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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10일 아트나인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일본의 유명한 푸드스타일리스트 이지마 나미. 그는 ‘서울국제음식영화제’의 초청인사로 서울을 방문했다.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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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요리
‘서울국제음식영화제’ 초청 방한한 <카모메식당> 푸드스타일리스트 이지마 나미
오니기리(일본식 주먹밥), 무화과 퓌레를 곁들인 푸아그라 테린, 닭튀김, 스테이크 등 보기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가는 요리들이 줄지어 화면을 장식한다. 영하 30도가 넘는 남극의 밥상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일본 영화 <남극의 쉐프>(2009)는 실제 에세이집 <재미있는 남극 요리인>을 펴냈던 요리사 니시무라 준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남극기지에서 생활하는 연구원 9명의 생활을 그린 음식영화다. 9명의 아기자기한 일상보다 그들의 밥상이 주인공이라고 해도 될 만큼 식탁은 풍요롭다.
음식영화의 성패는 스크린에 요리를 재현해내는 푸드스타일리스트의 야무진 손매와 눈썰미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라이프1: 카모메 식당, 그들의 따뜻한 식탁>, <이이지마 나미의 따뜻한 식탁>, <시네마식당> 등 여러 권의 책을 한국에서도 출간해 팬을 확보한 일본의 푸드스타일리스트 이지마 나미(46)가 지난 9일부터 나흘간 열린 ‘서울국제음식영화제’의 초청인사로 서울을 방문했다. 지난 10일 <남극의 쉐프>의 음식감독으로 참여한 그를 영화제가 열렸던 아트나인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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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마 나미가 <남극의 쉐프>에서 솜씨를 발휘한 요리.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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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해 보이나 인내력 필요
영화감독 대신해
음식 완성도 높이는 역할
송강호·소지섭 영화 참여하고파 그는 푸드스타일리스트 이시모리 이즈미 선생을 21살에 만나면서 이 길에 들어서게 됐다. 이시모리는 영화 <담뽀뽀>(Tampopo, 1986)를 시작으로 <해피 해피 브레드>(2012)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도 종횡무진 활동하는 일본 최고의 푸드스타일리스트다. 영양사 양성학교를 다니던 20살의 이지마는 일본의 여느 청년들과 다름없이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었다. 요리잡지를 만드는 편집기획사에서 일했던 그는 직원들로부터 “너는 음식사진 편집이 아니라 요리를 직접 하고 싶은 것이 아니냐”는 말을 자주 들었다. 음식업계에 발이 넓었던 직원이 이시모리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그는 당시 45살이었던 이시모리를 스승으로 모셨다. 스무 살이 넘는 나이 차이에도 스승은 마치 친구처럼 그를 영화 음식 세계로 이끌었다. 가정요리나 서민음식을 재현하는 데 출중한 실력을 갖췄다는 평을 듣는 이지마는 보기에 편안하고 따라하기에 쉬운 음식을 만든다. “음식영화나 광고 분야는 의외로 가정요리나 솜씨가 뛰어난 주부가 쉽게 해내는 음식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가 만든 음식은 촬영과 동시에 폐기처분되지 않는다. 각종 인공색소와 화학적인 기술을 활용해 예쁘게만 만들고는 컷 소리와 함께 버려지는 음식이 아니다. “예쁘게 보이려고 기름조차 조리법의 양보다 더 붓지 않는다”는 그는 촬영이 끝나고 제작진과 배우들이 너도나도 그의 음식을 맛보고는 “맛있다!”는 평가를 하면 흐뭇하다. “최근 음식영화의 추세는 음식이 조금 흐트러지고 재료가 조금 흠집이 나 있더라도 실제 생활과 근접할 정도로 실감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만들어놓은 음식이 배우들의 ‘엔지’(NG)로 뜨거운 조명 아래서 말라가면 속이 탄다. “아무리 영상이지만 식거나 말라버리면 맛이 없고 맛깔스러운 느낌은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는 같은 음식을 몇번이고 다시 만든다. 시간이 없다고 재촉하는 제작진을 향해 “조명 설치하는 데 나를 오래 기다리게 해놓고 데우는 데 걸리는 고작 5분을 못 기다리냐”고 강한 어조로 항변해 시간을 번다. 20년 넘게 일본의 음식업계에서 활동하는 그는 요즘 ‘쿡방’, ‘먹방’이 대세인 한국이 10년 전 일본과 닮았다고 한다. “붐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라며 “유행에 따라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하지만은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어 “붐이 식으면 진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남는다”고 말했다. 