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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9.16 20:48 수정 : 2015.09.17 10:26

비행기에서 바라본 네팔 히말라야 산맥의 에베레스트산(8848m) 모습. 가장 높은 삼각 봉우리가 에베레스트, 그 오른쪽 봉우리가 로체(8516m)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네팔 세계유산 여행
대지진 넉달여 만에 둘러본 네팔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정부 “문화유산 탐방·트레킹 안전 문제없어”

2400㎞에 이른다는 히말라야 산맥. 이 중 850㎞가 네팔 북부지역에 걸쳐 있다. 네팔을 찾는 한국인들도 대부분 설산에 반한 이들이다. 한국인 여행객(지난해 약 2만4000명)의 80% 이상이 히말라야 트레킹을 즐기려는 이들이라고 한다. 한국인 트레커들에게 인기 있는 곳은 안나푸르나·에베레스트·랑탕 세 지역이다. 거리와 난이도에 따라 일주일에서 20일 안팎까지의 트레킹을 즐기며, 볼수록 아름답고 신비로운 설산 고봉의 매력에 빠져들곤 한다. 적어도 지난 4월25일 네팔 대지진 이전까지는 그랬다. 네팔 설산 탐방객 발길은 지진 이후 뚝 끊겼다. 전체 관광객도 지난해 이맘때에 비해 4분의 1 이하로 줄었다고 한다.

지난주 네팔의 주요 명소들(히말라야 트레킹이 아닌)을 둘러볼 기회를 얻었다. 젊은 시절부터 네팔과 히말라야를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는, 한국의 내로라하는 산악인 일행과 함께한 일정이었다. 산악인들로선 트레킹 지역 지진 피해 상황과 분위기를 파악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했다.

“안나푸르나 등 본격 트레킹은 우기 끝나야”

일행 모두가 궁금해한 건 대지진 여파로 인한 여행 안전 문제였다. 특히 산악인들은 안나푸르나 등 트레킹의 안전성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랑탕 지역을 제외하곤 문제가 없다”고 운을 뗀 카트만두 시내 한 호텔 관계자는 “지진 뒤 넉달이 지나고, 우기가 끝나가는데도 관광객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세계 언론들이 피해 현장을 지속적으로, 과장되게 보도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네팔 문화관광장관도 일행과 만난 자리에서 안전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진으로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의 15%가량이 유실됐지만,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안나푸르나 등 최고의 트레킹 코스는 그대로 살아 있다”고 했다. 그는 “안나푸르나는 안전 점검이 이미 끝났고, 에베레스트는 마무리 단계에 있다”며 “몬순(우기·9월말까지) 시기가 끝나면 걱정 없이 탐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진 피해가 심한 랑탕의 경우엔 복구에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외교부는 네팔 여행 안전등급을 9월 중순 현재, 지진 직후에 내렸던 ‘철수 권고’(안나푸르나·에베레스트·랑탕 등 산악지역 세곳)와 ‘여행 자제’(네팔의 다른 지역)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네팔 한국대사관 쪽은 “지진 이후 우기가 겹치면서 산사태가 우려돼 적색(철수 권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우기 뒤에 등급 하향 조정 여부를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 둘러본 카트만두 일대 일부 지역엔 지진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거리는 평온과 활기를 되찾은 모습이었다. “20%가량이 파괴됐다”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들도 복구·정리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일부 유적지·트레킹 코스는 훼손
“한국인 여행자 많이 찾는
안나푸르나 안전점검 마쳤다”
거리 평온 활기 되찾아
남부 저지대의 세계자연유산
치트완국립공원 ‘야생동물 천국’

네팔 세계유산 여행
세계자연유산 치트완…호랑이·코뿔소 서식지

히말라야 설경을 감상하며 걷고 생각하며 먹고 자는 일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네팔의 보석이 히말라야에서만 반짝이는 건 아니다. 히말라야가 아니더라도 네팔엔 덜 알려진 경관들과 이색 체험거리들이 많다. 유럽인 여행객의 70~80%는 네팔 여행 때 트레킹보다는 역사와 문화, 청정 자연생태 체험 등에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네팔 사정에 밝은 한 산악인은 “네팔은 여러 측면에서 ‘극과 극’이 대비를 이루며 공존하는 나라”라고 했다. 빈부격차가 극심하고,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데도 ‘행복지수’는 세계 최고권인데다, 북쪽엔 에베레스트(8848m)를 비롯해 만년설에 덮인 세계 최고의 봉우리들이 즐비하지만, 남쪽엔 해발 60m의 고온다습한 저지대가 자리하고 있다.

규모와 중요성에 비해 우리에겐 덜 알려진, 네팔 남부 저지대의 치트완국립공원(932㎢)을 찾았다. 바다가 없는 네팔에서 가장 낮은 지대이면서, 네팔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2곳 중 하나다. 사라져가는 벵골호랑이와 외뿔코뿔소의 마지막 서식지 중 한곳으로, 표범·악어·코끼리·사슴 등 다양한 야생동물들과 공작 등 조류 450종이 밀림지대에 살고 있다.

국립공원 안내인 크라슈나 타파(49)는 “호랑이와 코뿔소는 19세기부터 1950년대초까지 이뤄진 마구잡이 사냥으로 한때 수가 크게 줄었지만, 이후 보호정책으로 지금은 400여마리의 벵골호랑이와 530여마리의 코뿔소가 살고 있다”고 말했다. 밀림은 대부분 ‘땅에 묻어도 천년을 가고, 물에 잠겨도 천년을 가고, 가구로 만들어도 천년을 간다’는 매우 단단한 목질의 ‘살 나무’(사라수·인도나왕) 숲이다. 네팔의 오래된 힌두사원과 불교사원에 사용된 목재도 대부분 살 나무다.

