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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야구팬들이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부터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사진은 엘지 트윈스의 전신인 엠비시 청룡의 백인천(사진 왼쪽) 감독 겸 선수와 이종도 선수. 출처 <한국프로야구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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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나의 야구 이야기
‘야구와 나’ 독자 글 공모에서 홈런 터뜨린 글 5편
올해 프로야구 정규 시즌이 끝났다. 한국 시리즈까지 아직 ‘가을야구’는 남아 있지만,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볼 수 없어 아쉬움을 달래는 이가 더 많을 터. 그래서 준비했다. ‘야구와 나’를 주제로 독자들이 <한겨레>에 보내온 글 5편을 싣는다. 글이 실린 다섯 분에겐 베르사체의 새 향수 ‘에로스 뿌르 팜므’를 보내드린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야구? 됐~으요!
1986년. 형과 동생이 바나나를 놓고 싸웠다. 짜장면 가격에 버금가는 바나나를 서로 더 먹겠다며 싸웠다. 하지만 바나나는, 야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바나나는 1년에 한두 번 맛볼까 말까 했지만 야구 시즌은 1년의 절반에 걸쳐 있었으니까.
단언컨대, 문제의 발단은 어머니였다. “인천에 산다”는 이유로 형은 청보 핀토스 어린이회원단에, “점퍼가 예쁘다”는 이유로 동생은 엠비시(MBC) 청룡 어린이회원단에 보낸 것이다. 형이 보기에 청보는 모든 면에서 엠비시에 밀렸다. 촌스러운 점퍼, 겨우 청바지나 만들며 맛없는 라면을 파는 모기업. <슈렉>에 나오는 동키보다 훨씬 못생긴 말상 마스코트는…, 말도 하지 말자. 가장 큰 문제는, 청보가 야구를 심각하게 못했다는 거다. 청보는 오늘, 내일 지고, 대체로 모레도 지다가 예상대로 주말 내내 지는 그런 팀이었다. 형은 핀토스가 지거나 청룡이 이기면 동생에게 시비를 걸었다. 대체로 핀토스는 졌기 때문에, 야구 시즌 내내 형제는 툭탁거렸다.
해가 몇 번 바뀌고 팀명도 바뀌고 선수와 감독이 바뀌는데도 우승 한번 못 하는 인천 야구를, 형은 서서히 멀리하게 됐다. 형에겐 차라리 야구를 멀리하는 게, 응원하는 팀을 바꾸는 것보다 더 쉬웠던 것이다. “그래도 삼미보다는 낫다”는 이상한 체념을 하다가 어느새 야구 중계에서 눈을 돌리게 된 많은 인천 사람들처럼 말이다. 반면 동생은 삼십대 중반인 지금까지도 엠비시의 후속 구단인 엘지(LG) 트윈스를 열렬히 응원하고 있다.
얼마 전 형제는 오랜만에 야구 얘길 하게 됐다. 동생은 “엘지가 아무래도 비운의 팀 같다”고 푸념했다. 형은 “니가 비운의 팀에 대해 뭘 아냐”고 핀잔을 줬다. 동생은 옛날 얘기만 하지 말고 에스케이(SK)라도 응원하라고 권했다. 그러자 형은 1986년 청보 핀토스 감독이었던 허구연 해설위원을 흉내 내며 대꾸했다. “됐~으요.”
정한성/서울 서초구 방배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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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당시 한국 프로야구 개막식 장면. 출처 <한국프로야구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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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게 해줘, 내년 가을엔
“포기하면 편해”라는 말이 있다. 최근 몇년간, 나를 포함한 한화 이글스 팬들은 그렇게 편안한 세월을 보내왔다. 패배를 하더라도 큰 점수차로 졌기 때문에 마음 졸일 일은 애초부터 없었고, 일주일에 한번 류현진 선수의 등판 때에만 즐겁게 시청하면 되니 승리의 즐거움도 적당히 누릴 수 있었다. 다른 날엔 잠시 야구를 멀리하고 약속을 잡거나 미뤄두었던 일을 하는 등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었던 점은 덤이었고.
하지만 올해는 참으로 불편한 시즌이었다. 최근 몇년과는 정말이지 달랐던 4월의 진격은 한화 팬들의 마음속 편안함을 지워나가기에 충분했다. 정말 애간장을 태우며 마음 졸이게 만드는 경기가 속출했다. 포기의 편안함 대신 승리의 열망과 기대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올해는 정말 한 경기도, 한 회도 마음 편히 본 적이 없었다. 권혁의 빛나는 역투에도 끝내기 홈런으로 졌던 4월10일 롯데전 같은 허망한 패배도 있었고, ‘갓경언’(김경언)께서 극적인 끝내기 안타를 ‘하사하시어’ 에스케이를 무너뜨린 4월25일처럼 극적인 승리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계가 드러났다. 강훈련과 투혼으로 달려온 선수들도 결국은 지쳐갔고, ‘야신’(김성근 감독)이 판단실수 하는 순간도 있었다. 시즌 초 ‘마리한화’라고 불리던 이 합법적인 마약 같은 야구는,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분노와 안타까움도 함께 전해주었다. 결국 5강 문턱에서 아쉽게 탈락하며 한화의 야구는 올해도 가을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래도 내년 시즌을 다시 기대한다. 무기력하지 않은 야구, 끝까지 기대하게 만드는 야구를 통해 불편하게 애태우며 야구 보는 즐거움을 선사해준 올해의 한화 이글스 선수들에게 감사하다. 내년엔 가을의 중심에 서는 팀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내년엔 이 불편한 짜릿함이 좀더 오래 이어지기를, 기왕이면 짜릿한 승리로 느껴볼 수 있기를. 그렇게 ‘보살 팬’ 마음 한가득 쌓인 사리를 연료로, 내년 시즌 개막 전까지 긴긴 겨울을 버텨보기로 한다.
