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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한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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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양윤정의 패션을 부탁해
‘팬심’까지는 아니지만 배우 한효주를 오래전부터 주목해왔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주연을 맡았던 드라마 <찬란한 유산>에서는 진심이 서린 배우로 점찍었고, 영화 <감시자들>에서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한효주!’라고 여길 만큼 그녀의 연기에 압도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착하기만 한 이미지는 다소 안타까웠다. 악역으로의 변신과는 거리가 멀었고, 소위 말하는 ‘부티’ 나는 얼굴이 아니라서 가난하지만 꿋꿋한 역할을 주로 맡아야 했다. 당연히 이렇다 할 패션을 선보인 적도 드물었다. 시청률 높은 드라마의 여주인공에게 필사적인 마케팅을 꾀하는 패션계에서 한효주가 흥미로운 아이콘이었던 적 없었음이 그 증거다. 하지만 드라마 <찬란한 유산> 때 한효주가 입은 스키니진과, 그에 맞춰 신은 플랫슈즈는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드라마가 방영되던 6년 전만 해도, 여배우들의 기본 착장은 스키니진과 하이힐이었다. 물리적으로 가는 다리는 만들 수 있지만, 짧은 다리는 대체가 불가능하기에 그들에게 하이힐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한효주는 과감히 하이힐에서 내려와 플랫슈즈를 선택했다. 드라마에서 그가 맡은, 가난하지만 당차고 발로 뛰어다니는 고은성의 캐릭터에 맞게 하이힐을 버린 것이다. 이 자신감은 그녀의 길고 가는 다리에서 비롯됐겠지만, 그렇다 해도 조금이라도 더 길어 보이고자 하는 욕심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았을 테다. 그 선택은 캐릭터에 힘을 더했고, 많은 여자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나도 잠시 내 다리의 굵기 및 길이를 망각하고 남몰래 라이트블루 스키니진과 플랫슈즈를 구매하고, 그의 룩을 떠올리며 설??? 영화 <뷰티인사이드>에서도 한효주의 패션은 나를 설레게 만든다. 지적이고 부드러운, 그러면서도 해맑은 여자 홍이수의 패션 키워드는 클래식이다. 니트와 펜슬스커트, 모직코트 등 매일 입어도 질리지 않을 기본 아이템이 주를 이뤘다. 영화가 끝난 뒤 ‘한효주가 입은 저거!’라는 탄성이 나올 히트 예감 아이템은, 이번에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입은 터틀넥에 꽂혔다. 흔히 ‘목폴라’라고 불리는 터틀넥은 가을이 오면 남녀노소가 즐겨 입는데, 잘 고른 터틀넥 한 장은 어떤 화려한 옷보다도 세련되고 우아한 룩을 완성한다. 블랙 터틀넥 위에 진주목걸이, 펜슬스커트의 조합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그뿐이 아니다. 얇고 촘촘한 니트 조직의 터틀넥은 몸에 착 달라붙어 어디 한 곳도 드러내지 않지만, 시스루와는 비교할 수 없이 섹시하다. 같은 아이템으로 이렇게 완전히 다른 느낌을 연출하기란 쉽지 않다. 바로 이것이 기본 아이템의 매력이다. 그래서 터틀넥은 클래식의 아이콘 재클린 케네디가 즐겨 입어 우아함과 자유의 상징이 되었고, 스티브 잡스가 입었던 블랙 터틀넥은 지적인 분위기를 꿈꾸는 남자들의 로망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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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정 전 <데이즈드 앤 컨퓨즈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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