치트완국립공원 정글에서 마주친 외뿔코뿔소.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치트완국립공원안 랍티 강에서 카누를 타고 이동하는 타루족 주민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치트완국립공원을 탐방하는 방식은 네가지 정도다. 공원 주변에 사는 타루족의 전통마을을 탐방하며 순박한 주민들의 일상 만나보기, 카누를 타고 랍티 강을 따라가며 악어와 각종 조류를 관찰하기, 빽빽한 살 나무 숲길을 따라 걸으며 사슴·들소떼 감상하기, 그리고 코뿔소와 호랑이 등과 마주칠 것을 기대하며 코끼리를 타고 숲을 탐방하는 일이다. 운 좋게도 일행은 호랑이 빼고는 다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었다. 풀을 뜯어 입에 가득 물고 씹으며 숲을 헤집고 다니는 코뿔소와, 눈만 내놓고 물속에 잠겨 있거나 강가에 납작 엎드린 채 먹이를 노리고 있는 길이 2m 안팎의 악어들의 모습에 일행은 탄성을 내질렀다. 이런 야생의 숲에서 타루족 주민들은 편안한 표정으로 나물을 채취하거나 카누를 타고 삿대질을 하며 물길을 오고 갔다. 안내인 타파는 “지금은 더운 때여서 호랑이는 깊은 숲 그늘에 들어가 있다”며 “기온이 내려가는 겨울철에 햇빛을 쬐러 숲 밖으로 나온다”고 했다.

치트완국립공원 탐방의 적기는 우기(6~9월)가 끝나는 10월 이후부터 이듬해 2~3월까지다. 9월까지는 기온과 습도가 매우 높아 후텁지근하다.

구름 위에서 만난 히말라야 만년설봉 장관

고온다습한 저지대 체험을 마친 일행은 히말라야 고봉들의 만년설이 바라다보이는 온화한 도시 포카라로 향했다. 네팔에선 흔히 지형을 3개 단위로 구분한다. 해발 300m 이하 지역은 평지, 300~3000m 지역은 언덕(힐) 지대라 부른다. 산으로 부르는 건 3000m 이상의 고지대다. 5000m 이상 오를 때만 ‘등반’이라는 용어를 쓴다. 일행은 버스를 타고 야산 사이로 비포장길이 이어지는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한 평지를 거쳐, 하늘을 가리는 봉우리들이 솟은 깊은 협곡을 따라 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언덕 지대’를 5시간이나 달린 끝에, 비로소 하늘에 닿을 듯한 설봉들이 비구름 더미와 숨바꼭질하는 ‘산’의 일부를 간신히 바라볼 수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캠프’ 트레킹 하산길 민가에서 만난 소녀.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포카라는 네팔 서부 히말라야의 대표적인 산 무리인 안나푸르나 일대 트레킹의 전초기지 구실을 하는, 인구 50만명의 네팔 제2도시다. 아직 우기여서 산사태 우려가 가시지 않은 산악지대 트레킹 대신, 해발 2000m인 이른바 ‘오스트레일리아 캠프’로 불리는 구룽족 마을 전망대로 올라 안나푸르나 주변의 설봉 일부를 감상하기로 했다.

하지만 비를 잔뜩 품은 구름들은 설산 줄기를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 장관을 이룬다는 페와 호수에 비친 설봉 행렬도, 고 박영석 등 산악인 3명이 마지막 등반을 하던 안나푸르나 남벽도, 주민들이 신성시해 탐방을 허락하지 않는 마차푸차레도 이틀 동안 모두 비구름 속에 숨어 있었다. 히말라야 설산들을 만난 건, 카트만두로 돌아오는 비행기 창가에서였다. 탑승장 앞에서 공항 직원이 말했다. “이 비행기 좌석은 선착순이다. 왼쪽 창가 좌석을 차지하라.” 바다처럼 깔린 구름 더미 위로 긴 띠를 이루며 솟은 설봉 행렬이 아득하지만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카트만두에 도착한 뒤 경비행기 투어를 통해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설산지대의 진면목을 대할 수 있었다. 목숨을 건 산행을 통해서나 감상할 수 있는 경관을, 이렇게 손쉽게 만나봐도 되는 걸까. 죄스러운 마음을 누르며 오른 경비행기에서의 30분은 아무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악마의 이빨’이라 불리는 뾰족한 봉우리 가우리상카르(7134m)와 부드럽게 다가오는 멜룽체(7161m), 그리고 8000m를 넘는 초오유(8201m)와 지구상의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사가르마타·8848m), 로체(8516m)와 마칼루(8463m)…. 얼핏 보기에 규모조차 가늠할 수 없는 이 장엄한 파노라마의 규모를 알려주는 건, 산봉들마다 겹겹이 두른 구름띠들과 구름 밑으로 잠깐씩 드러나는 깊고 어두운 골짜기들이었다.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찍어온 사진들을 뒤적이며 감동을 되새기는데, 수십번 히말라야 산봉들을 올랐다는 60대 산악인이 말했다. “운이 좋군요. 이렇게 선명한 히말라야를 만난 사람도 드물 거요. 물론, 내 발로 걸어 오른 설산 능선에 앉아 맛보는 감동에 비할 건 아니지만….”

카트만두/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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