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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연산오계’라 불리는 ‘화악리의 오계’. 수컷은 늘어지는 긴 꼬리를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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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요리
‘계모’ 자처하며 천연기념물 연산오계 국내 유일 사육 농장 운영하는 지산농원 이승숙 대표
“꼬끼오, 꼬끼오!” 대낮에 닭이 운다. 지난 21일 오전 11시께 방문한 ‘지산농원’(충남 논산시 연산면 화악길). 농장 문이 열리자 닭 울음이 크게 들린다. “서로 얘기하고 대화하는 거예요.” 스스로를 ‘계모’(鷄母)라고 부르는, 국내 유일의 오계 사육 농장인 지산농원의 이승숙(52) 대표가 설명을 시작한다. “사람하고 똑같아요. 우리로 치면 청년쯤 되는 닭들은 나무에 올라가 실컷 노느라 잠도 안 자고, 늙은 닭은 해 떨어지기도 전부터 꾸벅 졸아요.” ‘닭 엄마’답게 애정이 듬뿍 담긴 설명이다. 유난히 등의 털이 많이 뽑힌 암탉이 눈에 띈다. “저 녀석은 성격이 너무 순해요. 교미하려고 달려드는 수탉들을 못 피해서 저렇게 된 겁니다. 수컷은 암컷 등에 올라타 부리로 암컷 머리를 물고 교미하거든요. 영리한 암컷은 요리조리 도망 다녀요.” 걸어다니는 양계사전이다.
이 대표가 키우는 닭은 까만색의 일명 ‘연산오계’다.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265호다. 고급스러운 까만 벨벳천을 뒤집어쓴 것처럼 전체적으로 새까맣고 윤기가 나는 것이 특징이다. 부리나 털 일부, 귓불 등이 검정에 가까운 자색이나 청색을 띠기도 한다. 뼈까지 흑색이라서 ‘오계’라 부르는 연산오계는 재래종 닭의 한 종류로 야생 조류라고 칭해도 될 정도로 야생성이 강하고 성격이 예민하고 까다로워서 사육이 쉽지 않다고 한다. 더구나 사육기간이 일반 닭의 5배라서 수익을 최우선으로 한 양계업자들에게는 일찌감치 관심 밖이었던 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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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농원 대표 이승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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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골계와는 종 자체가 달라요
발가락 4개, 왕관 모양 볏의 오계와 달리
혼혈 많은 오골계는 가지각색이죠.” 1970년대 이후 채란과 식육을 목적으로 한 대규모 양계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재래종 닭은 멸종 위기에 처했다. 수입된 양계용 닭 종자는 짧은 시간에 대량생산이 가능했다. 연산오계도 사라질 위기였으나 이 대표의 할아버지인 이계순(1974년 작고)씨가 30마리를 키워 종을 보존했다. “오계는 집안의 가보였습니다. 교육자이셨던 증조할아버지(이선제), 할아버지(이계순), 아버지(이내진)로 쭉 이어지면서 종을 지켰고 이제는 제가 하고 있죠.” 이 대표는 본래 종합일간지 국제부 기자였다. 1999년 오계를 지켜온 부친에게 병마가 찾아오자 4남1녀의 막내딸이었던 그가 간병을 맡았다. 회사 1년 휴직을 선택한 그는 고향 땅을 다시 밟을 때만 해도 ‘계모’로 살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엔 1년만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닭 모이를 주면서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농장 수익이 거의 없었던 탓에 서울 집의 전세금을 빼서 사료를 사서 먹였죠.” 결국 그는 다시 신문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2002년 작고한 부친의 뜻을 받아 지산농원에 새바람을 불어넣었다. 잘못된 명칭부터 바로잡고 싶었다. “우리 오계를 ‘오골계’로 착각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오골계와 오계는 종 자체가 달라요. 오골계는 이후 재래종과도 교잡해 혼혈종이 많았어요. 1980년에 우리 오계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면서 오골계란 명칭을 썼어요. 교잡을 많이 한 혼합종인 오골계와 우리 오계를 구별 없이 취급했어요. 2008년에 이르러서야 순혈을 지켜온 우리 화악리 오계로 천연기념물 명칭을 되찾으면서 오계가 알려지기 시작했죠.” 오계는 발가락이 4개이고 볏이 왕관 모양인 데 반해 혼혈 오골계는 발가락이 5~6개다. 볏의 형태도 일정하지 않다. 그는 경기도 파주의 재래종 닭 지킴이인 현인농원의 홍승갑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환경을 해치지 않는 건강한 사육법을 고민했다. 다른 지역의 양계업체 투어도 했다. “빨리 크는 데 역점을 둔 양계장에서는 배울 게 없었습니다. 그런 양계장에서 하는 방법 반대로만 하면 되겠다는 결론을 얻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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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농원의 ‘병아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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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의 행복한 밥상’에서 파는 오계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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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숙 대표와 김종섭씨가 담근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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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연산오계' 식당을 운영하는 김종섭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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