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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9.16 19:50 수정 : 2015.09.17 10:27

서핑 보드 위에서 일어서는 동작인 ‘테이크오프’를 시도하는 서정민 기자. 이형주 팀장 제공

[매거진 esc] 라이프
‘생초보’ 서정민 기자의 ‘가을 서핑’ 도전기…파도 깨끗한 9~10월이 입문 알맞아

‘춥진 않을까?’ 지난 8일 강원 영동과 영서의 경계인 태백산맥을 관통하는 미시령터널 속 어둠은 긴장감을 자아냈다. 터널 바깥 세상은 ‘눈부시게 맑음’이었다. 하늘은 높고 푸르렀고, 햇살은 따가워도 공기는 제법 선선했다. 바야흐로 가을이 온 것이다. ‘근데 이 가을에 서핑이라고?’ 그렇다. 나는 ‘가을 서핑’을 하러 양양 바다로 향하고 있었다.

서핑의 계절은 여름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와이 와이키키해변에서나 하는 줄로만 알았던 서핑을 국내에서도 하는 장면이 몇년 전부터 부쩍 목격됐다. 제주도, 부산, 양양 등지로 서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올여름 특히 폭발적으로 늘었다. 나도 최신 흐름에 올라타볼까 하는 마음이 일었지만, 그뿐이었다. 어영부영하는 사이 여름은 지났고, 야심찬 도전은 내년 여름을 기약해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서핑 시즌은 9~10월”이라는 믿기 힘든 얘기를 들었다. 반신반의하며 양양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도착한 곳은 하조대해수욕장 인근 ‘서피비치’. 올해 7월초 문을 연 국내 유일의 ‘서핑 전용 해변’이다. 라온서피리조트의 박준규 대표는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있던 이곳을 활용할 수 있는 허가를 양양군청으로부터 받았다. 일반 해수욕객 없이 안전문제로부터 자유롭게 서핑을 즐길 수 있어 ‘서퍼들의 천국’으로 새롭게 떠오른 곳이다. “오늘 아주 잘 오셨네요. 파도가 1m 높이로 적당하고, 표면도 깨끗하게 올라오거든요.” 박 대표가 반겼다. 그는 “바람은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불어 파도를 눌러주는 게 가장 좋고, 아니면 차라리 지금처럼 없는 게 낫다. 반대로 바다에서 육지 쪽으로 불면 파도가 지저분해진다”고 설명했다.

동해의 가을 파도는 보통 0.5~1.5m 높이라고 한다. “여름에는 날씨가 좋지만 파도가 너무 낮고, 겨울에는 파도가 높아서 좋지만 너무 춥잖아요. 적당한 파도 높이와 좋은 날씨가 조화를 이루는 가을을 두고 서핑 시즌이라고 하는 건 그래서예요.” 그래도 가을 바다에 들어가는 건 낯설다. 우선 추위 걱정부터 앞선다. “지금 수온은 한여름 수온과 별 차이 없어요. 물에 있으면 오히려 따뜻해요. 더군다나 ‘웨트슈트’(잠수복)를 입으면 추위를 거의 못 느껴요.”

몸에 착 달라붙는 웨트슈트를 낑낑대며 입었다. 입는 것부터가 운동이다. 벌써 땀이 살짝 난다. 웨트슈트 차림의 나는 “스노보드를 탈 줄 아는데, 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물었다. “스노보드와 웨이크보드 좀 타봤다며 자신만만해하는 분들 많아요. 하지만 서핑이랑 전혀 상관없어요. 그런 분들도 바다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 한없이 겸손해지죠.” 베테랑 서퍼인 이형주 팀장이 답했다.

임기남 강사와 함께 바다로 나갔다. 강습은 매일 오전 10시, 오후 1시와 4시 이렇게 하루 세 차례 있다. 4시 강습을 예약한 3명이 시간이 다 되도록 나타나지 않는 바람에 혼자 개인교습을 받게 됐다. 바다에는 몇명의 서퍼들이 파도를 즐기고 있었다. 여름에는 수백명이 득시글거렸을 이곳을 거의 전세내다시피 하니 기분이 묘했다. 모래사장에서 서핑보드의 명칭과 기본자세를 배웠다. 보드에 배를 깔고 엎드려 손을 젓는 동작인 ‘패들링’, 보드 위에서 일어서는 동작인 ‘테이크오프’를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바다 위에서 이동하기 위해 팔을 젓는 ‘패들링’을 연습하고 있다. 이형주 팀장 제공

땀흘려 지상연습 뒤 바다로
웨트슈트 입으니 추위 못느껴
보드 위 제대로 서보지도 못하고
중심 잃고 물속으로 ‘꼬르륵’
다음날 온몸 쑤셔도 ‘파도가 부른다’

패들링은 보드를 타고 바다 위를 움직일 때 필요한 동작이다. 먼바다로 나간 뒤 보드를 돌려 땅을 향한다. 팔을 열심히 휘저어 보드 속도를 파도 속도와 비슷하게 맞추면 보드가 뒤에서 밀려오는 파도 위에 올라타게 된다. 이제 테이크오프의 시간이다. 보드에 엎드려 있다가 순간적으로 두 발을 가슴 쪽으로 끌어와 바닥을 잘 디딘 뒤 균형을 잡으며 일어서야 한다. 허벅지, 복부, 가슴 등에 순간적인 힘이 들어간다. 땅에서 자꾸 연습하다 보니 군 시절 유격장에서 엎드렸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던 피티체조가 떠올랐다. 숨이 차고 땀이 흘렀다.

