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여의도 정치를 본격적으로 다룬 드라마 ‘어셈블리’ 등장인물과 실제 정치인 비교
시청률은 5% 안팎에 불과하다. 정치 현실을 ‘좀 안다는’ 사람들은 안타까워하지만, 같은 시간대 <에스비에스> 드라마 ‘용팔이’에 밀린다. 기대보다 비현실적이고 정치를 지나치게 희화화·악마화한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뒤틀린 사회구조를 바로잡으려면 정치를 바로세워야 한다는 주제의식 하나만은 우직하다. <한국방송>의 ‘어셈블리’는 용접공 해고노동자 출신 여당 의원 진상필을 통해 ‘권력을 향한’ 정치공학에 몰입하는 국회의원과 의회를 거수기로 삼는 정치의 속살을 파고든 ‘본격 정치 드라마’다.
드라마엔 여러 유형의 정치인이 등장한다. 좌충우돌하지만 희망을 이야기하는 소신가, 목적을 이루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야심가, 자신의 위상과 계파의 이익을 지키려고 뒷거래도 서슴지 않는 구악형 등. 캐릭터들은 매우 과장돼 있지만, 실존하는 어떤 정치인, 실제의 어떤 사건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물어봤다. 현실 정치인 가운데 ‘어셈블리’의 등장인물과 가장 유사한 사람이 누구인지, 국회의원을 제외하면 여의도 정치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때론 개입도 하는 국회 전·현직 보좌관, 정치평론가, 정치부 기자 등 10명에게 물어봤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이들의 답변은 ‘재미’로 보면 된다. 하지만 드라마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한 터, 우리의 정치가 어떠해야 하는지 잠시 생각해봐도 좋겠다. 응답자 모두의 요청으로 이들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진상필 용접공·해고노동자 출신 여당 의원
조선소에서 정리해고를 당하고 3년째 복직투쟁을 하던 어느 날, 보수 집권당인 국민당의 전략공천을 받아 경제시의 임기 1년짜리 국회의원이 된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원론적이지만 ‘국민을 위한 정치’. 계파의 이익, 다음 총선에서의 유불리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기성 정치인들과의 갈등과 충돌은 당연한 수순이다. 돌발행동 때문에 국회에선 ‘진상’으로 손가락질받지만 대중적인 지지는 높아진다. 대통령이 자신의 지지율 하락을 만회하려고 제안한 사무총장직을 거절하면서 쓴소리도 퍼붓는다.
응답자의 50%는 이런 진상필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고 답했다. “우연히 노동운동에 눈을 뜨게 되고, 정치에 입문해서도 비주류로 지내다 옳고 그름에 관한 정의감에 바탕을 두고 의견을 개진하던 모습이 비슷하다”, “3당 합당 할 때 마지막까지 ‘이건 아니다’라고 했던 모습이 연상된다”, “당 주류로부터는 거부당했지만 ‘입바른 소리’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때가 생각난다” 등의 설명이 뒤따랐다.
진상필이 ‘비주류 소장파’와 유사하다는 점을 들어 남경필 경기지사와 정태근 전 새누리당 의원을, 노동운동가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꼽은 이도 있었다. 진상필의 필리버스터 덕분에 복수응답 가운데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언급한 이도 많았다.
최인경 청와대 행정관 출신 엘리트 보좌관
서울대 평등파 운동권 동아리의 선배 백도현을 ‘정신적 지주’로 존경해 그의 비서관으로 정치권에 발을 디뎠고,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후보자 즉 현직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 청와대 정무수석실 선임행정관을 지냈다. 경제시 보궐선거에 출마하려 했지만 백도현의 사욕 때문에 좌절됐고, 진상필의 보좌관까지 떠맡게 됐다. 처음엔 ‘백도현 라인’이었지만, 진상필의 진심에 감복해 그를 지지하며 정치적 길잡이 역할을 맡는다.
최인경은 ‘어셈블리’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가장 비현실적이다. 그는 드라마 안에서 사실상 ‘정답’을 이야기하는데, 현실에서 이런 인물은 드물다. 더구나 청와대 선임행정관은 2급이고, 국회 보좌관은 최고참이 4급인데, 2급 선임행정관을 하다 4급 보좌관으로 ‘주저앉는’ 사례도 거의 없다. 국회의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끼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보좌관도 흔치 않다.
응답자들도 모두 최인경과 유사한 인물은 없다고 답했다. 어떤 이는 “최인경이라는 캐릭터는 판타지”라고 했다. 다만, 범위를 ‘훌륭한 참모’로 넓혀볼 경우 참여정부 때의 이호철 민정수석,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시절의 유승민 비서실장이 그나마 떠올려볼 수 있는 인물이라는 복수응답이 있었다.