몰려드는 방송 출연 요청을 지금도 거절하는 이유는 단호하다. “본연의 내 모습은 사라지고 상품으로 소비되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죠.” 칼국수와 만두를 좋아한다는 그는 몇년 전 한국을 방문해 한식을 배웠다. 일본 잡지 <아에라>에 ‘도쿄에 사는 외국인들의 반찬’이란 주제로 연재를 했는데, 그 작업의 일환이었다. “전은 인내심 많은 할머니가 굽는 것이 제일 맛있다는 얘기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면서 미소 가득한 표정으로 “자주 뒤집으면 전은 맛이 없어진다”는 부연설명까지 한다. 그는 한국과 관련해서 한 가지 소망이 있다. “송강호, 소지섭씨 팬입니다. 그들이 연기하는 영화라면 꼭 참여하고 싶어요.” 푸드스타일리스트는 한국에서도 인기 직업이다. 그는 후배들을 향해 “젊은 분들이 보면 화려하고 즐거워만 보이겠지만 인내력이 매우 필요한, 화려하지 않은 직업”이라며 “어려움을 이겨내고 꾸준히 오랫동안 하면 즐거운 일은 늘어나는 직업”이라고 조언한다. “푸드스타일리스트는 셰프도 아니고 음식영화 감독도 아닌 이도저도 아닌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연출자를 대신해서 음식의 완성도를 높이는 중요한 역할입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이지마 나미의 추천 레시피
음식영화 보면서 먹을 만한 요리
위로와 격려가 필요할 때: 채소로 만든 라타투유
재료: 중간 크기의 토마토 2개(깍둑썰기 할 것), 가지 2개, 애호박 2개(각각 1.5㎝ 두께로 썰 것), 파프리카 2개(빨강, 노랑 파프리카를 한입 크기로 썰 것), 양파 1개(세로로 8등분할 것), 셀러리 1개(심을 빼고 한입 크기로 썰 것), 마늘 2쪽(반을 잘라 빻아둘 것), 월계수잎 1장, 바질 1줄기, 소금 1½~2작은술, 후추 약간, 올리브오일 4큰술
만들기: ① 키친타월에 소금(분량 외)을 뿌린 뒤 가지를 깐다. 다시 그 위에 소금을 뿌린다. 5분 정도 둔 뒤 물기를 닦는다. ② 냄비에 올리브오일 3큰술과 마늘을 넣어 익히고 향이 피어오르면 가지의 양면을 구워 낸다. ③ 살짝 구운 애호박, 파프리카, 셀러리를 냄비에 넣어 뚜껑을 덮는다. 약불에 4~5분 정도 익힌다. 토마토, 가지, 월계수잎, 바질, 소금 1작은술을 넣어 뚜껑을 덮고 10분 동안 익힌다. ④ 뚜껑을 열고 가끔 저어주면서 7~8분을 더 익힌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다. ⑤ 불을 끄고 적당히 식힌 다음 올리브오일, 잘게 자른 바질을 뿌린다.
더위를 쫓아내고 싶을 때: 오차즈케
재료(2인분): 찻잎 ½큰술, 가쓰오부시 싱겁게 끓인 물 2½컵, 소금 1작은술, 밥 2공기, 절인 오이 1개, 절인 가지 1개, 기호에 따라 우메보시(매실을 소금에 절여 만든 절임요리) 등의 고명
만들기: ① 찻잎을 주전자에 넣고 소금으로 맛을 낸 가쓰오부시 육수를 붓는다. ② 밥에 1을 붓고 채소 절임, 고명을 얹는다. 그 외에 김, 연어 등을 얹어도 좋다. 가쓰오부시 싱겁게 끓인 물은 미소된장국보다 더 싱거운 정도.
여름 휴가철 볼만한 음식영화
① <담뽀뽀>(일본. 1986): 여주인 담뽀뽀가 운영하는 라멘집에서 일하게 된 트럭운전사 고로와 간이 최고의 라멘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린 코미디영화.
②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일본. 2014): 도시에서 생활하다 고향 고모리로 돌아온 이치코의 농촌생활을 담백한 일본 음식으로 그려낸 영화.
③ <벨라 마르타>(독일. 2001): 독일 함부르크의 고급 프랑스 레스토랑 요리사인 마르타의 삶과 사랑, 음식에 관한 열정, 가족애를 다룬 영화. 배우 캐서린 제타존스의 <사랑의 레시피>(미국, 2007)의 원작 영화.
음식영화 보면서 먹을 만한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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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로 만든 라타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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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차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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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철 볼만한 음식영화. 왼쪽부터 <담뽀뽀>,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벨라 마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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