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8.19 20:30
수정 : 2015.08.2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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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실. 사진 김소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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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소민의 부탄살이
덴실(38)은 불량해 보였다. 트라시강은 부탄에서도 동쪽 산골짜기다. 도시라고 해봤자 중심 거리 주변으로 건물 몇 채가 다다. 그 트라시강에서 비포장도로를 타고 쿨럭쿨럭 산을 타고 오르면 하늘에 가닿은 마을이 나온다. 그 마을에서도 꼭대기에 스님 체왕(20)과 그의 스승 단둘이 사는 절이 한 채 있다. 이 건달 행색의 남자는 그 절 앞에 스님 체왕과 함께 서 있었다.
내가 본 그는 이랬다. 살집이 있는 덩어리 몸집인데 웃통에 딱 붙는 검은 민소매 러닝셔츠를 입었다. 그 아랜 펑퍼짐한 바지가 펄럭이는데 허리춤을 대충 동여매 그가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바지가 내려갈까 나도 모르는 사이 엉덩이 쪽을 빤히 쳐다보게 됐다. 오른손 굵고 뭉툭한 손가락엔 금반지가 ‘여봐라’ 호령했다. 왼손엔 손가락 한마디의 반을 가리는 굵은 은반지가 딱 버티고 앉았다. 그것도 모자라 팔목엔 치렁치렁 은팔찌가 흔들거렸다. 목에 늘어뜨린 염주 목걸이마저 불경해 보였다. 이 뺀질거리는 스타일을 완성한 것은 젤 발라 한 올 한 올 세워 올린 헤어스타일이었다.
그는 스님과 함께 절로 들어가더니 손을 머리 이마 가슴에 모으고 절했다. 13살에 절로 들어왔다는 스님 체왕은 이 능글능글한 덴실과 나를 절 옆에 있는 스승과 자신의 거처로 초대했다. 국왕과 린포체 사진이 걸린 7평 남짓한 방안엔 예전엔 2인용 소파였을 뭉치가 놓여 있었다. 나하곤 눈도 못 마주치는 체왕 스님은 망고주스 두 잔을 내놓고 새침한 규수처럼 구석에 앉았다.
‘능글’ 덴실은 운전기사다. 벌이가 한 달 2만5000눌트룸(약 40만원)인데 거기서 집세 5000눌트룸과 차 살 때 받은 융자 1만눌트룸이 빠져나가고 나면 사는 게 빠듯하단다. 애가 다섯이라 더 그렇다. 그 애들 중에 생물학적 자식은 한 명이다. 나머지는 부인이 전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이다. 부인은 원래 친한 친구의 아내였다. 친구가 부인을 떠났을 때 전화로 이런저런 하소연 들어주다 결국 살림 차리게 됐단다. 애 넷이라니 사돈의 팔촌까지 나서 뜯어말렸다. “그 여자 마음을 아프게 할 수는 없잖아. 그리고 애들이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마흔도 안 된 ‘능글’ 덴실은 할아버지다. 의붓 큰딸이 16살에 임신했다. 또 한바탕 집안이 들끓었다. 그가 찾아다니며 달랬다. “별일 아니다. 어차피 일어난 일이니 받아들이자고 그랬지.” 그의 집엔 방이 두 칸인데 한 방엔 딸과 그의 남편, 태어난 지 석 달 된 손녀가 산다. “할아버지라 좋지. 결혼하고 싶은데 못하는 사람도 얼마나 많아. 그런데 나는 벌써 할아버지까지 됐잖아.”
그가 8살 때 부모가 이혼하고 각자 다른 살림을 차렸다. 양쪽 집에서 형제들이 우수수 생겼다. 그의 전처는 아들이 일곱 달 됐을 때 떠났다. 함께 사는 친할머니는 고도비만이라 일어서기도 힘겨워했고 친할아버지는 도박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결국 갓난쟁이를 데리고 운전에 나섰다. 손님이 타면 “좀 안고 있어라”며 맡기고 핸들을 잡았단다. 그 아들이 이제 8살이다.
“우리 애들을 위해 기도하지는 않아. 그건 이기적인 기도라고. 그러면 나쁜 카르마가 쌓인다고. 기도는 모든 생물을 위해 해야 하는 거야. 여기 이 파리를 보라고. 그 옆에다 대고 내가 ‘옴마니밧메훔’ 기도해주면 파리가 들을 거 아니야. 그럼 다음 생엔 파리 아니라 다른 것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그는 날아다니는 파리를 입술로 쫓아다니며 ‘옴마니밧메훔’을 읊어댔다. 파리가 그리 즐기는 것 같진 않았다. 얘기가 길어지자 옆에 앉아 있던 스님 체왕은 살포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스승이 출타 중이다. 절호의 찬스인 셈이다. 새벽 3시에 일어나 하는 기도는 정말 빠짐이 없느냐 물었더니, 이 스님 펄쩍 뛴다. 기도하고 공부하는 거 좋아한단다.
눈 내리깐 체왕 스님과 노닥거리는 사이, 덴실이 파리를 위한 ‘옴마니밧메홈’ 시현을 마쳤다. 모기도 죽이지 않는단다. 이도 나쁜 카르마를 피하려는 거다. “모기가 피 빨고 싶으면 빨라 그래. 모기도 할머니, 할아버지, 자식들 있을 거 아니야. 나처럼.”
덴실은 좋은 카르마를 쌓아 무엇이 되고 싶은 걸까. “다음 생엔 스님이 되고 싶어. 지금 이 삶, 나는 즐거웠어. 그런데 이만하면 됐어. 돈 걱정도 너무 지겨워. 스님이 되면 결혼 안 할 거야. 아내가 다른 남자 쳐다보면 내가 화가 나고 내가 그러면 아내가 상처받잖아. 그런 긴장은 이생에서 한 걸로 족하다고. 다음 생엔 불경 읊으며 신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그런데 혹시 운전사 취직자리 좀 알아? 지금 자리 언제 잘릴지 몰라.”
그 ‘불량기’ 패션의 정체는 이랬다. 왼손에 낀 은색 반지는 직접 디자인했다. 옴마니밧메훔 가운데 홈을 새겨 넣었다. 덜렁거리는 은색 팔찌는 할머니, 새엄마의 엄마 것이었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그 할머니가 그렇게 좋았단다. 기도 목걸이는 대대로 내려오는 귀한 것이다. 이걸 들고 매일 기도드린다. 오른손에 낀 금반지는 아내의 선물이다.
김소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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