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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9.16 19:42 수정 : 2015.09.17 11:27

사진 홍창욱 제공

[매거진 esc] 홍창욱의 제주살이

2009년 11월30일, 나는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돈도 경험도 연고도 없는 제주에서 만삭 아내와 함께 30년은 족히 됐을 것 같은 아파트에서 제주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제주에서의 삶이 새로운 트렌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서울의 지인들은 우리 가족을 두고 ‘우려 반 걱정 반’이었다. 취업하자마자 애초 계약한 급여보다 30만원 깎인데다 이사와 주택 임대에 들인 1000만원의 비용, 아내의 출산에 따른 수입 감소로 빠듯한 살림살이를 해야 했다. 처음엔 가족 말고는 만날 사람이 없는 저녁이 좋지만은 않았다.

지난 6년 동안 나의 핵심 화두는 ‘내 삶의 캔버스에 나를 제대로 그리기’였다. 무엇보다 내가 자리한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시선’을 기르려고 노력했다. 때로 이 ‘시선’은 ‘제주 이주자가 바라본 제주에서의 삶’이었고 ‘육아하는 아빠의 분투기’였으며 ‘제주와 육지를 연결하는 네트워커’이기도 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제주, 살아보니 어때?>라는 책이 내 이름으로 나왔고, 제주 농촌마을에서 영농조합법인 ‘무릉외갓집’을 운영하고 있다.

제주는 요즘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곳이 되었다. 2010년 유입인구가 유출인구를 앞지르기 시작해 올해는 매달 1000명 이상이 제주에 살기 위해 이주하고 있고, 영어교육도시, 혁신도시, 첨단과학기술단지 등 새로운 주거·업무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그뿐이랴. 제주에서 한달 살기, 청년 워킹홀리데이, 마을 플리마켓 등 새로운 시도가 기존의 ‘섬’ 여행 패턴을 넘어 교류와 휴양, 삶의 방향성에 대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작은 ‘화두’가 된 것 같다. 나 또한 2000년 제주의 한 학술회의에 참석하며 첫발을 밟은 지 10년도 안 되어 그 한복판에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아이엠에프(IMF) 사태 즈음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녔다. <지식채널e>에 소개된 개그맨 박지선씨의 말처럼 빈 도화지처럼 던져진 대학 생활과 20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허무하게 보냈다. 20대 후반에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입대했는데, 군 생활 3년 동안 아버지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뜨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군 숙소 바닥에 짓이겨진 개미를 보고는 짧은 메모를 남기며 시작한 시 창작이 제대할 때 즈음 제법 두꺼운 시 노트가 되어 있었다.

‘내 고향 별들이 이리도 밝구나’에서 시작한 서정시가 ‘이제 살아지는 것에 대하여’라는 다소 묵직한 이야기로 흐를 때쯤 나는 인생 사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 시간을 내가 주도하는 삶을 살겠다며 정식 직장 대신 ‘알바’만 하는 생활을 선택했으나, 번번이 잔고 0원을 확인하고선 6개월 만에 백기를 들고 투항하게 된 것이다.

생애 첫 직장인 공익재단에서 일하며 결혼을 하고 나니 마침 이명박 정부가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는 하수상한 시절이 되었고, 아내와 나는 매일 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논했던 것 같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영어수업을 듣고, 밤늦게 퇴근하면 씻고 잠자리에 들기 바쁜 삶. 주말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의 결혼식을 묵묵히 촬영하기 위해 무거운 카메라를 들어야 했던 그런 삶. 33살의 내가 나에게 첫번째 질문을 던졌다. ‘과연 이것이 내가 원하던 삶인가?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제주도 살아보기, 시집 출간하기, 가족과 세계여행.’ 대한민국 국민 10명 중 8명은 꼽았을 삶의 버킷리스트일지언정 내가 내놓은 이 뻔한 대답이 마치 탈출구처럼 보였고, 현실을 딛고 있기에 너무나 고단한 일상에 균열을 내기 위한 작은 메아리였던 것 같다. 용기를 내어 “제주도에서 살아보자”고 했더니 아내는 “제주에 가면 대한민국에서 더는 도망갈 곳이 없다”는 비장한 멘트와 함께 “월 200만원 이상 벌 자신이 있으면 가겠다”는 아주 확실한 가이드라인도 주었다.

홍창욱 <제주, 살아보니 어때?>지은이
지금 나는 제주에 6년째 살고 있으니 내 생에 첫 꿈을 실현시킨 행운아가 된 셈이다. ‘제주 태생 사람을 단 한 사람만이라도 사귀어보자’는 목표를 이주 초기에 가졌는데, 지금은 제주 농촌마을에서 제주 사람들과 일하고 있다. 내 작은 꿈이었던 제주에서의 삶, 그리고 새롭게 시작되는 미래의 꿈에 대한 이야기로 여러분들을 찾아갈 계획이다. 제주에서 내 삶의 주인 되기를 위하여.

홍창욱 <제주, 살아보니 어때?>지은이

※ 제주에서의 삶과 꿈을 이야기하는 ‘홍창욱의 제주살이’가 이번주부터 격주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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