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7.22 18:28
수정 : 2015.07.23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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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소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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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소민의 부탄살이
나쁜 개들의 전성시대다. ‘나쁘다’는 건 인간인 내 처지에서 그렇다는 거다. 일단 많다. 부탄 일간지 <쿠엔셀>은 길거리 개 중성화 5개년 계획 덕에 개체수가 줄어 수도 팀푸에 5천마리 산다고 밝혔다. 5년 전 인간 10명당 개 1마리꼴이던 게 0.6마리로 줄었다는데 누구 코의 중성화 작업인지 도처에 강아지들이다. 팀푸 개 87%는 길이 집이란다. <쿠엔셀>은 “여전히 팀푸 도심 창람 거리 주변은 개들의 영토로 보인다”며 “이런 사정에도 중성화 작업 팀이 나타나면 개들이 도망가게 돕는 사람들이 있다”고 썼다. 중성화는 개를 개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교 정신에 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길거리 개들은 나 같은 인간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다. 낮엔 몸을 돌돌 말고 잔다. 발랑 뒤집어진 채 숙면하기도 한다. 팀푸 시내 중심 거리인 홍콩마켓에 어스름이 내리면 활동 시작이다. 때때로 무리 지어 총총 걷는다. 곧 개들끼리 영역 쟁탈전이 벌어진다. 전쟁중인 개들과 퇴근하는 사람들의 세계가 평행으로 흐르는 시간이다. 인간 따위야 택시를 잡건 슈퍼에 들르건 바쁜 개가 알 바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개들에게 자유를 빼앗겼다. 한 번의 으르렁이면 족했다. 출근길 목적지가 100m 앞인데 개 퇴치용으로 들고 다니는 등산 스틱이 거슬렸던지 어느 집 개 한 마리가 뛰쳐나와 짖어대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그 골목 개들이 떼로 목청 깔았다. 방광이 죄어 들어가는데 저쪽 끝에서 행인 한명이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냅다 그 사람 뒤에 붙어 골목을 지났다. 그때부터 출근 때마다 남편에게 태워다 달라 구걸하게 됐다. 30여분 빠른 그의 출근 시간에 맞추다 보니 사무실에 일등으로 도착한다. 근면한 생활을 다 해본다. 다 개 덕이다.
우리집 근처에 케언테리어종이 살짝 섞인 듯한 잡종견 ‘렉시’가 산다. 동네 사람들이 다 그렇게 부른다. 검은 털이 눈을 반쯤 가린 렉시는 몸통 전체 길이라고 해봤자 내 팔 정도 크기다. 그런데 장군감이다. 나만 보면 격퇴하려 든다. 이 조그만 개에게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밀어낼 요량으로 렉시와 잘 노는 동네 꼬마에게 물었다. “렉시는 그래도 안 물지? 그치?” 꼬마가 자랑스럽게 답했다. “렉시는 잘 물어요.”
물어보지 말걸 그랬다. 텐진(23)은 아홉 살 때 개에게 물렸다. “내가 도망가다 넘어지니까 다리를 물었어.” “그래서 그 개는 어떻게 됐어?” 텐진이 무슨 그런 알맹이 없는 질문이 다 있느냐는 듯 답했다. “개야 만족했지.”
공포가 커질수록 개만 보인다. 개들은 또 그 공포를 기막히게 냄새 맡는다. 그걸 아니 나는 온통 개 생각뿐이다. 다들 이렇게 조언한다. “개 세상에 침범한다는 느낌을 안 주면 개들도 너를 상관 안 한다고. 그냥 무시하면 돼.” 문제는 그 평행 세상의 법칙을 무시하는 조폭 개도 있다는 거다. 오전 8시께 집에서 나온 체링(25)은 대여섯 마리 개한테 둘러싸였다. 한 마리가 종아리를, 다른 한 마리가 허벅지를 물었다.
개 처지에선 억울할지 모르겠다. 인간은 더 잔인했다. 부탄 베스트셀러 <다와-길거리 개>는 다와(달)란 이름을 스스로 정한 팀푸 개 이야기다. 전생에 통역사여서 인간 말을 다 알아듣는다. 동굴에서 명상 끝에 거의 도가 트게 되는 개다. 하여간 이 책에 개 세계를 유린하는 인간 군상이 나온다. 다와의 가족은 인간이 고기에 뿌려 놓은 독을 먹고 죽었다. 보호소로 끌려간 개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 <다와> 이야기가 뻥이 아닌 건 부탄 신문 <쿠엔셀>이 뒷받침한다. <쿠엔셀>은 “중성화 작업이 이뤄지기 전 대책으로 시행됐던 보호소에서는 먹이가 부족해 큰 개가 작은 개를 잡아먹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썼다.
그래도 팀푸 길거리 개 세계는 아직 인간에게 점령당하지 않았다. 먹이를 주는 인간도 많다. 인간이 되려다 살짝 점수가 달려 태어난 게 개라고 믿는다. 이들을 먹이면 좋은 카르마가 쌓인다.
“개는 아무것도 아니야.” 부탄과 인도 국경 마을 ‘십수’에 사는 지그메(29)가 말했다. 인도 쪽으로는 자로 반듯이 그어놓은 듯 지평선이 이어진다. 그 평야에서 난데없이 준령이 솟는데 그 분기점에 선 마을이 ‘십수’다. 그곳 최고 골칫거리는 코끼리다. 벼가 익어가는 계절이 오면 그 향기를 맡고 평야 쪽에서 몰려든다. 지그메가 평야가 끝나는 지점에 서 있는 탑을 보여줬다. “코끼리 떼가 오는지 감시하는 곳이야.” “코끼리가 오면 어떻게 해?” “도망가야지.”
“그래도 코끼리가 낫지.” 팀푸에서 동쪽으로 200㎞ 정도 달리면 트롱사다. 해발 3000m에 옹기종기 모인 마을이다. 그곳 은행원인 니마(30)는 한달에 한번 차가 닿지 않는 산골마을로 들어가 저축도 받고 대출도 해준다. “한번은 고객이 대출 이자 내러 못 왔어. 호랑이가 소를 잡아먹었다더라고.” 니마는 산골짝으로 들어갈 때면 동료와 온갖 노래를 고래고래 부르며 소란을 피운다고 했다. 호랑이를 쫓기 위해서란다.
이곳은 아직 인간 혼자 통제하는 땅이 아니다. 오늘 밤에도 개들은 짖고 나는 괴로워하겠지. 자는 거야 인간 사정이고 개들에겐 공사다망한 밤이다.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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