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7.15 19:38
수정 : 2015.07.1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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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제주에서 벌어진 제주판 클럽데이 ‘시티 비트’ 무대에서 펑크록 밴드 크라잉넛이 공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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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라이프
음악평론가 박은석의 제주에서 공연문화 만들기 분투기…실패를 반복해도 버틸 수밖에 없는 이유
결과적으로, 작지만 의미있는 성공이었다고 내심 자평하고 있다.(그렇다고 자찬은 아니다.) 지난 10일 제주에서 벌어진 ‘시티 비트’ 공연 얘기다. 애초 관객 200명 집객이 목표였는데 700여명이 현장에 나타났으니 딴은 그럴 만도 하다. 다만 내가 기획한 공연에 대해 내 입으로 성공 운운하는 게 좀 오글거리는 건 맞다. 게다가 그 기획이라는 것이 완전히 독창적인 아이디어도 아니었으니까 잘난 체하기도 힘들고 말이다.
‘시티 비트’의 핵심은 1장의 티켓으로 여러 클럽을 자유롭게 출입하며 원하는 공연을 골라 보는 재미에 있는데, 알다시피 그건 서울 홍대 앞에서 매달 벌어지는 ‘라이브 클럽 데이’와 다를 바 없는 형식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기서 감히 대놓고 성공을 들먹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시티 비트’의 난장을 만들어낸 공간이 제주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지난 몇년 동안 제주에서 공연문화를 활성화시켜보겠답시고 벌였던 일들이 이제 마침내 가시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눈엔 그랬다.
나는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리고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터전을 옮긴 이후 25년째 되던 지난해 여름에 제주로 돌아왔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나는 어느새 제주보다 서울에서 더 오랜 세월을 산 나이가 되어 있었고, 음악평론가라는 직업의 특성상 여전히 대부분의 업무를 서울에서 처리해야 하는 입장이었으니까. 반면에 정착은 수월했다. 부모님의 건물에 몸만 들이밀면 되었으니까.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결혼해라”는 잔소리를 백배쯤 더 자주 듣게 됐으므로 만만치 않은 대가를 치르는 셈이었다. 실제로 그건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의 ‘루도비코 치료법’과 놀랍도록 비슷한 효과를 불러일으켜서, 나도 모르게 문득 “결혼이나 할까”라는 생각이 들 때면 혼자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
‘시티 비트’를 성공적이라
자평하는 이유는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이전보다 나아지고 있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중독성이 대단해서
강력하게 우리를 추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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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제주에서 벌어진 제주판 클럽데이 ‘시티 비트’ 무대에서 펑크록 밴드 크라잉넛이 공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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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처럼 살벌하게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위협받아가면서도 내가 제주로 귀향한 데는 계기가 있었다. 일단은 무의식의 저변에서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던 회귀본능이다. 그건 일종의 디아스포라 같은 것인데, 나의 관찰에 의하면 그건 주로 제주 출신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제주 출신들처럼 은퇴 후에 고향에 돌아가서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은 지역을 나는 알지 못한다. 짐작건대 그건, 언어와 음식과 관습과 자연환경 등에서 육지와는 다른 점이 많은, 제주 섬만의 독특함에 기인하는 것일 터다. 바로 그 회귀본능이 젊은 시절에는 의식의 억제 아래 있다가 은퇴 이후를 생각해보기 시작하는 40살 즈음에 이르자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불혹은 ‘유혹에 빠지지 않는 나이’가 아니라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되는 나이’라는 뜻인지 모르겠다.
또 하나의 이유는 1994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취재한 이래 숙제처럼 내 마음속에 자리잡은 목표, 즉 “제주에서 이런 페스티벌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록 페스티벌은 해외 토픽에서나 볼 수 있었던 낯선 개념이었지만, 미국 뉴욕주 소거티스의 한 목장에 펼쳐진 광대한 무대와 거대한 인파(35만명이 모였다)를 보는 순간 평론가 초년생이었던 나는 마치 종소리를 들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사적으로 제주의 중산간을 떠올렸던 것이다. “이런 건 제주도가 딱이야.” 이후 한동안 나는 그 목표를 이뤄보겠다고 동분서주했다. 그러다 2000년대 초쯤 여기저기 부탁을 한 끝에 제주도청의 고위 공무원을 만나 50쪽쯤 되는 두툼한 기획안을 내밀 수 있었다.