백도현 운동권 출신 여당 실세 사무총장
서울대 평등파 운동권 동아리를 주도했고, 하버드대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 정치인이다. 현직 대통령의 측근 계파인 친청파 좌장으로, 대통령 말고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실세다. 하지만 1년 남은 다음 총선 때, 자신이 재선을 한 지역구에 야당의 대선주자급 정치인이 출마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고향인 경제시로 지역구를 바꾸기로 결심하고 진상필을 끊임없이 위기로 몰아넣는다.
백도현이 재선 의원에 실세 사무총장이라는 점 덕분에, 응답자의 40%는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을 그와 유사하다고 답했다. 친박근혜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 의원은 사석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를 정도로 박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으며, 지난해 새누리당의 사무총장을 맡기도 했다. 공천을 좌우하는 ‘여당 실세 사무총장’이라는 같은 이유로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권영세 전 주중대사, 김대중 정부 시절의 한화갑 전 의원을 꼽은 이도 있었다.
백도현의 개혁적인 이미지에 주목한 이들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원희룡 제주지사와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거론됐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시절 혁신위원장을 맡아 공천 개혁을 주도한 바 있는 홍준표 경남지사를 떠올린 이도 있었다.
홍찬미 실세와 가까운 여당 대변인
변호사 출신의 비례대표 의원으로, 백도현의 최측근이어서 초선이지만 국민당의 주요 업무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차갑고 깐깐한 이미지에 똑 부러지는 말투로 당 대변인직도 맡고 있다. 다음 총선에서 지역구 공천을 받아 재선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그의 최대 목표다. 점집에서 받아온 부적을 백도현에게 건네는 등 ‘허당 매력’도 보여준다.
홍찬미와 가까운 현실의 인물은 없다는 의견이 30%였고, 응답자의 20%가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을 지목했다. 지금도 ‘여성 대변인’ 하면 나 의원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그는 초선 시절인 17대 국회 때 한나라당 대변인을 맡아 강한 인상을 남겼다. 홍찬미처럼 변호사 출신 비례대표로 여의도에 입성했다.
정미경 새누리당 의원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변호사 출신 비례대표 대변인이라는 이력으로,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과 김현숙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은 현 정권에서 각각 대변인과 원내대변인을 지냈다는 이유로 이름을 올렸다.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변인을 지낸 이언주 의원도 변호사 이력이 유사점으로 꼽혔다.
박춘섭 반청계 수장 5선 의원
박춘섭은 현직 대통령에게 대립각을 세우는 반청계의 수장으로 백도현과 라이벌 관계다. 오랜 정치 경력으로 정적과는 협상을 통해, 계파원들은 공천과 돈을 통해 자기 뜻을 관철시키는 노회함을 발휘한다. 부친에게 물려받은 재산 덕분에 경제적으로도 풍족하다.
응답자의 40%는 친이명박계 핵심이자 지난 정권의 실세였던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을 그와 닮은 인물로 봤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를 지낼 때부터 그와 거리를 두었던 이 의원은 친이계 핵심이 되면서 더욱 멀어졌고, 지금도 박 대통령에게 날선 비판을 하고 있다. 최근 이 의원은 ‘어셈블리’를 즐겨본다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드라마는 나의 처음을 기억하게 한다. 진상필의 모습에서 나를 찾게 된다”고 썼는데, 응답자들의 관점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점이 흥미롭다.
응답자의 30%는 협상에 능한 중진 정치인이란 점에서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박춘섭의 닮은꼴로 꼽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한 계파의 수장이라는 점에서 각각 10%의 응답자로부터 비슷한 인물로 거론됐다.
조웅규 운동권 출신 야당 원내수석부대표
백도현의 서울대 운동권 동아리 동기로 야당인 한국민주당의 원내지도부를 맡고 있다. ‘재선 의원’으로 또다른 야당인 사회당과 선거연대나 정책연대 등 협력해야 할 때 앞장선다. 여당 지도부인 백도현과는 동기로서 우정과 다른 당 의원으로서의 경쟁심이 뒤섞인 관계를 보여주며, 법안과 예산안을 연계해 협상을 시도하기도 한다. 야당 전당대회에서 경쟁 파벌이 지도부가 되자, ‘철새’라는 비난을 감수하며 여당인 국민당에 입당한다.
“운동권 출신으로 여야를 넘나드는 인맥이 있다” “서글서글한 성격 때문인지 여당 의원들과도 친하게 잘 지낸다” “퐁당퐁당 재선이다” 등의 이유로 응답자의 40%는 우상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조웅규와 비슷하다고 답했다. 우 의원은 1987년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1기 부의장 출신으로, 야권의 대표적인 ‘86세대 정치인’으로 꼽힌다.
조웅규와 닮은 인물은 없다는 답도 40%였다. 새누리당 의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협상과 타협을 중시했던 박상천 전 민주통합당 의원,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각각 한 차례씩 거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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