는 사례도 속속 나왔다. 여름철 전력난 해소를 위해 실내온도를 2~3℃ 올리고 반팔 셔츠, 노타이로 대표되는 이른바 ‘쿨비즈’(쿨+비즈니스) 차림을 권장하는 게 유행처럼 번지면서 가능해졌다.
대기업 가운데 케이티앤지(KT&G), 에스케이씨앤씨(SK C&C), 에스케이하이닉스, 쌍방울 등이 2~3년 전부터 반바지 출근을 허용했다. 보수적일 거라는 선입견이 따라붙는 공무원 조직인 서울시청마저 2012년부터 반바지 차림을 허용한 것은 상징적이다. 삼성그룹도 최근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반바지 출근에 대한 의견을 조사했다. 응답자 상당수가 ‘상황에 맞는 탄력 적용’을 지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결과 오는 29일부터 금융사를 제외한 전 계열사에서 휴일 근무자에 한해 반바지 출근을 허용하기로 했다. 단 제일모직 패션부문은 패션업계 특성을 반영해 평일에도 반바지 출근이 가능하다.
회사에 반바지 입고 출근하면 어떤 분위기일까? 반바지 출근을 2012년부터 허용해 이제는 정착 단계인 케이티앤지 직원들을 만나 바뀐 분위기와 자기만의 반바지 코디 요령 등을 들어봤다. 지난 19일 찾아간 서울 강남 대치동 사옥에선 벌써부터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한 직원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2012년 반바지 출근 허용 케이티앤지한여름엔 직원 절반 반바지 착용
삼성 계열 제일모직 패션부문
평일 반바지 출근 허용하기로 “반바지 입고 출근해보니 정말 편해서 계속 입게 되더라고요. 퇴근 뒤 한잔할 때면 정장 입은 친구들이 그렇게 저를 부러워해요. 다만 아버지가 보수적인 금융권 회사 출신이라 부모님은 좀 혼란스러워하셨죠. 처음에 반바지 입고 회사 다녀오니 어머니께서 ‘넌 회사 안 가고 어딜 놀러 갔다 왔니?’ 하셨다니까요. 하하~.”(이응한 대리) “한때는 반바지 매력에 푹 빠져서 월화수목금 색깔별로 입기도 했어요. 맵시를 위해 한번은 일회용 면도기 들고 한시간 동안 끙끙대며 다리털 제모를 해보기도 했고요. 이제 그렇게까지 하진 않지만, 반바지 출근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어요.”(배진용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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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시원차림 콘테스트’에서 입상한 홍보실 직원들의 패러디 포스터.(사진 케이티앤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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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바지 차림으로 근무하는 김학순 대리.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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