이현기/경기 용인시 수지구
삼성이 이겼다, 나의 야구가 끝났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야구’가 시작됐다. 대구가 고향인 나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삼성 라이온즈를 응원한다. 1982년 원년 멤버들의 이름은 지금도 읊을 수 있다. 투수 황규봉·이선희·권영호·성낙수, 포수 이만수, 1루수 함학수, 2루수 배대웅, 3루수 김한근·천보성, 유격수 오대석, 좌익수 정현발, 중견수 장태수, 우익수 허규옥, 지명타자 박정환.
어린 시절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는 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왜? 늘 졌으니까. 82, 84, 86, 87, 90, 93, 2001. 20세기 후반 시작된 삼성의 준우승 행진은 세기가 바뀌어도 계속됐다. 매년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가슴은 라이온즈 유니폼처럼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2002년 이전까지 초창기 6개 구단 가운데 삼성을 제외한 모든 구단, 심지어 후발주자인 한화까지 모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지만 삼성은 못 했다. 삼성이 기록한 한국시리즈 11연속 패배(86년 3패, 87년 4패, 90년 4패)는 향후 100년 안에 깨지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2002년 가을, 그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당시 회사에서 이승엽-마해영의 랑데부 홈런을 보며 거의 뒤로 넘어갔다. 2002년 월드컵 4강에 버금가는 감동이었다. 당시 관중석에는 30~40대 관중들이 거의 발광에 가까운 발작적 증세를 보이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 못 했고, 치어리더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그날 이후, 나의 야구는 끝이 났다. 더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삼성은 올해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5연패에 도전한다. 아마 올해도 우승할 것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 매년 가을 가슴을 쳤던 그날이 오히려 그립다. 삼성이 야구마저 장악한 시대, 불가측성이 사라진 시대, 이젠 더이상 강자가 절대 패하지 않는 시대, 약자가 어쩌다 강자를 이길 수 없는 시대를 반영하는 듯해 허전하고 씁쓸하다. 삼성 라이온즈만 생각하면 애잔할 수 있었던 그런 날들은 이제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저씨/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욕받이 야구팀’ 넥센 파이팅
나는 사실 스포츠는 보는 것도 재미없다. 어릴 적에는 휴일 대낮에 티브이에서 야구중계 하는 게 아주 싫었다. 그 시간에 재미있는 만화를 해달란 말이다! 왜 <은하철도 999>는 아침 8시에 하냐고! 교회 가서 연필을 받아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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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 선수들. 출처 <한국프로야구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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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가 휴일 대낮뿐 아니라 평일 저녁에도 티브이를 끼고 앉아 야구를 보는 남자와 결혼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꼬마 팬으로 야구에 입문한 남편은 현재 넥센의 골수팬이다. 야구를 볼 때 남편의 감정은 극과 극을 달린다. 희한한 건,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욕을 하지 않는 남편이 야구를 보면서만 욕을 해댄다는 것이다. 역전패라도 하는 날에는 무시무시하게 짜증을 낸다. 하지만 그 욕엔 근거가 있다. 관심있게 지켜보는 사나이의 애정표현이랄까?
남편에게 넌지시 말해봤다. “욕 좀 그만하고 그냥 봐. 선수들도 열심히 하는데 잘 안되는 거잖아.” “잘못하면 욕먹어 싸. 본헤드플레이로 경기 망치고 팀 분위기 망치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 넥센, 일단 무조건 파이팅! 그리고 고맙다. 당신들에게 욕을 해서 그런지 남편이 나에게는 욕을 안 한다. 어떤 드라마 속의 ‘액받이 무녀’처럼, 우리 가정에서는 ‘욕받이 야구팀’이 평화를 지켜주는 셈이다. 하긴 정당하지 못한 것에 분노하는 남편의 성향으로 미루어 보아 나에게 욕을 할 일은 없을 것이라 믿어 마지않지만.
아줌마/경기 파주시 파주읍
메이저리그 아나운서의 꿈을 향해
내가 야구를 처음 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때인 2011년이다. 5월5일 어린이날 잠실구장에서 엘지의 경기를 보던 순간이 아직도 너무 생생하다. 그때 나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많은 것을 체험하고 싶은 꼬마였는데, 아빠의 지인께서 티켓을 구해주셔서 야구장이라는 신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날, 경기가 끝난 뒤 수훈 선수를 인터뷰하는 스포츠 아나운서들의 모습은 어찌나 멋있고 당당해 보이던지. 평생 이런 곳에서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그때부터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이후 나의 꿈은 스포츠 아나운서다. 내가 좋아하는 야구를 마음껏 보고 분석하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한다. 나는 스포츠 전문가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의 해박한 야구 지식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 가슴 뛰는 스포츠의 매력을 알리고 싶다. 최종 목표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영어로 선수들을 인터뷰하고 방송사에서 야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다. 정말 취재하고 싶은 전지훈련 현장을 찾아가고, 한국 프로야구가 1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상상을 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먹먹해지고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김민우/인천 중구 운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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