30분가량 지상 강습을 마친 뒤 바다로 들어갔다. 춥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바닷물은 미적지근했다. 몸이 잔뜩 덥혀진 상태로 내 키보다 큰 보드를 들고 파도를 헤치며 걸어 들어가다 보니 차라리 물이 더 시원했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보드와 오른 발목을 ‘리시’라는 줄로 묶었다. 그래야 보드를 놓치거나 넘어져도 금세 보드를 다시 잡을 수 있다.

얕은 바다에 들어가 보드에 엎드렸다. 원래는 패들링을 해야 하지만, 초보자가 파도 속도를 따라잡는 게 쉬운 일은 아니어서 우선은 강사가 보드를 힘차게 밀어주었다. 보드가 앞으로 주욱 나아가다 파도에 올라타는가 싶은 순간 강사가 “업!” 하고 외쳤다. 보드 위에 일어서라는 신호다. 두 다리를 박차고 일어서려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대로 중심을 잃고 고꾸라져 물속에 머리를 처박은 것이다. 스노보드니 웨이크보드니 난다 긴다 하던 이도 바다에 들어가면 겸손해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닫는 데는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몇 번을 더 해봐도 하는 족족 무너졌다. ‘차라리 스노보드처럼 아예 두 발이 묶여 있으면 좋으련만….’ 잠깐이라도 좋으니 일단 제대로 서보기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이 머리를 지배했다. “두 발로 완전히 자리잡은 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일어나야 해요. 자리잡기도 전에 일어서려 하니 자꾸 넘어지잖아요.” 강사의 지적을 듣고는 바깥으로 나왔다. 모래사장에서 동작을 다시 익히고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테이크오프 동작을 단계별로 천천히 끊어가며 했다. ‘서두르지 말자, 서두르지 말자.’

‘테이크오프’를 시도하다 중심을 잃고 넘어지려 하고 있다. 이형주 팀장 제공

다시 도전이다. 한참 물을 먹은 끝에 마침내 보드 위에 균형을 잡고 섰다. ‘성공이다!’ 바다가 눈 아래로 내려다보이고, 높은 곳의 공기가 왠지 더 상쾌하게 느껴졌다. 하늘을 나는 것도 아닌데, 그냥 기분이 그랬다는 거다. 이제부터 서핑의 참맛을 느끼는 건가 싶은 순간, 갑자기 모든 게 슬로비디오로 바뀌더니 곧 멈춰버렸다. 일어서자마자 파도가 사라진 것이다. 아쉽기 그지없었다.

이번엔 좀더 멀리 나가보기로 했다. 발이 안 닿는 깊은 곳에선 강사가 밀어줄 수 없다. 스스로 패들링을 해서 파도에 올라타야 한다. 팔을 아무리 휘저어도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파도는 나를 지나쳐 갔고, 얼마 뒤 균형을 잃은 나는 일어서려는 시도조차 못한 채 물속으로 잠겼다. 사실 일어설 힘도 없었다. 온몸이 후들거리고 힘이 쭉 빠졌다. 바다에 들어온 지 한 시간도 채 안 됐을 때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바다 밖으로 나왔다.

“이만하면 나쁘지 않아요. 한 번도 못 일어서는 분들도 많아요. 서핑을 해보고 다들 그래요. ‘기초체력을 길러야겠다’고요.” 강사의 말도 위로가 되진 못했다. 내 저질 체력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이제 처음인걸요. 세 번은 타야 일어서는 게 익숙해져요. 이후에는 신세계가 열리죠. 일어서고 나면 옆으로도 가고 싶고, 뭐도 하고 싶고. 그때부터 서핑은 마약이에요.” 박준규 대표가 말했다.

다음날 온몸이 안 쑤신 데가 없었다. 움직일 때마다 욱신거렸다. 그때마다 입에서 짠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짠맛이 그리웠다. 넘실대는 파도가 자꾸만 부르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 다음 서핑을 계획하고 있다.

양양/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정보 강원도 양양 서피비치의 라온서피리조트는 강습·렌털·숙박(캠핑·카라반) 서비스를 제공한다. 10월까지 서울 왕복 셔틀버스 2만원, 초급 강습 패키지 5만3000원, 셔틀버스·강습 패키지 6만9000원. ‘위메이크 서피비치’ 누리집(surfyybeach.modoo.at)에서 예약할 수 있다. (02)755-0079. 19~20일 서피비치에서 한국서핑협회 주최 제5회 KPSA 서핑대회가 열린다. 070-4209-7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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