당시 나의 논리는 이랬다. ①제주도의 재정적 근간은 관광산업에 있다. ②그러나 세상에는 제주도를 아는 사람보다 메탈리카나 뮤즈를 아는 사람이 훨씬 많다. ③그러므로 그들의 유명세를 이용해서 제주를 전세계에 홍보하는 건 훌륭한 마케팅 전략이다. 게다가 우리보다 앞선 그들의 공연문화를 경험할 기회를 국내 팬들에게 제공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내 얘기를 들은 그분의 반응은 실로 명쾌했다. “돈 있으면 해보든지.” 그제야 뒤늦게 나는 열정만 가지고 문화를 바꾸는 일은 불가능하(거나 최소한 몹시 힘들)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뮤지션의 진정성이니 음악적 성취니 하는 것들도 결국은 누울 자리가 있어야 뻗을 수 있는 다리와 같다는 걸 말이다. 이후 한동안은 닥치고 지냈다. 나한테 그런 돈이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면서 회귀본능의 활동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그즈음에 시작되었다. 세상살이의 경험이 조금 더 쌓이면서 다시 한번 뒤늦은 깨달음을 얻은 덕도 있었다. 요컨대 꿈을 공유할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있다면 문제 해결은 그만큼 수월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당시까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게 오히려 더 기괴할 만큼 당연한 내용이었다. 그때 ‘곰사장’이란 별칭으로 잘 알려진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고건혁과의 만남이 전환점을 제공했다. 역시 제주 출신으로 알고 보니 우리 집에서 직선거리로 200m쯤 떨어진 곳에 본가를 두고 있던 그는 나이로는 나보다 한참 밑이지만 경영감각으로는 이미 나보다 몇 수나 위에 있어서, 내가 쏟아내는 오만가지 허접한 아이디어들을 걸러내는 필터 역할을 하기에 안성맞춤의 파트너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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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겟투어’에서 인디 밴드 얄개들이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공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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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과 생태여행을 결합한 ‘겟투어’ 참가자들이 제주 용눈이오름에 올라 자연을 만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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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행과 공연관람 및 문화강연을 결합한 겟투어(Great Escape Tour), 이틀짜리 본격 록 페스티벌인 젯페스트(Jeju Experience Tour and Festival), 제주 최대의 상설 대중음악 전문공연장 겟스페이스, 그리고 지난주에 첫선을 보인 소규모 도심형 페스티벌 ‘시티 비트’까지가 모두 그런 파트너십을 통해 구체화된 프로젝트들이었다.
물론 그 프로젝트들이 모두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솔직히, 취지는 좋았을지언정 재정적인 측면에서는 대부분이 실패였다고 얘기하는 게 옳다. 공연을 한번 개최하려면 아티스트 출연료에다가 항공편과 숙박비가 자동으로 따라붙는 비용 구조, 그렇게 늘어나는 비용을 회수하기엔 너무 작은 시장 환경 등의 요인으로 문화의 불모지라는 오명을 떼어내지 못하고 있는 제주에서 우리의 프로젝트들은 시기상조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티 비트’조차도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제작지원금과 출연료를 따지지 않은 아티스트들의 호의가 없었다면 적자를 면할 수 없는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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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음악평론가·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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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우리, 최근에 합류한 콘퍼런스 기획전문가 김영도까지 포함한 세 사람이 ‘시티 비트’를 성공적이라 자평하는 이유는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매번 이전보다 나아지고 있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중독성이 대단해서 마피아 보스의 “거부하기 힘든 제안”만큼이나 강력하게 우리를 추동하고 있다. 공연을 마친 지 겨우 이틀 만에 우리가, 아직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지레, 다음번 ‘시티 비트’를 오는 11월14일에 개최하겠다고 호언하고 나선 건 그 유혹을 피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외부 지원을 기대하기 힘든데도 말이다. 그래도 비관은 없다. 문화를 바꾸는 노력은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지금껏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버텨볼 생각이다. 여긴 제주도니까.
박은석 음악평론가·문화기획자, 사진 이봄이·겟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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